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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2 X 50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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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Mar 26. 2020

웃기는 짬뽕과 얼치기

장르의 혼합이 무시받았을 때

[웃기는 짬뽕]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흠... 너무 20세기스럽나요? 정확한 어원은 사실 모릅니다만, 그것이 긍정적인 표현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20세기의 감각으로 여럿이 섞여 있는 짬뽕은 웃기는 것이었겠지요. 순혈에 대한 갈망과 그것의 오만이 드러나는 표현이 아닐까요. [잡종]도 그러한 의미의 편향을 갖습니다. 잡종이 순종보다 더 대우받는 것은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입니다.
진골과 순혈이 인정받는 것은 한국 사회의 특징 만은 아니었습니다. 근대에 와서 국가가 성립된 미국에서도 그러한 성향은 발견됩니다. 대중 음악사에서도 그렇습니다. 특히, 1970년대까지는 장르에 대한 신봉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장르에 의해 결정되고, 장르와 장르를 섞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메인스트림의 평론가들에게 무시받고 일반 팬을 잃어버릴 수 있는 모험에 가까왔습니다.


장르의 혼합이 흔해진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의 음악계는 장르가 크게 지배한 시대였습니다. 어떤 밴드가 속한 특정 장르의 formula를 벗어난다는 것은 레코드 기획사에 대한 큰 도전이었습니다. 특정 레코드 기획사가 특정한 장르 만을 다루는 것도 흔한 일이었지요.


대개의 아티스트는 자신의 고유의 음악을 추구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장르에 관련한 시장의 공식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고무적인 일입니다. 음악의 특색을 살리는 일이지요. 문제는 그 취향이 지나치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 때 발생합니다. 선을 넘는 순간 쉽게 [얼치기]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20세기적 현상을 경험했던 밴드 중의 하나가 필라델피아 출신의 듀오 Hall and Oates입니다. 1970년대 초 Philly Soul에 영향을 받은 folky한 R&B로 데뷔 앨범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2집인 Abandonned Luncheonette에서는 포텐 넘치는 음악성으로 많은 평론가들을 흥분시킵니다. 하지만 이들은 3집에서 New York 스타일의 punk rock을 시도하는 대변신을 시도하며 잘 모아놨던 팬들을 해체시키고 평론가들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이 일로 해서 홀 앤드 오츠는 아이덴티티가 불명확하다는 꼬리표를 10년 이상 붙이고 다니게 됩니다. 이들이 스타덤에 오르게 된 1980년 초중반 이후까지도 말입니다.


이런 내향적인 R&B를 부르던 듀오가...

From 2nd Album, Abandonned Luncheonett (1973), She's gone

이런 하드해진 록을 부릅니다...

From 3rd Album, War Babies (1974), Beanie G and the rose tattoo

그들은 사실 당시 하고 싶었던 음악을 했을 뿐입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성격을 가진 대릴 홀의 영향력이 컸었을 수도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촌뜨기들이 힙한 뉴요커들의 Punk 유행을 흡수한 것입니다. 3집의 대실패 후 대오각성한 이들은 LA로 근거지를 옮겨 4집에서 다시 원래의 R&B 스타일로 회귀하고는 첫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R&B 클래식 [Sara Smile]이 이 시기에 탄생합니다.) 그러나 이 성공이 슈퍼 스타덤으로 이어지지 않고 몇 년이 흐르자 듀오는 다시 다른 문물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1970년대 말 대서양 양안에서 기세를 올리던 이른바 네오펑크 혹은 뉴웨이브였습니다. 뉴웨이브와 실험적인 electronic sound를 버무렸던 이들의 1979년작 X-Static은 사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었고, 이들의 대표작 [Private Eyes]의 서곡과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야심적인 앨범도 War Babies 앨범과 마찬가지로 미지근한 반응을 얻게 됩니다.  


[Running from paradise] from X-Static (1979)

오히려 프로모션 싱글로 발매되었던 디스코 풍의 한 넘버 [Bebop/Drop]로 인해 한 평론가로부터 얼치기 디스코 사운드라는 오명을 얻었고 급기야는 디스코의 광풍에 신물이 난 록 팬들의 시위 시에 앨범이 불태워지는 해프닝까지 겪기도 합니다.


장르에 충성스러운 평론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이 듀오의 거부할 수 없는 song craftsmanship은 마침내 1980년 초중반 업계의 정상에 서게 되는 큰 성공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세기 내에 끝끝내 평론계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당시 매니저였던 (그리고 Mariah Carey와의 결혼을 통해서 1990년대 대중음악 업계 최고의 실력자로 올라서는) Tommy Mottola의 끊임없는 불평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대중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흑인음악을 하는 백인 얼치기이자 이것저것을 뒤섞는 짬뽕이었던 이들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은 놀랍게도 21세기의 음악팬들입니다. 이들에게 홀 앤드 오츠의 음악은 트렌디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즐기는, 장르를 걸치는 스타일의 노래가 수십 년 전에 있었고 그들 부모 세대가 (특히 엄마들이...) 즐겼다는 사실에 열광합니다. 홀 앤드 오츠는 환갑을 넘겨서 재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그들의 논조를 변경한 것은 덤입니다.


20세기의 웃기는 짬뽕과 얼치기가 21세기에서는 장르를 아우르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대중음악에 있어서 21세기에 인간의 의식은 확실히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Daryl Hall, I'm in a philly mood (live in 1994)


*Title Image: Daryl Hall and John Oates circa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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