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W. Wagner 교수와 송준호 교수의 40년 우정과 학문
가장 널리 읽히는 한국사(통사) 기본서는 세 권이다.
이기백(1924~2004), 『한국사신론』(1967, 1976, 1990, 1999)
변태섭(1925~2009), 『한국사통론』 (1986, 1996, 2006, 2007)
한영우(1938~2023), 『다시 찾는 우리 역사』 (1997, 2004, 2014)
『한국사신론』은 1988년 하버드대학 Edward W. Wagner 교수에 의해 영문판 『A New History of Korea』으로 번역되어 하버드대학 출판부와 일조각에서 동시 출간되었고,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역시 영어판 『A Review of Korean History』를 비롯하여 중국어·일어·러시아어로 번역되었다.
Edward W. Wagner(1924~2001) 前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내에서 한국학의 아버지(Father of Korean Studies)라 불리는 인물로 한국 역사로 학위를 받은 최초의 미국인으로 1981년 하버드대학교 내에 한국연구소(Korea Institute)를 설립하였으며, 한국인 김남희 여사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1959년부터 1993년 은퇴할 때까지 총 34년간 하버드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특히 이기백 교수 등과 1990년 공저한 『Korea Old and New: A History』는 해당 분야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의 책 중 한 권이 동아대학교 이훈상 교수에 의해 한글로 번역됐다.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
해당 책의 작가 소개를 보면 흥미로운 일화가 나온다. 와그너 교수가 평생에 걸쳐 송준호 교수와 교류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결국 끝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다.
와그너는 35년 넘게 하버드대학에서 한국학의 개척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으며 그의 노력으로 축적된 옌칭도서관 내 한국학 자료실은 서구 한국학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하와이대학의 에드워드 슐츠와 함께 영어로 번역한 이기백 선생의 『한국사신론 The New History of Korea』은 한국학에서 일종의 지표 역할도 겸하고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는 정년 이후에도 송준호와 평생에 걸쳐 공동으로 추진해온 ‘와그너-송 문과방목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애썼으나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1년 11월 7일에 작고했다.
(참고. 이훈상 교수가 작성한 와그너에 관한 짧은 평전)
송준호(1922~2003) 교수는 1950년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4~1987년 전북대 사학과 교수(정년 퇴임), 1987~97년 원광대 사학과 교수(석좌 교수)를 지냈다.
1964~1966년과 1972~1974년, 1997~1999년에 총 세 번에 걸쳐 하버드대 객원교수와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3번의 안식년을 하버드대학교에서 보내면서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와 깊게 교유하며 연구했던 것이다. 작가 소개를 보면 평생의 우정과 학문적 연구에 관한 서술이 있다.
주요 저서로 《이조 생원진사시 연구》(국회도서관, 1970)와 《조선사회사 연구》(일조각, 1987)가 있으며, 조선 시대의 과거 제도 및 한중 양국의 전통 사회를 주제로 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조선조 500년간의 지배 엘리트 10만여 명에 대한 자료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신분제 강화설을 주장함으로써 임진왜란(壬亂) 이후 신분제가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기존의 통설을 유지해온 학계에 일대 충격을 던진 그의 학문적인 입장은 《한국사 시민강좌》 제11집(1992)에 수록된 “나의 책을 말한다”에 잘 요약되어 있다.
특히 그가 하버드 대학의 와그너 교수와 평생에 걸쳐 학문과 우정을 나누며 공동으로 작업한 ‘Wagner-宋 조선문과방목’ 프로젝트는 한국 학계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남아 있다.
(참고: 한국사 시민 강좌)
지금과 같이 검색엔진이나 다양한 데이터베이스,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도 아니고 60년대부터 40년 간 연구를 어떻게 진행했다는 것인가? 그것도 사회학 실증 연구를?
Martina Deuchler 교수(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의 기고문을 보자.
