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2 X 50 03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태원 Taewon Suh Nov 22. 2016

역사상 가장 출세한 매니저

머라이어 캐리의 첫 남편, 토미 모톨라

대중음악의 역사상 가장 출세한 매니저는 누구일까요? 다소 우매한 질문이지만, 제 머리에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인물은 70년대 초부터 80년대 후반까지 Daryl Hall and John Oates(aka Hall & Oates)의 매니저였던 Tommy Mottola입니다. 1990년에 Sony Music의 사장에 오르고 몇 년 후 거의 더블 띠동갑인 Mariah Carey의 첫 남편이 되었던, 미국 연예계의 거물이지요.  


연예인이 되고팠던 토미 모톨라는 일찌감치 본인의 소질을 파악해 포기하고 music publishing company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 회사를 통해 본인들의 작품을 출간하던 홀 & 오츠란 신진 듀오를 발견하지요. 한 귀에 감이 온 모톨라는 그들의 매니저를 하겠다고 그야말로 생떼를 쓰면서 졸라 댑니다. 마침내 자기보다 두세 살 많았던 20대 중반 듀오의 생초짜 매니저를 맡게 되지요. 어떤 뮤지션이 아무 경험 없는 20대 초반 청년에게 선뜻 매니저를 맡길까요? 황당한 수준으로 엄청 졸라댔다고 하네요.


어쨌든 70년대 뜰 듯 뜰 듯 뜨지 못하던 홀 & 오츠는 80년대 초 메가 스타로 떠오르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덕분에 토미 모톨라는 본인의 기획사인 Champion Entertainment를 키우게 되고, 소니가 콜롬비아 뮤직을 사들이며 뮤직 엔터테인먼트에 본격 진입한 80년대 말 소니 뮤직에 중역으로 스카우트됩니다. 그 후 1990년 이후 CEO가 되어 소니 뮤직을 15년간 좌지우지하게 되지요.  

전성기 직전인 1980년 6월경 투어 중인 Daryl Hall (중간), John Oates (콧수염!), 그리고 Tommy Mottola (맨왼쪽)

"대중음악 팀이 프로덕션 및 프로모션을 위해 맺게 되는 관계의 구조는 매우 복잡합니다. 뮤지션이 직접 모든 관계에 신경 쓴다면 진작 중요한 창의적인 작품의 생산은 뒷전이 되기 십상이지요. 이 점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바로 전통적으로 매니저라고 불리는 관리 파트너입니다(뮤지션의 일상 활동을 챙기는 사람은 road manager로 따로 구분합니다). 마케팅의 기본과 활동 관리를 담당하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지요."


"The Beatles의 Brian Epstein처럼 팀의 시작이자 중심이었던 매니저도 있지만 대개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가진 매니저를 찾기란 힘든 일입니다. 필요한 특성의 한 쪽을 택하는 대신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특성을 가진 관리 파트너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이탈리아계인 토미 모톨라는 정말이지 일화가 넘쳐나는 인물입니다. 소니뮤직 내에서 다른 중역에게 배정되어 있었던 데뷔 전 머라이어 캐리의 데모 테이프를 가로챈 공로(?)로 소니 뮤직의 사장으로 올라가고 급기야는 그녀와 결혼까지 한다던지, 이혼 후 머라이어 캐리가 버진 레코드로 이적하여 Glitter 앨범을 발매하자 본인의 위치를 이용한 찌질한 짓거리로 방해한다던지, 매니저 시절 별 볼 일 없던 홀 & 오츠의 사이닝 보너스 패키지로 상상을 초월하는 계약금 외에 꽃분홍색 캐딜락 오픈카를 요구했다던지 하는 엉뚱한 일들을 서슴지 않았고, 대개는 의도한 목적을 성취합니다. 

또 하나의 일화: 찬밥된 Michael Jackson의 반발

새천년에 들어서면서 밑바닥을 쳤던, 머라이어 캐리의 예측치 못했던 약 오년 간의 극심한 슬럼프는 사실상 토미 모톨라의 성품과 영향력을 동시에 상징하는 커다란 일화입니다. 그는 당시 대중음악계의 갓파더였지요. (자세한 것은 다음의 brunch 글을 참고하세요.)

