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기자
조직이란 것은 힘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다.
능력은 직급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진실은 보고 라인에서 결재를 받다 희미해진다.
유능한 사람은 조용해지고, 무능한 사람은 말이 많아진다. 말이 많다는 이유로 그는 리더가 되고, 침묵한다는 이유로 저 사람은 준비가 덜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계는 판단을 대신해 주고, 직급은 사고를 면제해 준다.
“왜?”라는 질문은 무례가 되고, “원래 그래”라는 대답은 지혜가 된다.
허구는 반복되는 순간 현실이 되고, 이상한 점은 오래 참을수록 규칙이 된다.
이곳에서는 옳고 그름보다 빠르고 안전한 편이 중요하다. 틀리지 않는 것보다, 찍히지 않는 것이 더 큰 능력이다.
그래서 조직은 말하는 사람보다 알아서 입을 다무는 사람을 원한다.
불편한 진실보다 편안한 침묵을 사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 문제를 보지 않는 사람을 키운다.
아무리 이상해도 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조직은 변화보다 유지를, 진실보다 안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줄인다.
생각을 접고, 감각을 무디게 하고, 결국 스스로를 조직에 맞는 크기로 깎아낸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닫는다.
이곳이 나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리며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