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리스크다
요즘 회사에서 신입 채용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기보다
불확실한 위험처럼 취급된다.
경기 탓만은 아니다.
인건비 때문만도 아니다.
그 이면에는
아무도 쉽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의 부재.
한때 신입은
부족해도 괜찮은 존재였다.
혼날 수 있었고,
기다려줄 수 있었고,
시간을 들이면 자란다는 믿음이 있었다.
회사는 학교 다음 단계였고,
직장은 어른이 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신입은
‘미완의 인재’라기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로 받아들여진다.
피드백은 상처가 되고,
지시는 간섭으로 해석되며,
기준을 세우면 권위적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회사는 그 순간 깨닫는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훈육 가능한 상태의 문제라는 걸.
기술은 가르칠 수 있다.
업무는 매뉴얼이 있다.
툴과 프로세스는
시간을 들이면 익힌다.
그러나 회사가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좌절을 견디는 힘
불합리해 보여도 일단 따르는 태도
감정과 일을 분리하는 능력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감각
이것들은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 성장의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학교와 가정,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 공백이 메워지지 않은 채 사람들이 회사로 들어온다.
요즘 회사는 ‘어른 역할’을 할 여력이 없다.
관리자는 성과에 쫓기고,
교육 담당 조직은 축소됐으며,
한 번의 실수가 조직 전체의 리스크가 된다.
이 구조에서 신입은 성장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 비용으로 계산된다.
그래서 기업은 선택한다.
비싸고 까다로워도 이미 사회화된 경력자를.
완벽하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사람을.
신입을 키우는 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확신인데,
지금 회사에는 그 확신이 없다.
이 현상을 세대의 문제로만 돌리는 건
정확하지 않다.
이건 구조의 결과다.
학교는
체벌을 없애는 데 성공했지만
권위까지 함께 잃었고,
가정은
선을 긋는 일을 미뤘으며,
그 비용이
회사 문 앞까지 흘러왔다.
그리고 회사는
조용히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마지막 교육기관이 아니다.”
그래서 신입을 뽑지 않는다.
잔인해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어서다.
투자를 포기한 게 아니라
무너진 시스템의 비용을
더 이상 떠안지 않기로 한 선택이다.
이 선택이 옳은지,
사회에 어떤 대가를 남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신입이 사라진 회사는
미래를 잃고,
신입을 키우지 않는 사회는
언젠가
경력자마저 고갈된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신입을 왜 안 뽑았을까?”가 아니라
“신입을 키울 준비를
왜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