와그너 송 : 문과방목 프로젝트의 가치
‘Wagner-Song 문과 프로젝트’는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 Wagner) 교수님과 전북대학교의 송준호 교수님의 공동 연구 사업으로써 1960년에 시작되었다. 그들의 연구는 문과 급제자 14,600명 가량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조선 시대 (1392~1910) 집권층을 분석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과거 급제자 명단, 즉 방목에 포함되어 있는 귀중한 정보를 학문적으로 연구 가능하도록 만든 최초의 종합적 시도였다. 불행히도 두 학자가 고인이 된 후에도 프로젝트는 여전히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 꽤 긴 시간을 할애해야 했는데,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술적 문제, 즉 와그너 교수님과 송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착상했을 때만 하더라도 컴퓨터 기술이 여전히 초기 단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자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와그너 교수님이 한자 한 글자를 입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펀치카드(punch card)를 필요로 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요컨대, 이 프로젝트는 시대를 앞서 나갔으며 당시에 직면한 기술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인터넷 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문과 급제자의 이름을 검색하고, 이 사람이 합격한 시험 정보, 가문, 직책 등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지 알 것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렇게 찾은 정보는 그 자체만으로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지 못하는 미가공 데이터다. 그러므로 두 교수님은 합격자 각각의 이름에 족보, 문집,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찾은 자세한 정보를 입력시키려고 했다. 이 같은 노력을 ‘Wagner-Song 문과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결국 두 명의 학자가 40년 동안 한 땀 한 땀 했다는 이야기다. 입력이 불가능한 한자의 대용으로 중국의 전신 부호계를 사용하여 변환하고 데이터화했다. 물론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는 있지만, 조선 시대의 지배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과정은 디지털 인문학의 주제로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송준호 교수는 2000년까지만 해도 월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젝트의 완성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국 2001년 동방미디어에서 CD-ROM으로만 간행되고(서지 정보), 실제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진 못했다. 와그너 교수는 2001년 작고했고, 송준호 교수도 2003년 유명을 달리했다.
이 연구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대로 버려졌을까? 혹은 후학에 의해 계승되었을까?
2008년 기사를 보면,
‘과거 급제자 총정리’ 韓美학자 미완의 작업 완성
故 송준호-와그너 교수 ‘조선시대 文科백서’… 유족들이 마무리
조선시대 과거시험 가운데 문과(文科)는 태조 2년에 처음 실시돼 고종 31년까지 모두 748회가 치러졌으며 급제자는 1만 4607명이다. 748회 시험의 기록을 모두 찾아 급제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방대하기 이를 데 없는 작업이다.
여기에 손을 댄 학자가 있었다.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전북대 원광대 교수, 미국 하버드대 객원 교수와 연구 교수를 지낸 송준호 교수다. 그는 1966년 평생 친구이자 미국 내 한국학 연구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와그너 전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와그너-송 조선문과방목(朝鮮文科榜目)’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 학자는 합격자뿐 아니라 친인척까지 10만여 명의 출생과 사망 연도, 본관, 출신지, 거주지, 최고 관직 등의 정보를 꼼꼼히 살폈다.
30년 넘는 조사를 끝내고 원고 집필을 하던 도중 와그너 교수가 2001년, 송 교수가 2년 뒤인 2003년 세상을 떴다. 송 교수의 셋째 아들인 송만오(49) 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가 유업(遺業)을 이었다.
송만오 교수가 작업을 이어받았을 때 합격자에 대한 기본 정보는 모두 입력이 끝난 상태였다. 그러나 748회의 시험이 언제, 어떻게 실시됐는지 등을 소개하는 설명문은 50개 정도만 완성돼 있었다.
송 교수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타계한 두 교수의 원문을 최대한 살리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고 와그너 교수의 부인인 김남희 여사는 하버드대 옌칭연구소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도록 도움을 줬다. 아들은 책의 첫 장에 ‘이 책을 와그너 교수님과 아버님의 영전에 바칩니다’라고 썼다.
책은 상, 중, 하권으로 기획되었다. 2008년 상권이 출간(삼우반 출판사) 되었고, 2017년에 중권이 출간되었다(조인출판사). 상권과 중권 사이에 10년 가까운 세월이 있고, 출판사가 바뀌었다. 중권의 서문에는 이러한 글이 나온다.
