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의 죽음
새로 옮긴 회사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미 이름 대신 역할을 부여받은 상태였다.
경력직이라는 이유로, 바깥 물을 한 번 거쳤다는 이유로, 새로 온 본부장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메기가 되세요.”
메기란 무엇인가.
연못에 풀어두면 미꾸라지들이 잠들지 못하게 만들고, 숨어 있던 것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존재.
조직을 살린다는 명분 아래 던져진, 불편한 생명체.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었다.
일을 하러 왔으니까.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나의 값어치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의 미꾸라지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미 바닥의 진흙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법,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
위에서 물이 흔들려도 자신은 가만히 있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메기처럼 헤엄쳤다.
질문했고, 기준을 들이밀었고, 말해야 할 것을 말했다.
그때부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빌런’이라 불렀다.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 불필요하게 시끄러운 사람,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질문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성실했던 시간들은
조직에서 가장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메기는 연못을 살린다지만, 연못은 메기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날, 윗사람이 우리 부서를 방문했다.
나는 그가 숨은 미꾸라지들을 하나씩 끌어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바닥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수조 위를 한 바퀴 훑어보더니 말했다.
“저 친구가 제일 싱싱해 보이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메기는 연못을 깨우는 존재가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증거’이자 ‘본보기’라는 것을.
움직이지 않는 미꾸라지보다,
움직여 온 흔적이 남은 메기가 훨씬 다루기 쉽다는 것을.
나는 그날 횟감으로 올려졌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너무 또렷했기 때문에.
조용하지 않아서, 섞이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들어온 그 회사에서
일과는 무관한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연못은 다시 고요해졌고,
미꾸라지들은 안도했을 것이다.
위에서는 말했다. “조직이 안정됐다”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정체라는 것을.
메기가 사라진 연못은 오래도록 썩지 않겠지만,
결코 맑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음 연못에도 또 다른 메기가 던져질 것이다.
그 메기는 나처럼 처음엔
자신이 조직을 살리러 왔다고 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