동료와의 우정

생텍쥐페리와 기요메

by 꽁스땅스

<어린 왕자>로 알려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회사를 나오고 본격적으로 불어 학원을 다녔다. 그때 한 달간 초중급 독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강사님이 교재 진도가 끝나고 <어린 왕자> 중에 일부를 발췌해 인쇄물로 나눠주셨다.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조각조각 들어보긴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때 인쇄물에 그려진 모자처럼 보이는 그림과 모르는 단어 투성이인 불어 구문을 이해하느라 형광펜으로 칠하며 필기했던 기억이 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장면. 모자라고 생각했던 게 알고 보니 보아 뱀이 코끼리를 먹는 장면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순수한 어린 왕자의 관점에서 보려 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만 보려는 어른들의 틀에 박힌 사고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제대로 책을 읽어야지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고전을 좋아하는 지인이 주기적으로 올린 글을 보다가 <인간의 대지>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다. 생텍쥐페리에 대한 것부터 책 안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읽게 된 계기다.



지은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가 평생을 비행기 조종사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책에 소개된 저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생텍쥐 페리. 4세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겨 엄격한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어머니의 영향 아래 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갔다. 1921년에 입대, 다음 해 조종사 면허를 따고 직업군인이 되려고 했지만 약혼녀, 양가의 반대로 파리에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다. 결국 결혼이 파국을 맞이하자 1926년부터 라테 코에르 항공사에서 다시 비행을 시작, 툴루즈에서 아프리카 다카르까지 우편물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틈틈이 집필 활동을 하며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종군했고 프랑스군 소속 정찰기를 밭아 비행을 하기도 했다. 1944년 7월 31일 독일군 정보 수집을 위해 출격 후 귀환하지 못했다.




생텍쥐페리의 동료 앙리 기요메

<인간의 대지>는 생텍쥐페리 자신과 동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종사가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생텍쥐페리의 동료이기도 했던 기요메에 대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눈 덮인 안데스 산맥 위로 새로운 항로 개척을 위해 비행에 나선 기요메는 사경을 헤매다 무사히 귀환한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도 쓰러졌다가 문득 실종자로 분류되면 보험금 지급이 몇 년 뒤로 미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식구들의 삶이 어려워질 것임을 깨달은 그는 눈이 녹으면 시신이 발견될 수 있도록 바위 위에 몸을 누인다. 그러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그는 눈 속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성공적으로 귀환하고 몸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새로운 항로 개척에 뛰어든다.


그의 위대함, 그것은 자신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 우편 비행기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 말이다. 그는 그들의 고통 혹은 기쁨을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 저 아래 살아있는 자들이 사는 곳에 새로이 세워지고 자신도 참여해야 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 자신의 일의 한도 내에서 인간의 운명에 대해 어느 정도 가지는 책임감. <인간의 대지 p55>



동료 그리고 책임감

기요메와 생텍쥐페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떠올랐다. 그는 회사 내에 내부감사인이 필요하다는 본사의 결정에 따라 새로 입사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재무 관리부서와는 업무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빠른 시간에 회사를 이해하도록 각 부서와 회의도 계속되었다. 실무를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내가 하는 업무부터 우리 부서에서 다루는 소소한 파일까지도 공유했다. 실제로 자료들을 검토해 주기도 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 의견이 달라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날은 다른 친한 동료에게 실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업무상 연관성이 많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의 끝과 끝에 위치한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하며 함께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함께 완성해야 하는 일이 마무리가 되고 본사에 리포팅후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2년 넘게 함께 하면서 그 누구보다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고 애로사항이 생기면 서로를 먼저 찾게 되었다. 오래 함께 한 팀원들이나 함께 모시는 상사도 모르는 업무에 있어서의 어려움들을 그 누구보다 이해해 주었다. 15년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그처럼 서로의 일에 대해 내 맘처럼 꿰뚫고 있는 동료는 그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나온 후 부서 내 예기치 못한 변화들로 그 동료가 많은 부분 관여하고 처리하느라 힘들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료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반갑기도 했고 고된 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기에 진심을 다해 들어주고 힘이 날 만한 말들을 해 주었다. 통화를 끝내니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려졌다.



그 동료와 함께 했기에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업무에서도 새로운 시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 함께 하든지 각자의 자리에서 뭔가를 이루어 냈을 때 진심으로 격려와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나의 일로부터 느꼈던 책임감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들이 나를 이해해 주는 그 동료가 있음으로 인해 조금은 용기를 내고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생텍쥐페리와 기요메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들 읽으며 동료와의 우정 그리고 당시 조종사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소명을 다하는 모습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것, 그것은 바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비참함을 마주했을 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동료들이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몫의 돌을 놓으며 자신이 세상을 구축하는 게 기여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인간의 대지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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