업계에서도 다혈질 괴짜라는 평판은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그 결과적 성과로 볼 때는, 윗 글에서 얘기되었듯이, Clive Davis와 LA Reid를 잇는 20세기 말 최고의 A&R (Artists & Repertoires) 관리자 중 한 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니저로서는 홀 & 오츠를 필두로 John Mellencamp, Carly Simon, Diana Ross 등을 관리했으며, 소니뮤직 시절에는 머라이어 캐리를 시작으로 Shakira, Anastacia, 그리고 Jennifer Lopez 등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토미 모톨라와 머라이어 캐리 다음의 셋째 부인이었던 멕시코 출신 가수 Thalia

이 저돌적인 매니저에 대해서 홀 & 오츠는 1974년 그들의 네 번째 동명 앨범(aka, The Sliver Album)의 수록곡 Gino (The Manager)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고 맹세를 하면서 말하지

"이게 다 네 것이 될 수 있어!"

거기 싸인해! 거기 싸인해! 거기에!

And you're swearing on your mother
That "all this could be yours"
Sign on the line, sign on the line, on the line


기억해, 열심히 일하면 보상이 있다고.

바쁘게 살고 웃으며 죽는 거야.

요구하는 데 돈드나?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없지.

Remember hard work means something

Live fast, die laughing
No hurt in asking
Nothing for nothing


그의 야심과 공격적인 협상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70년대에는 그의 저돌적인 스타일이 크게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재능 넘치는 홀 & 오츠는 데뷔 초기부터 Atlanta Records의 유망주였습니다. 애틀랜타의 대표 프로듀서로서 Bee Gees와 Queen 등을 담당했던 Arif Mardin이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고, 세 번째 앨범은 The Beatles의 프로듀서였던 George Martin이 프로듀싱을 맡겠다고 나서지만 어이없게도 홀 & 오츠는 동향 출신 Todd Rundgren을 선택하며 거절합니다.

 George Martin과 세번째 앨범을 만들었다면 홀 & 오츠는 70년대에 슈퍼스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넘치는 포텐이 좀처럼 자연스럽게 터지지 않자 토미 모톨라는 주도권을 갖고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추구했고 결과적으로 홀 & 오츠가 21세기에 들어 재평가받기 전까지 평론가들에게 외면받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홀 & 오츠는 Voices 앨범의 세 번째 싱글 Kiss on My List가 1981년 중반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부터 1985년까지 매년 히트 앨범을 발매하며 마침내 최고의 pop acts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토미 모톨라의 이름도 업계에 크게 부각됩니다.

하지만 홀 & 오츠는 기획된 보이 밴드도 아니었고 Michael Jackson과 같이 외부의 massive production team을 통해 앨범을 제작하는 뮤지션도 아녔습니다. 본인들이 작곡, 편곡, 제작까지 아우르는 craftmanship에 기반한 아티스트이었지요. 녹음-투어-녹음-투어로 반복되는 빠쁜 스케줄 가운데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생활 공간이 사라져 버리고 성과 유지의 부담이 가중되자 이 듀오의 심신은 점차 지쳐갑니다. 마침내 그들은 1985년 중반 10년에 걸친 RCA와의 계약이 끝나면서 기약 없는 휴식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들의 마지막 팝싱글 1위곡인 Out of Touch의 뮤직비디오에서 대형 드럼에 깔려 imprinted된 홀 & 오츠를 바라보는 밴드 멤버들. 그들의 상태가 아니였을지...

홀 & 오츠 전성기의 마지막 앨범인 1984년 발매된 Big Bam Boom의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John Oates는 수록곡 하나하나의 녹음 과정이 치아를 빼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합니다. 창작 과정이 괴로워질 때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력을 지속하게 되기 어렵습니다.


매년 앨범을 발표하고 매년 1위 곡을 생산해 낸 것은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홀 & 오츠의 음악적 능력과 활동 50주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도 둘의 창작 열정이 살아 있음을 볼 때, 그들의 상업적 전성기가 5년 정도로 끝났다는 점은 지속가능성 관리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유행에 민감한 음악 산업의 구조와 아티스트와 매니저는 계약 관계인 경우가 흔하다는 점에서 단기적 성과가 아티스트-매니저 관계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쉽습니다.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머라이어 캐리와 토미 모톨라를 둘러싸고 Celine Dion, Michael Jackson, Brook Sheilds, Babyface 등등이...

홀 & 오츠와 토미 모톨라는 21세기에 들어 법정 싸움을 하게 됩니다. 물론 돈에 관한 문제이지요.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Daryl Hall은 80년대 본인들의 수입 관리가 부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확신합니다. 구체적인 질문에 토미 모톨라의 이름은 절대로 언급하지 않지만요. (잘못 언급했다가는 소송의 역풍을 맞겠지요.)


단기적 성과와 지속가능성, 혹은 상업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균형에 관한 의사결정은 현대 비즈니스에서 가장 어려운 판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뮤지션이라면... 토미 모톨라를 매니저로 쓰시겠습니까?



Dary Hall and John Oates: Gino (The Manager)


*Title Image: Mariah Carey & Tommy Mottol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