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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덕후 Jan 11. 2019

마루야마 커피 Maruyama Coffee

일본 카페투어#3


세계적으로 커피에 미친 도시를 꼽으라면 어느 곳을 꼽아야 할까?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도시는 아마 호주의 멜버른 Melbourne일 것이다. 나도 대학생 시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멜버른에서 6개월간 생활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말에 꽤나 공감하는 편이다. 어쩌면 내가 커피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도 멜버른에 생활하면서 였던 것 같다.


멜버른만큼 멋진 카페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도시를 생각해 보노라면, 도쿄 말고는 사실 잘 떠오르는 도시가 없다. 도쿄에는 정말 좋은 카페들이 많다. 물론 한국에도 좋은 카페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아쉬움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카페들은 개성이 많이 부족하다. 근래 들어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카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의 카페들은 당대의 유행하는 콘셉트를 잘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러자 도쿄는 조금 다르다. 도쿄의 카페들은 유행을 타는 느낌이 잘 없다. 각자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고 그래서 카페 투어를 하는 것이 너무 즐거운 도시이다.


도쿄에는 정말 소개하고 싶은 카페들이 많지만, 그 처음이라면 일말의 고민 없이 이 마루야마 커피이다. 이유는? 그냥 너무 맛있으니까. 앞서 에필로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커피는 대중의 명품이자 대중의 사치품이다. 마루야마 커피는 레스토랑으로 따지면 미슐랭 3 스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쯤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 커피의 가격은? 한국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먹는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6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마루야마 커피의 오모테산도 싱글 오리진 Single Origin 스토어가 오픈했다. 한국인들이 도쿄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간다는 블루보틀 Blue Bottle 커피와 아주 가까이 위치해있다. 싱글 오리진이라는 용어는 스페셜티 커피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무식하게 직역하면 ‘하나에서 유래했다’ 정도가 될 테니, 짐작이 가는 것처럼 하나의 산지에서 생산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의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한 여러 커피 농장들에서 생산된 커피를 한데 모아 가공을 한 뒤 등급을 나누어 ‘에티오피아 커피’라는 큰 카테고리로 판매하는 일반적인 커피의 생산과 판매 방식이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커피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페셜티 커피의 흐름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면서는 각각의 작은 농장 단위로 자신들의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비단 커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축산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요즘은 귤 하나를 시키더라도 어느 지역에 농부 김 모씨가 정성스럽게 재배했다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작은 농장 단위로 관리되다 보니 농장마다의 미묘한 토양의 차이 기후의 차이 그리고 재배의 방식과 커피 씨앗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프로세싱 Processing의 차이에 따라 커피의 맛은 엄청나게 다양한 양상으로 분화되는 것이다.


마루야마 커피의 다양한 원두 구색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커피의 양은 어마어마 하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스페셜티 커피라고 부르는 고품질의 커피는 전체 생산량 대비 10% 이하이다. 때문에 그 10%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더 좋은 커피를 더 많이 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하는 농장주와의 우호적인 관계와 인적 네트워크가 없으면 아무리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있어도 구매를 할 수가 없다. 아직 산지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생두를 구매한 역사가 길지 않아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최상급의 원두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마루야마 커피는 마루야마 켄타로 Maruyama Kentaro 라는 일본의 스페셜티 커피의 부흥을 이끈 장본인이 만든 곳이다. 이곳에 방문하면 먼저 한국에선 마셔 본 적이 없는 다양한 원두들이 다양하게 진열된 모습에 커피 애호가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커피 중 가장 훌륭한 커피를 가려내는 대회인, COE Cup of Excellence 라는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커피도 이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마루야마 커피의 싱글 오리진 메뉴판


 2018 도쿄 커피 페스티벌을 구경하기 위해 도쿄에 방문한 김에, 오픈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마루야마 오모테산도 싱글 오리진 점을 찾아갔다. 규모와 외관은 대단히 소박한 편이었다. 방문하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마루야마 커피는 전통적인 기사텐 (喫茶店, 다방을 일컫는 일본어) 스타일의 카페라는 점이다. 흔히 생각하는 트렌디한 인테리어나 디자인보다는 전통적인 일본의 커피 문화를 그 뿌리에 두고 있는 곳이다.



