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 넘어가지 말자
무자비한 조직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혁신을 말하고, 변화를 외치며, 용기를 칭찬한다. 그러나 그 말들이 실제로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 조직은 언제나 같은 선택을 한다.
변화를 말한 사람은 기억에서 지워지고,
변화가 필요없는 구조만이 살아남는다.
조직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은 오랫동안 미화되어 왔다.
끈기, 충성, 적응력 같은 말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자비한 조직에서의 생존은 대개 잘 보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말하지 않는 법, 튀지 않는 법, 책임이 흘러가는 방향을 정확히 읽는 법.
그걸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유능하다.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말하고, 실제로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은 그런 사람들을 가장 위험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은 판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조직은 무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함과 일관성이다.
그래서 혁신을 외치면서도, 실제 혁신의 비용은 언제나 실무자에게 전가된다.
잘 되면 위의 성과가 되고, 잘못되면 아래의 책임이 된다.
이 구조를 먼저 알아차린 사람들은 조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낭만적인 오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조용히 거리를 둔다.
조직 안에서 에너지를 태우지 않고, 밖으로 옮길 수 있는 자산을 쌓는다.
특정 상사의 신뢰보다, 어디서든 설명 가능한 결과를 만든다.
그들에게 조직은 신념의 대상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 중 하나일 뿐이다.
무자비한 조직에서 끝내 살아남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용기가 아니다.
그들은 영웅이 되지 않는다.
“내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경계하고,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진실을 알지만 전부 말하지 않고, 문제를 보지만 모든 책임을 끌어안지 않는다.
그 냉정함 덕분에, 그들은 끝까지 남아 갈려 나가지 않는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말을 그대로 믿었다가” 사라진다.
변화를 원한다는 선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을 신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조직의 목적함수를 오해했을 뿐이다. 조직의 최우선 목표는 혁신이 아니라 자기 보존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무자비한 조직에서의 생존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여기서 무엇이 되려는가?”
판을 바꾸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판을 읽고 떠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자비한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강해서가 아니라, 덜 속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조직은 더 이상 절대적인 세계가 아니라, 언제든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우물에 불과해진다.
어쩌면 진짜 생존이란,
그 무자비함을 닮지 않고도 살아남는 방법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