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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그냥 우연

그랬을지도

by 이주인


꿈은 많이 꾸는 편인데,

최근 한 편은 머릿속을 꽤 오래 맴도는, 아쉬운 인연이었던 사람이 나오는 그런 내용이었다. 눈을 뜬 이후 마음 한편이 착잡한 것은, 꿈속에서도 발목을 잡고 있던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첫 연애를 할 때였다.

지금의 감정이야 어떻든, 그 순간만큼은 남들이 연애를 하며 느끼는 그 감정을 온전히 누렸다. 그럼에도 꽤 길었던 그 시간 동안 난 우리의 만남이 어떤 특별함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미디어와 가까이 살아온 나는 은연중에 운명적인 만남을 바라기도 했는데, 휴학을 앞둔 시점에 마음에 품었던 사람과도 그렇게 바랬다.


살면서 한 번도 고백해 본 적 없었지만,

곧 휴학을 하지만,

방학기간에 학교를 가는 날,

혹시라도 마주친다면 마음을 전해야지


이루어졌다면, 적잖이 그럴듯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뇌회전이 빠른 편은 아니라도 그렇다고 마냥 멍청하진 않았던 내가, 낮은 확률에 창피함을 건 치사한 한 수였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본인에게 아쉬운 순간에서만 그런 극적임을 바랐던 것 같다. 오랜 짝사랑이었던, 꿈에 나와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을 때도 그렇게 바랬다.


간간히 인사만 하는 누군가도 쉽게 마주치는데 당신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여기서 그 사람을 영영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쭙잖은 운명론자에서 벗어났을 것이나, 단 한 번의 우연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더 못 잊게 만들었다.


연심을 끊어내기로 하고, 달포가 지난 후였다. 겨울이 서서히 물러가던 어느 주말, 밤을 새우고 자격증 시험을 친 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주 가던 카페로 향했다. 항상 자주 앉던 자리에 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잊어야지’라는 생각만 하던 시기였고, 어쩌다 마주치는 그런 상상은 감히 해본 적도 없는 그 상황에 그녀와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잊기로 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못 본 척했으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 쉬운가.


이후 가끔씩 그녀와 우연히,

운명처럼 마주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사실, 운명이든 우연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난 마음이 모자랐을까 아니면 그냥 운이 없었을까

내게 찾아온 우연을 운명으로 바꿀 수 있었던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농담 섞인 진담을 던지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넌 간절하지 않아”


그랬을지도…


잠에서 깨어난 후, 습관처럼 오래전 인연을 생각한다.

그 자리에 있기로 했던 내가 옆에 있던 당신과 운명은 아니었나. 어쩌면 내 한마디가 우리를 운명으로 만들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 2016. 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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