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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마와 골목길

내 오랜 자전거에 대한 수다

by 이주인

아마 9살 즈음,

봄방학인지 겨울방학인지는 가물가물하다. 방학이면 으레 시골 할머니 댁에 며칠씩 머물곤 했다.


아홉 살 인생에 얼굴 본 일이 거의 없던 삼촌이 왔었다. 삼촌은 하나뿐인 친조카에게, 당사자는 딱히 원한 적 없던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감사한 일이지만, 문제는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는 것이다. 또한, 삼촌이 선물한 것은 보조바퀴도 없는 그냥 자전거였다.


시골에 머물 때는 삼촌이나 할머니가 뒤를 잡아주면서 그냥 타는 흉내나 좀 냈던 걸로 기억하며, 집으로 가져오고 나서는 한동안 그냥 장식품으로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는 미니벨로 정도 크기에 이것은 어린이용이라는 걸 보여주듯 형형색색 알맹이 장식이 가득했는데, 바퀴가 구를 때마다 총천연색 알맹이들이 스포크 사이를 오가며 들려주는 주행 연주음을 선사했다.


주목받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 당신의 조카가 동네 스타가 되길 바라는 삼촌의 마음이었을지는 모르겠다.




한 살 아래 친척 동생은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 운동장에서 동생은 혼자 한 바퀴를 돌고 나는 동생의 의전을 받으며, 뭔가 불합리한 자전거를 탔다.


그렇게 몇 바퀴들 돌며 못난 형의 자전거를 밀어주다가, 체력의 한계를 느낀 동생이 손을 놓으면서 클리셰처럼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잘 타고 다녔나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내가 자전거를 타려면 시동을 걸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길쭉한 모양에 높이 조절이 안 되는 안장은, 당시 내 키로는 앉은 상태에서 바로 출발하기가 불가능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무작정 자전거를 타기로 한다.


핸들을 잡고 달리다가 속도가 붙으면 잽싸게 올라타보자는 아주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몇 번의 넘어짐과 엉덩방아 그리고 꽤 긴 시간을 거쳐, 내 첫 자전거의 시동을 걸었다.


이후에는 있다 없다 했지만, 학창 시절의 대부분은 자전거와 함께였다. 성인이 되고서는 대학시절 무슨 바람이 불어 미니벨로를 잠시 타고 다녔다.


나름 외모에 신경 쓰느라 자전거 통학이 헤어스타일을 망친다는 생각에, 1년을 체 안 타고 본가로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일을 시작하고 운전을 시작하며, 내 자전거의 역사는 끝인 듯했다. 고향친구가 타라고 주었던 삼각 모양의 자전거도 1년에 한두 번 탈까말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년 초여름쯤, 난 또 무슨 변덕이 생겨서 자전거를 들이고 말았다. 딱히 자전거를 사려던 것은 아니었다. 평소 이동거리가 차를 이용하기엔 뭔가 낭비인 것 같은 마음에 새 이동수단은 장만하려던 것뿐이다.


마음이 갔으나 부담스러웠던 오토바이를 지나 전기 오토바이를 거쳐 전기 자전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다다른 곳이 생체전기를 한껏 사용할 수 있는 그냥 자전거였다. 새로이 장만한 익숙한 이동수단은 원래 의도를 좀 벗어나 운동, 가벼운 산책에 이용되고 있다.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게 페달을 밟으며 생각했다.


“목적 없는 산책이 얼마만인가”


언제부터인가, 이런저런 핑계와 효율성을 따지며 남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낭비하곤 했다. 겪어봐서 다 아는 것처럼, 행동의 결과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수록 아이러니하게 세상은 좁아졌다.


반면에 어린 시절은 참 단순했다. 넘어지거나 생채기가 나는 것과 상관없이, 목표가 생기면 경주마처럼 냅다 질주하는 것이다.


문득 자주 다니던 길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골목길로 핸들을 돌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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