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삶 1
지난주에 <니체의 말> 이란 책을 읽었다. 한 달 6기 서평 팀 멤버의 글을 읽고 관심이 생겨 주문했던 책이다. 철학 책이라 하면 왠지 난해해서 손이 안 가게 되는데 자신, 기쁨, 삶, 마음, 친구, 세상, 인간, 사랑, 지성, 아름다움에 대한 짧은 글의 니체의 명언들로 이루어져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니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나기도 했고, 조금씩 읽었지만 종종 신경을 곤두세울 만큼 생각에 머물게 하는 문장들로 자극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 씽큐온 선정도서 <니체의 삶>. 그의 철학에 대한 짤막한 글을 읽어서인지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인데도 반가운 건 뭔지. 나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니체라는 철학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색다른 전기라는 저자의 소개 글을 보니 기대가 되었다. 늘 그렇듯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건 여행을 떠나듯 기분좋은 일이다. 오늘 읽은 부분 중에 철학자이기 이전에 인간 니체를 느낄 수 있었던 문장들을 발췌해 보았다
니체의 어릴 적 꿈은 음악가였다.
니체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감수성이 뛰어났다. 가족들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그에게는 음악이 말보다 중요했다. 특히 니체는 말수가 적어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 목사는 서재에서 업무 처리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그곳에 있는 걸 허락했다. 두세 살배기 아이들이 자주 그러듯 어린 니체도 가끔 바닥에 드러누워 악을 쓰며 울어댔다. 그때는 무엇으로도 그를 달랠 수 없었다. 어머니도, 장난감도, 먹을 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연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니체의 아버지는 피아노 실력이 뛰어났는데 특히 바흐 연주로 유명했고 즉흥연주 실력도 뛰어났다. 저자는 아마 니체는 그런 아버지의 재주를 물려받아 피아노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브로크 하우스의 응접실에서 운명처럼 바그너를 만나다.
바그너가 당시에 만든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서곡을 니체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다. 니체는 두 오페라를 듣고 '온몸의 신경과 세포가 전율했다'라며 직접 곡을 배우겠다고 덤볐다고 한다. 오틸리엔 브로크 하우스(바그너의 여동생)가 니체의 연주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빠인 바그너에게 전했고 니체에게 마음의 위안을 안겨준 무명의 철학자를 바그너도 아주 좋아했다는 것이다. 바그너를 처음 만났을 때 니체는 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하고 고전어와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관현악의 대가로 알려졌던 바그너는 이미 50대 중만에 유럽 전역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바그너는 저녁 식사 전후로 <마이스터징거>의 주요 파트를 모두 연주했다네. 파트별로 훌륭하게 부르면서 말이지. 그는 정말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남자였어. 말도 굉장히 빨리하고 하는 말마다 재치 있고 사적인 모임을 아주 즐거운 자리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지. 우리는 중간에 쇼펜하우어 Schopenhauer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었어. 그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쇼펜하우어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지. 그에게 정말 많은 빚을 졌다고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유일한 철학자라고 말이야. 내가 그런 말을 들으며 얼마나 신났을지 자네는 이해하겠지. <니체의 삶 p14>
배움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가 당시 가정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건강 문제였다. 그는 독일 연방에서 가장 전통 깊은 학교인 슐포르타Schulpforta에 입학했다. 슐포르타에서 니체의 만성적 질병인 극심한 두통과 귀의 종기, 위장 카타르, 구토, 어지럼증 등을 창피스러운 방법으로 치료했다. 머리에 있는 피를 빨아먹도록 귓불에 거머리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컴컴한 방에서 지내도록 한 것이다. 때로는 목에도 거머리를 붙였다. 일주일에 스무 번이나 치료를 받았고 그는 "익숙해져야 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니체는 예민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뿌옇게 만든 안경을 쓰고 다녔다. 학교 의사가 나중에 완전히 실명할 거라 진단했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방법 말고는 달리 희망적인 생각을 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니체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암울한 진단에 자극을 받아 슐포르타에서의 모든 순간을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 뛰어났다. <니체의 삶 p66>
슐포르타에서 하는 공부로도 모자라 어린 시절 친구인 구스타프 쿠르크, 빌헬름 핀더와 '게르마니아'라는 문학 모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시, 수필, 작곡, 혹은 건물 설계도라도 매달 한편씩 남기자고 다짐했다. 돌아가며 한 사람씩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면 나머지 둘이 필요한 부분을 친절하게 교정해 주었다. 니체는 3년 동안 34편의 글을 썼고 두 친구가 글쓰기를 멈춘 후로도 혼자 오랫동안 계속 글을 썼다.
니체에게 위안을 주었던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니체에게 위안을 주었다. 모든 생명은 고통받는 상태라는 명제는 만성질병에 시달리며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통증을 견뎌야 하는 그의 상태와 잘 들어맞았다. 모든 생명은 당연히 이상적 상태를 갈망했고 그도 '진정한 자신이 되기를 원했다. 그것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우리의 이성이 계속해서 세계를 조각조각 분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치되는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없었다. 우리의 이성 자체가 표상의 일부일 뿐이니 말이다.
제일 진저리 나는 일은 항상 다른 사람인 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네. 교수인 척, 문헌학자인 척, 인간인 척 연기해야 한다는 거지 <니체의 삶 p89>
바젤대학교에서 교수 일을 시작한 후 그는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지혜로운 사람인 척 보이려고 나이 들게 옷을 입었고 학부생의 신분으로 교수가 되었고 어머니의 말이 듣기 싦였지만 착한 아들인 척 행동했고 기독교적 신앙을 잃어가고 있음에도 목사였던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순종적이고 다정한 아들인 척 연기를 하고 있었으니 이런 생각이 든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 다른 사람의 얼굴을 연기해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에게는 국적마저 없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인물이 존재하는 공식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다. 삶의 완전히 조각나 있다고 믿었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자신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상태라 생각했다. 진정한 의지를 실현하기는커녕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니체는 재미없는 주제를 재미있게 살려내는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가 발표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단다. 어렸을 적부터 건강이 안 좋았다는 것,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나 대학에서 음악과 작곡에도 열의를 보였다는 것,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대 유명했던 바그너와의 끈끈한 관계, 배움에 대한 욕구,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난해하고 추상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풀었던 철학자라 생각했다. 강인하면서도 여린 부분이 있긴 하지만 굳은 의지로 자기 극복을 해 나가는 니체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평생 마음속에 간직했던 그리스의 서정시인 핀다로스 Pindaros의 <델포이 송시>에 나오는 구절이 어쩜 그를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일 또 계속 읽어가 보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네 자신이 되어라 <니체의 삶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