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섭리
나는 늘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모니터 불빛은 더 선명해졌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사라진 자리에서 일은 비로소 정직해졌다. 주말 아침에도 출근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랬다. 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 말고는 다른 언어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에 서툴렀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흐름을 계산하고, 미리 자리를 잡는 일보다 주어진 일을 끝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결과가 말해줄 거라고, 시간이 증명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말 대신 야근을 택했고, 설득 대신 책임을 떠안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가 먼저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분노는 없었다. 억울함조차 잠깐이었다. 그보다 먼저 찾아온 건 깨달음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아, 여긴 이런 곳이구나.’ 뒤늦게 페이지를 넘겨 결말을 확인한 독자처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직에서의 승진은 실력의 증명이 아니라 이야기의 완성도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는 일을 했고, 후배는 말을 했다.
나는 버텼고, 후배는 보였다.
내 성과는 기록으로 남았지만, 해석은 타인의 몫이었다. 나는 설명하지 않았고, 조직은 묻지 않았다.
더 잔인한 사실도 있었다.
나는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다. 내가 빠지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 자리, 그래서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사람. “지금은 네가 필요해.”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가장 정중한 보류였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누군가 위로해 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내가 틀렸던 걸까, 아니면 이 방식이 이곳과 맞지 않았던 걸까. 답은 금세 나왔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이 조직이 요구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묵묵히 잘하는 사람은 존중받을 수는 있어도, 선택되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 문장은 그날 이후로 자주 떠오른다. 씁쓸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일을 먼저 하고, 말을 나중에 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직급표에 남지 않는 것들이 내 안에 쌓일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다는 확신, 기준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감각,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해진 무게. 그것은 승진보다 느리게 오지만, 훨씬 오래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늦게까지 남아 있다.
다만 이제는 안다.
이 불빛이 나를 증명해 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