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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직장생활

두 살의 무게

희퇴

by Bird

조직은 늘 숫자로 움직인다. 매출, 성과, 인원, 그리고 보이지 않게는 나이까지. 그날 회의실의 공기는 유난히 정돈돼 있었다. 엑셀로 정리된 희망퇴직 대상자 명단은 이미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확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벽에 걸려 있었다. 숫자들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 숫자들 속에 있던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과장은 70년생이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나이는 그의 말투, 회의에서의 침묵, 후배를 대하는 체념 섞인 미소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조직은 그렇게 사람을 분류한다. 성과보다 먼저, 가능성보다 앞서, 태어난 해로.


“제가… 72년생입니다.”


그 말은 사과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회의실 바닥을 울렸다. 두 살. 고작 두 살 차이였다. 하지만 그 두 살은 퇴직과 잔류, 마무리와 연장을 가르는 선이었고, 조직이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계획을 단번에 뒤틀어버렸다.


순간 엑셀은 무력해졌다. 셀 안에 갇혀 있던 질서가 흔들렸다. 숫자는 틀리지 않았지만, 전제는 틀렸다. 그동안 조직은 사람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추정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과장은 미안해했다.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니었다. 말할 기회를 놓쳤고, 정정할 타이밍은 지나가 버렸고, 결국 나이는 그냥 그렇게 굳어졌다. 조직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한 번 붙은 꼬리표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진실이 된다. 누구도 굳이 확인하지 않고, 모두가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회의는 길어졌고, 계획은 다시 쓰여야 했다. 누군가는 안도의 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이름도 없이 리스트의 다음 칸으로 밀려났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크게 화를 내지 않았고, 누구도 웃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조금씩 늙어 보였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알게 됐다. 이 조직에서 가장 무거운 숫자는 실적도, 연봉도 아니라는 것을. 출생 연도라는 네 글자가 한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 버리는지를.


두 살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삶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는 두 살이 인생의 계절을 바꾼다. 봄으로 남을지, 겨울로 정리될지. 그 경계선 위에 사람들은 말없이 서 있다.


그리고 그 과장은 오늘도 출근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만 스스로는 안다. 자신이 조직의 계획을 무너뜨린 사람이 아니라, 계획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드러낸 존재였다는 것을.


두 살의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숫자는 여전히 정확했지만, 그날 이후 아무도 그 숫자를 온전히 믿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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