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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그레이스 Oct 13. 2023

두 아들의 엄마로 살다보니 오십




첫째 아들을 낳았을 때 제왕절개를 하고 몸이 안 좋아 아들을 바로 못 봤다.

몸에서 열이 나니 간호사가 얼음주머니를 겨드랑이와 이마에 얻었다.

엄마는 산모에게 이렇게 차가운 얼음 주머니를 얻으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셨다.

당황한 간호사는 어쩔줄 몰라하며 얼음주머니를 다시 가져갔다.

엄마 덕분에 이틀 정도 지나 몸을 추스르고 아들을 보러 갔다.

작고 이쁜 얼굴, 손, 발 오밀조밀한 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10개월 동안 함께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오냐고 수고 했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첫째를 어머님이 봐 주시기로 했지만 어머님이 사정이 생기셔서 못 봐준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계속 흘렀다. 어머님도 속상 하셔서 말씀 하셨겠지만 난 아이 낳고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됐는데 몸도 마음도 작아져 있었다. 아무말 안하고 울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왜? 울어? 김서방 사고 났냐? 라고 물으셨다. 아니라고 해도 아무말 안하는 나에게 엄마는 계속 

물었다. 어쩔수 없이 난 ”아니야, 우리 아이 내가 키워야 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엄마는 왜 회사를 그만 두냐고 더 다니라고 무슨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큰언니가 아이를 보러 친정에 왔다. 내 상황을 듣고 언니는 언니가 봐 줄테니깐 직장 그만 두지 말라고 한다. 난 아니야 :”뭐 좋은 직장이라고 그만 둬 내가 볼게“ 라고 말했다.

언니는 ”아니야, 좋은 직장 아니라도 계속 다니면 돈 벌어“ 라고 말하며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언니처럼 살지 말라고 언니는 중학교 밖에 못 나와서 취직해도 현장직이라 몸이 힘든데

넌 그래도 사무직이라 몸은 덜 힘들지 않냐면서 언니는 나를 설득했다.

마음이 따뜻한 언니에게 아이를 맡겨도 되겠다 싶었다. 언니의 은혜와 배려 늘 감사한 마음이다.     

엄마와 언니 덕분에 난 회복을 잘 하고 직장으로 복귀를 했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아이가 눈에 밟혔다. 잘 먹고 잘 싸고 잠은 잘 자는지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집중해서 하라고 한다.

언니는 우리 아들을 키우면서도 한번도 짜증을 내는 일이 없었다. 언니는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고 늦게 언니집으로 가도 밥 먹었는지 꼭 물어보고 안 먹었다고 하면 맛있는 밥상을 내 앞에 갖다 주었다.

언니가 있음에 감사한 줄 모르고 지내다 글을 쓰면서 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언니 고마워. 언니가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형부와 조카들한테도 너무 고마웠다. 늘 한결같은 형부 힘드셨을텐데 내색 안 하시고 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조카들도 우리 아들을 잘 봐줬다. 고맙다.      


돌이 지나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이젠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겠지 싶어 데리고 왔다.

돌이 지난 아들은 걸음마를 하고 아장아장 걸었지만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난 직장과 육아를 하면서 힘든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둘째를 갖고 딸이길 간절히 바랬지만 또 아들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감사하며 하루 하루 잘 지냈다.     

둘째도 큰언니가 키워준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축하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언니의 고마움에 눈물이 흘렀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 언니의 마음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둘째도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첫째는 고생하다가 제왕절개 수술을 했지만 작은 아이는 수술 날짜 받아 놓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작고 이쁜 둘째가 태어났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 감사했다. 두 아들은 우리 가족의 기쁨이었고 큰 선물이였다.

큰언니 도움으로 둘째도 돌 때까지 키워줘서 난 수월하게 돌까지 잘 아이들과 지냈다.     

둘째가 돌이 지나 집에 오면서 나는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큰아이 유치원 작은아이 놀이방 난 회사로 아침마다 전쟁이였다.

아침이면 아이들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출근하기 바빴다.

저녁이면 아이들 데려와서 씻기고 밥을 먹이고 나면 내 몸은 지쳐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조금만 읽어줘도 목이 아프고 잠겼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다. 피곤한 나는 3권정도 읽어주고 아직도 안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불을 끄고 자장가를 불러줬다.

아이들은 <엄마가 섬그늘에~ 지구장자 자그장자 ~ >하면서 오히려 더 말똥말똥 노래를 불렀다.

정말 웃겼다. ”우리 아이들은 누굴 닮아 이렇게 웃기지”잠을 재우려고 하면 더 안 잤다.

그래서 둘이 지칠때까지 놀라고 하고 불을 끄고 나오면 둘이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하루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며 흐믓했다.

어르신들은 말씀 하신다 “아이들 키울 때가 가장 행복한 때라고 하신다” 그때는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그때를 생각하면 나 혼자 웃는다.

사진을 보며 웃고 영상을 보며 웃는다.     

어느새 난 오십이 넘었지만 그 때 그 시절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복했을 때 생각하면 흐믓하고 좋다.

하지만 이제 오십이 넘으니 내 인생을 찾고 싶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글을 쓰면서 좋은일들이 생긴다. 내가 과거에 감사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식어 있는 감사함을 다시 끄집어 내서 감사와 사랑을 전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 놀래서 웃고 사이가 더 좋아졌다.

이런 일들이 감사와 행복임을 하루 하루 경험하며 지내고 있다. “좋은 일들은 나에게 쏟아 지듯이 온다 ”라고 확언하고 감사하며 글을 쓰니 좋은 일들만 나에게 온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두 아들의 엄마로 살면서 오십이 되었지만 앞으로 내 인생의 꽃길만 있을 걸 확신하니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매일 쌓여가는 나의 습관에 가시처럼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잎이 생기고 열매가 맺어서 풍성한 나무가 되는 날을 상상하며 난 오늘도 나뭇가지 하나에 잎을 그린다.     


이제부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학생때로 돌아간 것 같아 설렌다.

학생때는 그때의 소중함을 몰라 지나쳤던 공부와 친구들 지금은 나이 들어 하는 공부가 즐겁다.

가끔 막히고 모르면 힘들때도 있지만 그날들이 쌓여서 나의 큰나무가 생기고 숲이 생길걸 알고 있다.

노래를 부르며 그 숲길을 걸을 날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제2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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