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직장생활

조직의 역설

용기 없는 조직

by Bird

조직에는 오래된 역설이 하나 있다.

잘 돌아갈수록,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역설이다.


그 조직은 말한다.

“우리는 문제없다.”

“지금까지 이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굳이 변할 이유가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많은 조직은 실제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하다.

우물처럼 작고 닫혀 있지만,

그 안에서 필요한 물은 충분히 공급된다.

우물은 바다가 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조직이 ‘변화가 필요 없다’는 판단을

‘다른 가능성은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확장할 때,

그 조직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미래를 닫아버린다.


어느 날, 우물 밖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들어온다.

그는 우물을 부수자고 말하지 않는다.

바다를 들이붓자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여기 말고도 다른 방식이 있다.”


그 순간 조직은 불편해진다.

왜냐하면 그 말은

지금까지의 선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유일하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비판이 아니라 상대화다.

비판은 반박할 수 있지만,

상대화는 존재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조직은 반응한다.

“우리와 맞지 않는다.”

“현실을 모른다.”

“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다.”


이때 벌어지는 일이 바로 조직의 역설이다.


조직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변화를 제거하지만,

그 제거 행위 자체가

조직을 점점 더 취약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안정적이다.

갈등도 없고, 질문도 없고,

회의는 빨리 끝난다.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방향만 바라본다.


그러나 그 안정은

강해서 생긴 안정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정지다.


성숙한 조직은

“우리는 우물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바다는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래서 바다를 아는 사람을

위험이 아니라 참고 자료로 둔다.


미성숙한 조직은

“우리는 우물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여기가 전부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세계를 아는 존재를

질서의 교란자로 규정한다.


아이러니는 여기 있다.


변화가 필요 없다고 믿는 조직일수록

변화를 감당할 힘이 없다.


변화를 거부하는 데 익숙해질수록,

조직은 스스로를 좁은 환경에 맞게 최적화한다.

그리고 그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버티지 못한다.


우물은 바다가 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물이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한 가지만은 필요하다.


자신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 용기가 없는 조직은

언젠가 변화를 맞이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를 말하는 존재를 먼저 제거했기 때문에

조용히 말라간다.


그때도 조직은 말할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문제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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