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팀

On very strong team

by 서태원 Taewon Suh

"팀"과 "팀을 통한 혁신"에는 무엇보다 신뢰가 필요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물론이요 외부적으로도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신뢰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혁신이 요구하는 신뢰는 사실 근거가 부족한 판단입니다. 사실과 확실한 것을 믿는 것이 과연 신뢰일까요? 신뢰라는 것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요?


신뢰라는 단어는 비즈니스에서 흔하게 사용되며 중요시되나 이 단어의 사용례와 의미화 과정을 연구해 보면 실제로 과용과 오용이 흔합니다. 아마 사기꾼이 이 단어를 가장 자주 과용하고 오용하는 부류 중의 하나일 것이지만, 경영자와 경영학자의 경우에도 이 단어의 사용은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신뢰의 본연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경제학자인 올리버 윌리암스는 계산에 근거한 신뢰는 리스크라고 불러야 한다고 일찍이 주장한 바 있습니다. 지식에 근거한 신뢰는 리스크에 대한 계산된 결과에 따른 기대라는 것입니다. 조직 일체감에 근거한 신뢰 역시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해 단순화된 사회적 계산의 결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뢰를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윌리암슨의 이 논의는 우리의 기대보다 더 유의미하며 따라서 대부분의 신뢰 현상은 리스크를 계산하고 산정하는 다양한 방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몇몇 연구들은 특별히 비즈니스에서 관찰되는 이타주의의 많은 경우도 사실 계산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어떤 비즈니스맨이 자신의 블로그를 관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독자를 이롭게 하는 많은 정보를 정성스럽게 마련하여 포스팅합니다. 이 블로그와 해당 블로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그 블로거는 특정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평판과 신뢰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른바 콘텐츠 마케팅의 일반적인 시나리오입니다.


이 콘텐츠 마케팅의 예처럼 신뢰를 얻기 위해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 내보여지는 이타적인 행동을 [전시된 신뢰 (Exibited Trust)]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 행위는 다만 눈앞의 득실에 대한 계산보다는 미래가치에 대한 계산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단기적인 리스크 계산보다는 우월하지만 여전히 계산의 범주 내에 존재합니다. 자기 종족 내의 짝짓기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유할 목적으로 이타적인 행동을 전시하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임을 부각하는 동물의 경쟁적 이타주의 행동과 사실 유사한 것입니다.



전시된 신뢰 현상에서 이타주의는 주로 지식의 전달에 연관되는데, 그것은 이미 획득된 지식의 복사에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전달된 지식의 실제 효용은 지식의 수용자에게 발생할 추가적인 비용에 비례하여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는 요구를 넘는, 과도한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신뢰의 능력을 전시하고 신뢰 관계를 형성하려는 의도가 흔하게 발견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어떤 이타주의는 계산성의 범주 안에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타주의의 어떤 종류마저 합리성에 기초한 계산이라면, “비즈니스에서는 아무도 믿지 마라”라고 하는 세속의 말은 확률적으로 더욱 정확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윌리암슨이 말한 (리스크가 아닌) 순수한 종류의 신뢰라는 것은 비즈니스의 영역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역설적으로, 신뢰에 대한 순진한 생각이 무너질 때 우리는 한줄기 순수한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빛은 아직 정량적 데이터가 미치는 못한, 매우 예외적인 신뢰의 개념에 대한 것으로서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근거 부재의 믿음(leap of faith)에 대한 것이며, 짐멜에 따르면 신뢰의 뭔가 그 이상의 요인(further element)에 대한 것입니다. 아마도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신뢰하려는 성향과 관련되며, 신뢰의 생리학적인 메커니즘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 옥시토신이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궁극적인 혁신의 실현은 근거가 빈약하지만 강력한 신뢰의 연결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연결에는 득실을 따지는 계산이 부재하는 이상(vision)에 대한 과감한 경향성과 그에 관련되는 공동적 행위가 관련될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신뢰에는 개인적인 인지와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아마도 원형적이고 단체적인 수준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과 희망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종류의 꿈과 희망은 사실 이러한 근거가 부족한 신뢰의 개념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계산성이 편재한다고 해서 신뢰가 부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가장 높은 신뢰의 원천에 대해 우리가 더 잘 알게 될 때, 우리는 이 신뢰라는 희망의 순수한 씨앗이 드물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싹트고 자라 사회적 혁신의 열매를 맺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과학적인 사례로써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이기심과 계산이 편재하는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말입니다.


[매우 강한 팀]은 이러한 예외적인 신뢰에 기반해야 합니다. 공상적 착각도 아니고 사람 간의 의리도 아닙니다. 누구도 보지 못한 놀라운 이상을 씨앗으로 자라난 실제적 신뢰입니다. 그야말로 예외적인 희망의 발견입니다. 돈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최종 목표가 아닌 누군가가 긴 시간 삶의 거처로 삼을 수 있는 그러한 기업은 드물지만 계산되지 않는 요소를 가진 신뢰로 가득 찬 공간에 존재할 것입니다.



위의 글은 2016년 11월 6일 매일경제신문에 실렸던 칼럼의 수정본으로 아래와 같은 학술논문에 대한 commentary입니다.


Taewon Suh (2017), Exhibited trust and excessive knowledge specificity: A competitive altruism hypothesis (전시된 신뢰와 과도한 지식 특수성: 경쟁적 이타주의 가설), Industrial Marketing Management, Vol. 62, pp. 50-61.


[What I Am] by Edie Brickell & New Bohemians, 1988

*Title Image: [Portraits] by David Hock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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