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칼날
처음 회사를 들어갔을 때, 나는 늘 날 선 사람이었다.
빠르게 판단했고, 누구보다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사람들은 내 성과를 칭찬했고, 나도 그것을 당연한 결과라 여겼다.
그때의 나는 마치 잘 벼린 칼이었다.
쓸모를 증명해야 했고, 늘 예리해야 했고, 한 번의 흔들림도 용납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 “이 업무 부탁해요”라고 말하면, 그게 내 적성인지, 내 커리어나 방향에 맞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칼은 그저 잘 썰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으니까.
그러다 어느 해, 정말 하기 싫은 업무가 떨어졌다.
전략을 짜는 일도 아니었고, 분석도 아니었다.
기획과도 어색했고, 내 강점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나지? 더 적합한 사람이 있는데.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언제나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태연하게, 숙제처럼, 때로는 운명처럼 건네줄 뿐이다.
불만은 있었지만, 나는 또 칼처럼 움직였다.
빠르게 익히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낸 뒤 남은 건 성취감이 아니라 허무함이었다.
마치 정교하게 난로에 불을 붙였는데,
그 앞에 앉아 있을 사람은 없는 느낌.
그렇게 몇 번 더, 하기 싫은 일과 잘 맞지 않는 일들을 맡다 보니
내가 믿었던 경력, 강점, 정체성이라는 것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이 마치
내가 무뎌지고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활기보다 체념이 먼저 온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탓했고, 초심을 떠올려 보기도 했고,
다짐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갑옷을 다시 입어보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날카로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회사 복도에서 후배가 말했다.
“선배님은 업무를 맡으면 늘 다 괜찮아 보이세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예전처럼 잘해 보여서가 아니라,
지금은 결과보다 과정 전체를 포용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엔 칼끝만 보았지만
지금의 나는
칼을 쓰는 사람, 함께 일하는 사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과 의미들을
조금씩 보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에서 맞지 않는 업무를 맡는다는 건,
어쩌면 경력직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성장의 방식인지 모른다.
• 내가 정해둔 ‘나’라는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
• 견디는 법이 아니라,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과정,
• 잘하는 일보다 의미 있는 일을 탐색하는 계기.
칼로만 쓰였던 사람은 언젠가 무뎌진다.
그 무뎌짐은 능력의 쇠퇴가 아니라,
사람을 담을 여유가 생긴 증거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날카로워지려고 애쓰지 않고,
또 억지로 무뎌지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나를 한 번 더 이해하게 만드는 일을
조용히 계속해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깨닫는다.
회사에서 맡는 모든 일은
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넓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칼은 결국 쓰임새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누군가는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사람과 조직과 삶을 다듬는 조용한 칼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게 더 단단하고,
더 오래 쓰이는 방식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