마루야마 커피 오모테산도점



안으로 들어서면 이렇게 에스프레소 바가 보인다. 2018년 WBC World Barista Championship 의 공식 머신인 빅토리아 아르두이노 Victoria Arduino 사의, 블랙이글 Black Eagle 을 사용하고 있다. 에스프레소 바를 맡고 있는 여성 바리스타의 얼굴이 살짝 보인다. 어쩐지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에이, 설마 미키 스즈키가 여기서 일하고 있겠어?” 하는 생각으로 지나치려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혹시 그쪽이 미키 스즈키 씨가 맞나요?" 환한 미소로 그렇다고 답해주었다. 바로 내가 이 카페를 방문하기 몇 주 전에 한국 코엑스에서 열렸던 2018 WBC에서 2위를 했던 바로 그 미키 스즈키 Miki Suzuki 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바리스타가 세계대회에서 2등을 했다면? 아마도 여기저기 강연이니 컨설팅이니 혹은 카페 창업을 했지 않았을까 (물론 그게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과연 바에서 이렇게 겸손한 미소와 응대 태도로 손님을 맞이하는 바리스타로 바로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살짝 스쳤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손님을 응대하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커피를 정말 얼마나 좋아하는지. 또 바리스타를 직업으로 바라보는 일본인의 정신이 어떠한 것인지가 절실히 느껴졌다. 사실 이곳에 방문하면 꼭 프렌치 프레스로 추출한 커피를 먹어보려고 했는데, 미키 스즈키 씨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먹어볼까 싶어 시원한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2018년 전 세계 2위를 한 바리스타, 미키 스즈키


한 모금 먹고, 할 말을 잃었다.


음?


너무 맛있다. 아니,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인생 라테




그래 오늘부터 이것을 나의 인생 라테고 부르자.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컵이 상당히 작다. 그러니 당연히 우유의 양도 적다. 그리고 컵 안에 는 단단하고 투명하게 잘 얼린 얼음 3개가 들어있었다. 그러니 우유의 양은 생각보다 더 적었을 것이다.


처음 받아보고는 이 정도 비율이라면 거의 스페인의 코르타도 Cortado 정도로 보였고 에스프레소의 맛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한 모금 마셔보니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맛이 났다. 커피와 우유는 이렇게, 이 정도로 섞이는 게 정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얼음이 좋았다. 아이스커피 음료의 맹점은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바리스타가 목표로 했던 커피와 물 혹은 우유의 비율이 빠르게 무너진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방문해본 세계 최고 수준의 카페를 가면 언제나 얼음이 적고 단단했다. 얼음을 빠르게 얼리게 되면 얼음 사이사이에 공기의 기포가 많아지고, 빈 공간이 많다 보니 빠르게 녹아내린다. 반면 빙점에 가까운 온도에서 천천히 얼리다 보면 얼음 사이사이에 갇혀 있던 공기들이 빠져나갈 시간이 충분해져 얼음은 단단해지고 투명해진다. 이렇게 만든 얼음은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천천히 녹는다.


아쉽게도 한국의 소비자들은 아이스커피에는 얼음이 잔뜩 들어간 음료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얼음을 많이 쓰게 되고, 이런 기호에 맞추어 대량으로 얼음을 만들다 보니 얼음의 질도 낮아진다. 심지어는 그 얼음마저도 잘게 갈아서 내주는 카페들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스 라테의 경우에는 너무 금방 커피에 물이 희석되어서 밍밍한 느낌이 나게 된다.


마루야마 커피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러 카페들을 다니며 느끼는 점은 우선 얼음을 적게 쓴다. 그리고 얼음에 기포가 적고 투명하고 크다.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도 다 신경을 썼기 때문에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프렌치 프레스 추출 커피


사실 맛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맛있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맛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둘 중에 한 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미각을 수용하는 수용체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고 맛은 문화적으로 학습이 되는 측면도 크게 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루야마 커피는 ‘맛있는 커피’이다. 때로는 이런 주관적인 분야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일종의 ‘정답’이라는 기준을 설정해 놓는 것이다. 물론 이 ‘정답’은 시대에 따라 변해갈 것이다.  그래도 감히 주장하건대 이곳의 커피 맛은 현시대의 커피 맛이 추구해야 할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본 도쿄에 방문한다면 꼭 한 번쯤 방문해서 맛보길 바란다. 혹시라도 미키 스즈키가 근무하고 있다면 더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2층에 위치한 사이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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