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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날리 Oct 29. 2022

주말부부에서 데일리부부로 산다는 것

달라진 일상 Q&A

주말부부로 살면서 연애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다 생각했다. 어느덧 함께 산 지 4개월째. 퇴근 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진짜 부부가 되었음을 실감 나게 했다. 같은 듯 다른 우리가 함께 생활하면서 주말부부일 때와 달라진 점을 되짚어봤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다


함께 살아도 한 침대는 쓰지 않으리. 이 다짐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당연히 안방은 내 방, 작은 방은 남편 방이 되었다. 남편이 먼저 큰방을 내게 선뜻 내주었다. 옷장과 화장대 그리고 화장실 이 3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순리였다. 맥시멈리스트인 나에게 최적의 방이었으니까.

안방에 둘 퀸 사이즈의 침대를 새로 장만했는데, 이사한 지 딱 한 달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전까지는 토퍼를 깔고 잤다. 암막커튼을 설치하니 더욱 완벽한 침실이 되었다.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너무 기뻤다. 따로 잠을 자도 자기 전엔 꼭 굿나잇 인사를 한다. 남편이 먼저 잠이 드는 건 따로 살 때와 달라지지 않은 점이다. 주말부부일 때도 각자의 침대에서 잤으니, 이젠 함께 자는 게 더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집들이 손님들에게 내 방을 보여주고 뒤이어 남편 방을 소개하면, 매우 소박한 남편 방을 보고 다들 놀라워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신혼이지만, 각자의 방에서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한 30년 된 부부 같다. 여전히 남편 방은 깔끔하고 내 방은 짐이 늘어만 갈 뿐.



배달보단 요리


나는 퇴사 후 2개월을 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방에서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님 사업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빨리 취직하게 되었다. 물론 더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집에만 있으니 갑갑하기도 했다. 게다가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도 두 배가 드니 맞벌이는 필수였다. 퇴근 후에는 남편이 나보다 미세하게 먼저 집에 도착한다. 그래서 남편이 먼저 밥을 안치고 요리를 하면 곧이어 도착한 내가 곁들일 반찬과 그릇 등 밥상을 세팅한다.

확실히 함께 생활하니 직접 요리를 해 먹는 날이 많아졌다. 혼자 자취할 때는 한 달에 4~5번 이상 배달을 시켜 먹는 게 일상이었는데. 함께 사니 소소한 것들이 변했다. 아직까지는 남편의 요리 비중이 훨씬 높다. 이건 죽을 때까지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요리 실력이 좋진 못해도 내가 그나마 잘하는 요리를 시도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도 밥 하나는 자신 있다. 웃프게도 남편은 된밥파, 나는 진밥파인데 내가 만든 진밥을 남편이 맛있게 먹는다. 이렇게 부부는 닮아가나 보다. 밥을 차려 먹기 귀찮을 땐 종종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 찬스를 쓰기도 한다.



서재의 꿈을 실현하다


내 로망은 '서재'가 있는 집에서 사는 거였다. 안방(내 방), 작은 방(남편 방) 이 외에 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이 방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이사하기 전부터 이미 결정이 나 있었다. 바로 PC방처럼 컴퓨터를 두고 맞은편에 책장을 둬서 서재로 만드는 것.

트레이에 간식거리를 두니 영락없는 미니 PC방 느낌이 제법 들었다. 돈이 많이 깨졌지만 어차피 사야 할 것들을 샀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이제 침실 말고도 각자의 책상과 컴퓨터가 생겼다. 기존의 남편 컴퓨터를 내가 차지하고, 새로 장만한 맥 컴퓨터가 남편 것이 되었다. 각자의 PC가 있으니 서로 부딪힐 일도 싸울 일도 없다. 지금 보니 트레이에 간식이 없네, 새로운 간식으로 예쁘게 채워줘야겠다.



삶의 질을 높여준 물건들


이사할 때 필요한 제품들을 사면서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음식물처리기, 로봇청소기를 구매했다. 먼저 결혼하고 살림을 차린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무조건 건조기, 음식물처리기, 로봇청소기 이 세 가지는 꼭 있어야 돼."  

일단 건조기가 있으니 삶의 질이 대폭 상승했다. 따로 말릴 필요 없이 보송보송한 옷을 바로 입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편리했다. 음식처리기는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따로 구비하지 않아도 음식물을 쉽게 처리할 수 있어서 좋다. 저녁에 돌려도 소음이 적은 것으로 골랐다. 강력한 고온 건조 기술을 사용해 시간이 지나면 물기 없는 가루 형태로 변하니 버리기도 간편하다.

기계 알못인 나로선 로봇 청소기가 여전히 낯설다. 그래서 로봇청소기 조종은 남편의 몫이다. 처음에는 선에 엉키거나 갑자기 동작을 멈추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직까진 고장 나지 않고 잘 버텨주고 있어서 참 고마운 녀석이다. 이 외에도 정수기는 렌탈로 이용하고 있다. 혼자 살 땐 없어도 될 물건들이었는데, 함께 사니 필수템이 되었다.



방구석 스튜디오 오픈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J 성향답게 엑셀로 사야 할 물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중에는 카메라 부품도 있었다. 예를 들어 조명세트, 삼각대, 테이블, 반사판 등이다. 거실에 소파와 TV를 두고 남는 공간에 스튜디오처럼 꾸며놓겠다는 것이 바로 남편의 로망이었다. 남편의 로망대로 점점 카메라 부품들이 생겨났다.

집에서 제품 촬영을 할 때 방구석 스튜디오를 잠시 오픈했다. 나는 남편의 조수로서 남편의 카메라 세팅을 돕는 역할이다. 제법 스튜디오 느낌이 나서 신기했다. 배경지를 세워두고 반사판을 이용해서 찍으니 정말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듯했다. 촬영 전과 후 준비과정이 귀찮긴 해도 결과물을 보면 왜 정성을 들여 찍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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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청소 문제를 비롯한 소한 일로 다투기도 하고 서운한 감정이 든 채로 말없이 잠들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 별 대화 없이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부부가 무조건 한 방을 쓰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 한결 편하다.

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5,093일, 결혼한 지 868일째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중고신혼 라이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주말부부에서 데일리부부로 가는 과정이 또 다른 주말부부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슈날리의 감성을 닮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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