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느낀 건 아니었다. 그의 자리는 높은 편이었고, 오랜 세월 같은 일을 묵묵히 해온 사람이었다. 아무리 바쁜 날도 그에게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지적도 충고도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거세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는 늘 윗사람들의 말을 잘 따랐다. 때론 부당한 지시가 내려올 때도 있었지만, 그는 불만 한마디 없이 지시를 받아들였다. 부하 직원을 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부하 직원을 왕따 시키는 일도 위에서 내린 지시라면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행태에 마음속으로 의아함과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박하려 해도 그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근 30년간 한 업무만 맡아온 그는 단호하고 정확했지만, 그 이상의 쓸모는 없었다. 오직 자신의 생존만 중요한 사람처럼 보였다.
차장님과 함께 일하는 동안 많은 동료들이 그를 떠나갔다. 처음에는 다들 의욕에 차서 일을 시작하지만, 차츰 그의 무심함과 단절된 태도에 지쳐갔다. 그에게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조직은 그저 기계처럼 모든 것이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곳이었고, 우리는 그 톱니바퀴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아침 일찍 출근해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퇴근 시간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팀원 중 누가 고민이 있든, 어려움을 겪든 그는 그저 모른 척하거나 차갑게 조언 몇 마디만 남길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그에게 기대를 두지 않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동료들이 그 곁을 떠났다.
결국 나도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것이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리더였다.
그가 혼자 그 자리에서 살아남아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남은 건 텅 빈자리와 사람들의 기억 속 차가운 모습뿐일 것이다. 나도 그를 떠나겠지만, 이 조직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을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