《조선시대 문과백서》 중권을 펴낸다. 상권이 2008년 4월에 나왔으니 9년 만이다. 상권에 대한 작업이 2004년 초부터 4년 정도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중권을 완성하는 데는 상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이번 중권과 작업 분량이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권은 아무리 빨라야 2026년 여름이나 되어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2026년 여름에 과연 이 프로젝트는 마무리가 될까?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40년에 가까운 한국 사학자와 미국 사학자의 우정, 또 그들의 결실을 2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완성해 나가려는 후손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따뜻하다.
[참고 1]
와그너 교수는 흔히 이야기하는 지한파, 친한파 학자였다. 아래는 그의 연구 성향과 업적에 관한 브리검영 대학교 Mark Peterson 교수의 의견.
Wagner was the first of the generation of iconoclastic historians who challenged the accepted ideas, many of which had been learned in Japan and under Japanese control in Korea. Many of these ideas of Japanese origin were designed to “show” that Korea was inferior to Japan, and thus justify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Wagner helped to break that mold.
And he had help in Korea. His closest colleague was Song June-ho of Jeonbuk Nationalk University who spent three sabbatical years over his career at Harvard working with Wagner. They created the Wagner-Song Index of those who passed the Munkwa Civil Service Exam, all 14,607 of them from the 500-year Joseon Kingdom, and in the index were those connected to the passers, creating a rolodex of 100,000 men who were the leaders of Korean society in traditional times.
[참고 2]
본문에서 등장하는 일조각은 1953년 한만년이 서울 종로에 설립한 출판사이고, 첫 번째 책은 설립자 한만년의 장인인 유진오가 저술한 《헌법해의》였다. 한만년은 상해 임시정부 법무위원, 동아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편집장을 역임한 한기악의 둘째 아들이고, 한만년의 장인 유진오는 경성제국대학 예과 입학시험 수석, 법문학부 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제대 교수 등의 여러 직책을 거쳐 제언 헌법을 입안하고 고려대학교 설립에 관여하여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나,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평가되는 문제적 인물이다.
한만년의 막내아들은 한홍구 교수이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는 책과 글이 있다.
한만년 선생은 회갑을 맞이하며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일업일생(一業一生)>을 펴냈는데, 막내아들 홍구(역사학자 한홍구)에 대한 걱정을 절절하게 적고 있다. “좌경으로 낙인찍힌 덕택으로 장래 변변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더더욱 싫은 법이다. 그런 형제나 자매나 친척을 두었다는 이유로 음으로 양으로 불리한 대우를 받을 다른 자식, 친척들 간에 조금이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까 보아 더더욱 생각하기도 싫다.”
한만년(1925~2004) 대표의 걱정과는 달리 4남 1녀는 모두 서울대를 졸업하고 교수가 되었고, 한만년 사후 일조각은 둘째 며느리인 김시연 씨가 대표를 맡아 이끌고 있다.
[참고 3]
미야지마 히로시(2008), “와그너 조선사 연구의 문제성”, 플랫폼, pp. 34~37.
송만오 (2010), “조선 지배층 추적에 이정표를 세운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와 송준호 교수의 공동연구”, 한국사 시민강좌, 46, pp. 217~232.
이훈상 (2002), “특집 미국의 한국사 연구-에드워드 와그너의 조선시대 연구와 이를 둘러싼 논점들, 역사비평, pp. 99~125.
조선시대 文科 급제자 1만 4600명 분석한 宋俊浩 교수, 월간조선, 2000년 12월호.
[참고 4]
이기백 “우리 민족은 누구” 실증 연구… 식민사관 넘어 한국사학 새 지평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6011121381373
[건국 60년의 책·담론·지식인 김호기 교수의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
民族의 눈으로 韓國史 새 지평을 열다!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73055
[김호기의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2) 민족주의, 역사와 미래 사이에서: 이기백과 리영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309292247155
'그들'이 말하는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9
역사학계의 식민사학 비판 우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17/07/19524/
‘전설의 편집자’ 정해렴이 쓴 53년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6690.html
[역사학자 백승종 교수] “유교에는 ‘변두리 인생’이 세상 바꿀 수 있다는 확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