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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3. 2019

멜 커피 로스터스 Mel Coffee Roasters

일본 카페투어#9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이 멜 커피 로스터스 Mel Coffee Roasters 라는 곳을 보게 되었다. 앉는 곳 하나 없이 작은 규모의 매장과 이 곳을 운영하는 두 젊은 부부의 사진 몇 장. 왠지 느낌이 좋아서 나중에 오사카에 방문하면 꼭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오사카는 아마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일본의 도시가 아닐까 싶다. 2시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풍성한 먹거리. 흔히 오사카 여행에는 ‘먹방 투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개인적으로는 도쿄나 후쿠오카에 비해서는 오사카를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내가 일본으로 여행을 온 것인지 부산으로 여행을 온 것인지 상해로 여행을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물론 나는 한국인으로서 나의 민족을 사랑하지만, 짧은 여행 중에 만나는 한국인들은 때로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때가 있다.


저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세상을 낯설게 보는 경험을 하기 위함이다. 


매일 보는 풍경과 매일 듣는 언어 그리고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닌 새로운 풍경, 새로운 언어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일. 나에겐 무료하고 타성에 젖기 쉬운 인생에 이런 자극은 큰 활력이 된다.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한국인들을 많이 마주치게 되면 왠지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왔던 한국의 잔상들이 많이 떠올라, 멀리까지 날아와 어렵게 마주한 외국의 풍경과 오버랩이 되는 듯한 느낌이 싫다.


나의 직장생활 첫 해외 출장지의 컨퍼런스



17년 6월에 내 인생의 첫 출장을 오사카로 가게 되었다. 항공 관련 데이터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CAPA 라는 호주계 기업과 간사이 공항에서 주관하는 ‘LCCs in North Asia’ 라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우선은 첫 해외 출장이라는 것 자체도 신나는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 혼자 떠나는 출장이라는 점이 나의 신남의 화룡정점을 찍어주었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마련해준 크루즈 디너 Cruse Dinner 까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호사스러웠던, 아마 내 인 생에 두 번은 없을 출장이었다.



오사카에서 럭셔리한 크루즈 디너를 맛보는 영광의 순간!



컨퍼런스의 주된 주제는 LCC 들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은 LCC 항공사들의 급증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꽤나 큰 비중으로 한국의 LCC 들이 다루어졌다. 뭐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룰 내용은 아니므로 간단히만 얘기한다면, 한국에는 LCC 가 너무너무 많다는 것. 현실적으로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한국에는 해외 어느 국가와 비교해봐도 LCC가 기형적으로 많다. 어쨌든, 2일간 열심히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연사들의 강연과 토론을 청취하고 시간이 남는 오후 시간을 이용해서 드디어 아기다리고 기다리던 멜 커피 로스터스에 방문하기로 했다. 


Saturday Surf NYC, 타일이 특히 인상적이다


멜 커피 로스터스는 오렌지 스트릿 Orange Street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오렌지 스트릿은 특히 패션 브랜드들이 많이 입점해 있고 아기자기한 샵들이 많아 나도 개인적으로 오사카에서 방문하면 자주 방문하는 곳 중 하나다. 이번 책에서는 다루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근처에 꼭 추천하고 싶은 카페는 Saturday Surf NYC 라는 카페다. 우선은 외부 건물에 멋스러운 타일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너무 멋지고 커피 맛도 훌륭하다.


나는 이 날 오사카 여행의 시작과 끝인 남바 Namba 역에서 시작해서 궂은 날씨에도 여행하기에 편안한 아케이드 쇼핑몰이 즐비해 있는 신사이바시 Shinsaibasi 를 거쳐 멜 커피 로스터스까지 걸어갔다. 구글맵을 보고 걷다 보니 저 멀리서 사진으로 봤던 멜 커피 로스터스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매장을 살펴보니, 정말 작다.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 사장 부부가 함께 바에 있었는데, 두 사람이 서 있기에도 북적일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다. 먼저 드립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남자 사장님이 커피를 내려주는 동안 가게 안을 살펴보다가 한쪽 구석에 걸려있는 브라더 바바 부단 Brother Baba Budan 의 에코백이 눈에 들어왔다. 바바 부단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커피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인도의 문익점이다. 문익점이 과거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가져와 목화 재배에 성공한 것처럼, 인도의 철학자 바바 부단이 아라비카에서 커피 생두 7개를 몰래 가져와 인도에서 커피 재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브라더 바바 부단이라고 적힌 에코백이 내 눈에 띄었던 이유는 사실 이 이야기 때문은 아니었다. 바로 내가 호주의 멜버른에서 생활할 때 자주 방문했던 카페가 바로 브라더 바바 부단의 로고였기 때문이었다.


 브라더 바바 부단의 에코백이네요. 저도 멜버른에 있을 때 저 카페에 자주 갔었어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알고 보니, 사장 부부는 호주의 멜버른에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약 8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카페의 이름인 Mel 도 Melbourne 에서 따왔다고.



Mel Coffee Roasters 의 외관



에코백의 출처는 알고 보니 얼마 전에 브라더 바바 부단 카페 관계자가 이 곳을 방문해서 에코백을 선물해서 걸어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국 카페에서도 근래에 많이 유통되는 멜버른의 듁스 커피 Dukes Coffee 에서도 지난주에 이 곳에 방문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유명한 카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가다 보니 남자 사장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I have a Korean passport!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의아했다.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남자 사장님은 한국말은 전혀 못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이니치, 재일교포였던 것이다. 전혀 그런 생각을 못하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장님의 생김새가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대화를 조금 더 이어 나가다가 원두를 100g씩 2가지를 사 왔다. 


일본 카페에서는 원두를 100g 람 단위로 파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한국에서는 100g짜리 원두를 파는 곳은 찾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200g 이 판매하는 원두의 최소 단위인데 사실 혼자 집에서 내려 먹기에는 의외로 많은 양이다. 나는 보통 한 번 커피를 내릴 때 20g을 쓰는데 그럼 10잔 분량이다. 매일 하루에 한 잔을 내려도 10일치다. 생활하다 보면 밖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는 경우가 많고 평일에는 퇴근 후에 늦게 들어오다 보니 커피를 내려 먹는 날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 그럼 어느새 원두가 로스팅한 지 2주 3주가 지나버리고 커피의 신선도가 확 떨어진다. 다 마시면 그때 또 100g짜리 원두를 사는 편이 집에서 커피를 혼자 내려먹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 적합하다. 부디 한국에서도 100g으로 원두를 소분해서 판매하는 카페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본다. 




라마르조꼬의 스테디셀러, 리네아 머신을 사용하고 있다


이 좁은 카페에 로스팅 공간까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 에스프레소 머신과 브루잉 스테이션 그리고 로스팅 머신까지! 대단한 공간 활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일본 특유의 축소 지향적 정신이 빚어낸 공간이 아닐까. 


이 날 즐거운 대화와 맛있는 커피 한 잔까지 말 그대로 퀄리티 타임 Quality Time 을 보냈다. 무엇보다도 이 곳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 있던 이유는 사장님 부부의 커피 사랑이 은은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후에 오사카에 갔을 때 다시 이 멜 커피에 방문을 했는데 아쉽게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알고 보니 월요일 휴무. 좌절의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이 곳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월요일 휴무는 꼭 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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