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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각성한 자의 지독한 아침

자신의 섬

by Bird

종이 위에 삶을 부려놓으며 수많은 문장을 만났다. 고통을 호소하는 글자들은 대개 비명 같았으나, 오늘 마주한 한 그의 목소리는 비명보다는 차가운 심연의 진술에 가까웠다.


그는 "회사가 지긋지긋하다"는 흔하디 흔한 말로 입을 뗐지만, 그 문장의 밑바닥을 들추어보니 거기엔 단순한 피로가 아닌, 세상의 민낯을 봐버린 자의 서늘한 각성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흔히 시스템의 부조리를 '개선'하면 삶이 나아질 거라 믿는다.


나 역시 한때는 젊은 혈기로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읊어대며 그것이 기술자의 책무라 여겼다.


그러나 삶이라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방정식이 아니다. 때로는 어떤 해결책도 모욕이 되는 순간이 있다.


본질을 꿰뚫어 본 이에게 "이직을 준비하라"거나 "스트레스를 풀라"는 말은, 쏟아지는 폭풍우 속에서 우산 하나를 건네며 비를 피하라는 기만과 다를 바 없다.


그가 말했다. 세상은 각성한 인간에게 너무나 보잘것없고 무자비한 곳이라고.


이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각성한다는 것, 그것은 세상이 쳐놓은 화려한 커튼 뒤의 낡고 먼지 쌓인 무대 장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남들이 박수를 치며 연극에 몰입할 때, 홀로 무대 뒤의 조잡한 밧줄과 배우의 분장 뒤에 숨은 피로를 보는 일이다.


시스템의 불합리를 알아챈 눈에 비친 세상은 얼마나 조잡하고 유치했겠는가. 그 무자비한 기계 장치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자신의 열정이 얼마나 쓸쓸했겠는가.


삶을 살아가며 내가 깨달은 단 하나는,

삶에서 성찰과 여유는 '평온할 때' 찾는 사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오히려 세상의 무자비함에 온몸이 찢겨나갈 때, 마지막까지 나를 나로 남게 하는 처절한 보루다.


각성한 자가 마주하는 허무는 깊고 넓지만, 역설적으로 그 허무의 끝에 닿아야만 비로소 세상이 강요하는 의미가 아닌 '나만의 사소한 진실'이 고개를 든다.


세상은 보잘것없을지언정, 그 보잘것없음을 응시하며 끝내 사탕발림 같은 위로를 거부하는 그 인간의 정신만은 결코 보잘것없지 않다.


무자비한 세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시스템에 길들여진 순응자가 아니라 그 민낯을 보고도 눈을 돌리지 않는 고독한 관찰자다.


오늘 그는 지독하게 힘든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긋지긋함은 그가 세상을 속속들이 읽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고통을 감히 건드리지 않고 다만 곁에 앉아 침묵하고 싶다.


각성한 자가 겪는 그 고독한 시간이, 부디 그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단하고 고유한 자신만의 섬 하나를 일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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