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서제를 놓아둔 놈에게 욕이 절로 나왔다
늘 무음으로 두던 핸드폰을 소리 모드로 돌려놓고 잤다. 혹시 울리는 벨소리를 못들을까 싶어 음량도 최대로 올렸다. 잠깐의 진동에도 깰 정도로 잠을 설쳤다. 다행히 밤 사이 전화는 없었다. 오전에 일어나 부재중 전화가 없는 것까지 확인한 뒤에야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이전까지는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계속 깔려 있었다. 그만큼 처음 상태가 안좋았다. 병원에 가는 도중에 이렇게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될 정도로.
입원 다음 날. 오전에 확인차 전화를 걸었고 오후에 주치의 콜백을 받았다. 금식 중이긴 하지만 밤사이 구토, 설사는 없었다고 했다. 초음파 검사를 다시 했고 영상에서도 췌장염 소견이 나왔다. 소장 근처에 궤양이 있는데 꽤 심한 편이라 더 나빠지면 천공 가능성도 있었다. 이물도 의심되지만 폐색까진 안갈 것 같다고 했다.
췌장염 관련 수치는 3분의 1 정도로 확 떨어졌지만 수치로 따지면 1만에서 3000 정도로 변한 거라 여전히 나빴다. 전해질ㆍ혈당이 괜찮은 반면 간수치가 올라가고 혈소판이 전날 200 정도에서 106으로 떨어졌다. 응고계는 정상이던 하나가 비정상으로, 비정상이던 하나가 정상으로 변했다. 병원에서는 살서제에 준하는 처치와 췌장염 치료를 같이 진행하고, 장이랑 폐는 영상으로 모니터링하겠다고 말했다. 금식을 언제 풀 지는 애기 상태에 달려있다며.
저녁에 지하철역에서 아빠를 만나 병원으로 향했다. 면회는 오래 하지 못했다. 병실 같은 유리장 안에 있는 자두를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보고 오는 게 전부였다. 약간 수납하러 간 느낌? 둘째 날 병원비로는 48만 3300원. 몸무게에 따라 용량이 달라진다는 혈장 주사가 비쌌다.
이틀 연속 나온 병원비 때문인지 아빠는 자꾸 모레쯤이면 자두가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집에 있었으면 살았을 확률, 죽었을 확률이 50대 50일 거라고 주장했다. 물론 나는 그랬다간 오늘 아침 시체를 발견했을 거라고 반박했다. 언니 역시 “집에 있으면 100프로 죽고, 지금 퇴원해도 100프로 죽는다”면서 아빠가 병원에서 그런 소리 못하게 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빠는 혈장이 비싸다고 툴툴대긴 했어도 다행히 병원에선 이런 얘길 꺼내진 않으셨다.
입원 셋째 날. 자두는 제대로 서진 못해도 천천히 기운을 차려갔다.
병원에서는 전날 밤부터 강제급식을 시작했고, 처음엔 유동식 10㎜도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조금 먹고 구토도 없었다고 전했다. 엑스레이ㆍ초음파ㆍ폐 검사도 별 문제없었다. 천공이 의심되던 불안한 장 상태는 그대로여도 나뭇가지 같이 길쭉한 이물은 조금 내려갔다. 장 밑을 더 찌르는지 여부는 계속 관찰해봐야 했다.
하지만 혈소판 수치가 19로 더 크게 떨어졌다. 수의사는 그래도 몸에 점상 출혈이 안나타났고, 주사 처치도 계속하고 있으니 좀 더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살서제를 먹었던 다른 개의 경우 6까지 내려가기도 했단다.
살서제를 놓아둔 놈에게 욕이 절로 나왔다. 걱정했던 응고계 수치는 괜찮게 나왔다. 수의사는 처음 피하주사를 놓아도 가만히 있던 자두가 오후부터는 고개를 들고 안으려고 하면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금씩 으르렁대기도 한다며 애가 사납게 굴면 강제급식을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우리 개는 착해요”라는 흔해빠진 말이 어울리던, 사람만 보면 쫄래쫄래 쫓아다녀 걱정이었던 녀석한테 ‘으르렁댄다’, ‘사납게 굴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신기했다.
셋째 날 저녁 면회는 길었다. 진료실이 아닌 대기실에서 자두를 만났다. 자두가 스태프에게 안겨 나오는데 힘이 없긴 해도 회복 중인 게 눈에 보였다. 무릎에 올려 안아주고 사진을 잔뜩 찍었다. 제대로 못먹고 누워있기만 해서인지 살이 쪽 빠지고 근육도 사라졌다. 주둥이도 길어진 게 여우 같았다.
면회 중엔 스태프가 가져다준 물에 불린 영양식을 배스킨라빈스 스푼으로 몇 번 겨우 먹였다. 비교적 얌전하게 받아먹었다. 싫다는 표현은 고개를 돌리는 게 전부였다. 내 앞에서의 자두는 여전히 착해서 병원에서 말한 ‘성질을 부린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다. 원래 진돗개 종류가 한 번 물면 절대 안 놓고 사고를 낸다고 하니 병원 사람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