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넓히기를 위한 시장 쪼개기

글로컬 스타트업을 위한 한 가지 역설

by 서태원 Taewon Suh
대안적인 글로컬 스타트업[glocal startup]의 시장에서의 목표에 대한 이론적인 논리를 정립하기 위한 글입니다.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 이것은 메인스트림이 아닌 대안적인 시각에 대한 것입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대중적이거나 일반적인 방법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이 이론화는 특정한 소수의 특정한 이상의 성취를 목적으로 합니다.
둘째, 이 접근은 상업적인 가치 위주의 사고를 넘어서 좀 더 포괄적으로 일반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매크로 시스템 위주의 사고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사회 생태 환경론적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하위 스케일의, 기능적인 실천에 강조를 둡니다.


[매스 마켓에 대한 신화를 부수기]

성장 가능성(scalability)은 스타트업에 대한 고려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이 요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더 큰 수익률을 우려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겠지요. 그러나 이 요소가 항상 상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크기에 대한 중립적인 시각을 취하고자 합니다. 큰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회 과정은 다양성의 부족으로 인하여 문제를 겪습니다. 거리의 스피커를 통해 항상 같은 노래를 듣게 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상당히 괴로운 일이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 그것이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개의 스타트업은 유니콘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거나 혹은 유니콘이 되고 싶다는 갈망을 갖습니다. 또한 그러한 전제가 어느 경우에도 해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팀이 유니콘이 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해당 디자인은 부분적으로 목적과 내용의 불일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균형의 결과를 처음부터 포기한 셈이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 목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이 디자인의 아름다운 결과가 우연스럽게 산출된다는 것은 상당히 낮은 확률의 일입니다.


20세기 말부터 사회 혹은 시장 시스템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도 그 한 가지이지요. (흔히 듣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는 그 부류의 결과입니다.) 대안이라기보다는 수정주의적인 흐름입니다. 이 흐름은 진화심리학적인 이타주의와 사회적 인정 (혹은 평판) 시스템에 대한 논리에 연결됩니다. 이 논의가 전제하는, 사회적 인정 혹은 평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자본주의를 수정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새롭고 혁신적인 방향이라기보다는 메인스트림의 지속을 위한 방편이며 이미 존재하지만 숨겨진 메커니즘을 발견하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혁신적인 대안도 필요합니다. 대안 모델에 대한 의의 혹은 필요성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 가지 주의(-ism)가 지나치게 주도적으로 되는 것을, 현 질서가 지나치게 정형화되고 고착되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양성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 혁신이 필요합니다. 항상 다른 방식의 방법론이 존재해야 하고 그 방법을 취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의 생존 환경이 주어져야 합니다. 항상 왜 그래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고 실재가 아닌 신화에 빠져서 의미도 모르는 행동을 반복하게 됨을 경계해야 합니다.


Entrepreneurship의 관점에서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모든 스타트업에 대한 양육 모델이 실리콘 밸리의 방법론을 따를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될 것입니다. (주도적인 방법론은 물론 일반화를 추구할 것이지만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상황들로 인해 일반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우주적인 일반 모델은 없다는 것이 우주적인 일반 모델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라나는 다양한 스타트업의 생태학적인 모델이 필요합니다.

벤처캐피털은 이제 하나의 산업을 이루었습니다. 산업이란 것은 일견 표준화를 의미합니다. 디자인의 방법도, 키우는 방법과 과정도 점점 비슷해져 갑니다. 스타트업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구태의연한 존재들이 생산됩니다. 누구에게는 좋은 소식이겠지만, 다른 어떤 그룹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됩니다.


생명력 있는 삶을 추구하는 우리는 그러한 스타트업 시장을 쪼개고 해체하길 원합니다. 매끈한 하나의 작품보다는 작은 조각이 모인 모자이크를 원합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스타일보다는 본질의 진정성을 추구합니다. 시장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시장을 쪼개고 해체하길 원합니다(i.e., disruptive innovation). 공룡들의 틈새를 파고들며 새로운 생명력을 표출합니다. 현실의 진정한 혁신은 많은 경우 삶의 목적에 대한 명확한 정의에 관련된 사고와 활동에서 시작됩니다.


Roy Lichtenstein, Cow Triptych: Cow Going Abstract (set of 3), 1982


[시장 쪼개기]

모든 일에는 제한이 필요합니다. 개체가 제한을 받아들이는 것 만이 전체의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됩니다. 풀이 나무로 자라서는 안되며 한 가지 종류의 개체가 지나치게 많아서도 안될 것입니다. 건강한 숲은 모든 종류의 식생이 다양하게 뒤섞여 있어야 합니다.


이 주장은 당위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향후 메타버스를 통해 실현될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의 중심으로서 실현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시장의 유기적 제한을 받아들인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제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역설이 편재하는 거대 일반 법칙을 생각해 볼 때 지나치게 단순한 것입니다. 현명함은 보다 큰 그림에서 이익의 총량을 제한하며 시장의 크기를 제한하지만, 오히려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역설을 취합니다.


시장의 해체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장을 엽니다. 새로운 microcosm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현실 시장은 과밀하게 보이지만 수많은 균열이 있고 수많은 틈이 있습니다. 틈을 확장하여 충분한 공간을 만듭니다. 그 공간은 상대적으로 작겠지만 경쟁의 전쟁터 바깥에 존재합니다.


이것은 이른바 foothold market 전략과 유사합니다. 작지만 충성스러운 세그먼트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시장을 확장해 나간다는 것은, 21세기 스타트업 마케팅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foothold market을 매스 마켓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이 세그먼트의 고객에 대한 관계를 중심으로 비즈니스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계속성을 위한 장치가 구조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시장을 만들어 나간다는(market-shaping) 인식이 중요합니다.


[시장 넓히기, gleaning in the global fields]

공중의 자비에 기초한 비즈니스 모델은 의지할만하지 않습니다. 대개 사회 시스템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공중의 자비는 일관적이지 않으며 상황에 따른 긍정적 감정에 의지합니다. 자비보다는 가치와 이상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그들에게는 공유된 이상에 따른 자생적인 모델이 필요합니다."좋은 생각이야" 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작더라도, 명확한 증거의 제시가 필요합니다. 기술 혹은 아이디어에만 천착한, 고집스럽고 거품 낀 생각이 아니라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작은 성공이 필요합니다. 시장의 틈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합니다.


이 [시장 쪼개기]의 양적 한계는 글로컬 모델로 해결됩니다. 작은 것이 모여 충분히 큰 크기가 됩니다. 글로벌 마켓에 걸친, 연결된 시장의 실재와 신뢰의 기반이 되는, 실천자들의 비전과 가치의 공유가 존재할 때, 이 있음 직하지 않은 일은 가능해집니다. 강력하게 연결된 local presence를 통해 글로벌한 틈새시장을 파고듭니다.


로컬 플레이어들은 강력하게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다양성에 기초한 인간의 끈]이 중요한 기초가 됩니다. 시간이 걸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과정을 합리적인 절차를 위해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의 큰 단위가 아닌 이상 작은 조각들의 집합은 강력한 연결 없이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결 이후에는 압축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은 대안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쪼갤 때 넓어지는 역설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러한 글로컬 스타트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우 강한 팀으로서의 [글로컬 스타트업]은 본질적인 사상을 갖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합니다. 물질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목적을 확실히 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단기적인 효율성을 위해 절대로 본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는 지속불가능의 가장 단순화된 이유입니다.


*Title Image: Roy Lichtenstein (1990), [Living Room]


[Now I am an arsonist] by Jonathan Coulton ft. Suzanne Vega i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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