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지난해 오늘(12/31), 연 1회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방문한 치과 스케일링에서 “함치성 낭종”이 발견됐다. 사랑니를 늦게 뽑아 물혹이 생긴 것인데, 이게 치 신경을 지나고 있어서 간단한 시술로는 제거가 불가능했다. 결국 대학병원에 3박 4일 입원해서, 낭종 제거와 사랑니 3개 발치를 위한 수술을 받았고 몇 달 간 병원을 오가며 고생했다.
살면서 늙음이나 죽음을 생각하고 경건해지는 때가 많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만에 하나 그러니까 0.01% 확률로라도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두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8살, 그리고 유치원생 6살이었다.
3박 4일 입원하면서 두 권의 책을 들고 갔다. 야구를 통해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성의 가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행동경제학 저서인 『인사이드 게임』,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벽돌 책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이었다. 좋은 책들이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과는 맞지 않았다. 인생관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선 양치를 구석구석 잘하게 되었고 술을 줄였고 체중을 4kg 정도 감량했다. 전투적인 독서를 잠깐 내려놓고 매달 소설과 에세이를 사들였다. 늙음이나 죽음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고, 두 권의 책을 만났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 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스토너는 1891년에 미주리주 중부 분빌 마을 근처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
소설의 도입부다. 이것이 소설의 줄거리이고 모든 것이되, 모든 것이 아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해두고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담백하지만 숨쉴 수 없이 매혹적이다.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울림”을 이야기 한다. 도서의 띠지에 몇 가지 감상평이 있는데, 옮겨 적어 보면,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많이 너무 많아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끝내 위엄을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성실하도고 위대한 문학.”
― 이동진 (영화평론가)
“나조차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때 누군가의 깊은 내면을 따라가 보는 일은 특별한 위로를 준다. 《스토너》는 내게 그런 소설이다.”
― 최은영 (소설가)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자신이 꿈꾸던 삶과 일, 그것에 대한 애정과 담백한 삶, 그리고 조용한 죽음. 이 소설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정말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울림”을 느끼고 싶다.
자신을 한국전쟁 중 지푸라기를 쌓아놓은 토방에서 태어난 1952년생이라고 소개하는 사람. 페라가모와 막스마라와 같은 이태리 브랜드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장본인,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로 많은 동료를 잃고 인생의 다른 면을 생각한 사람, 그리고 이제는 구독자 90만 유튜버, 3백여 쪽의 책을 쓰면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사는 게 참 극기훈련 같았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에게, 겨우 요거야?’라는 생각이 든다는 사람.
10대 꿈을 꾸었다, 20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30대 부단히 전력투구했다, 40대 약자의 삶에 더 다가갔다, 50대 자유로워졌다, 60대 인생 계획에 없던 유튜버가 되었다, 70대 매일이 설렌다는 사람.
‘조촐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사람, 아담하고 깨끗하고 행동이 난잡하지 않고 깔끔하고 얌전한 삶.
전 세계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2021년이었고, 나 역시 그 과정을 함께 견디고 이겨냈다.
우리의 이웃과 또 그들의 이웃에게, 또 내게 담백하고 조촐하며 충만한 2022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