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왜 비싼가?
건축을 좋아해 건축가가 되고 싶었는데, 내 미래 계획에 '수학(What a Math!)'은 없었던 지라 꿈을 이루지 못했다.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는 사실 건축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그저 유명한 건축가로 유명한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Charles-Édouard Jeanneret-Gris)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등의 이름을 열거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건축가가 많다. 그중 우리나라 현대 건축의 큰 틀을 잡고 있는 건축가는 김수근과 김중업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그중 김수근은 한국 건축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건축사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김수근의 남영동 대공분실인데, 영화 1987에서 묘사된 대학생 박종철의 고문치사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바로 여기다. 사람 친화적인 건축물로 유명한 공간 사옥을 설계한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인간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악랄한 장치가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밖이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창문과 밖에서 잠글 수 있게 설계된 문은 고개를 가로젓게 할 정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둥은 그리스의 신전을 닮았고 지붕에 봉긋 솟은 돔(Dome)은 유럽의 의회를 연상시킨다. 설계 원안에는 없었던 돔을 굳이 넣고자 했던 과거 정치인의 모습이 현재 텅텅 빈 국회 내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국회의사당과 더불어 국가 권력을 대표하는 청와대는 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건축물이다.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청와대 이전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불통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를 광화문 집무실 이전이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상징성을 덜어내겠다는 시도로 풀이하고 있다.
위 사례와 같이 건축은 예술과 같이 시대에 따라 사상과 이념을 담아내기도 한다. 예전 히틀러(Adolf Hitler)가 자신의 나치 사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나치당 주임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에게 나치 정부와 관련된 건축 작업을 맡긴 일화는 유명하다. 나치당 집권 시 지어진 건축물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건축으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끔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최근 용산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9년 전, 용산 4구역에서 벌어진 참사와는 다른 재난이었지만 용산 참사라는 제목에서 그 사건이 떠올랐다. 그 사건은 용산 4구역이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생존권 보장 시위가 벌어지며 생긴 참사였다.
그리고 9년 지난 오늘, 용산 4구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화마가 휩쓸고 간 뒤 폐허가 된 그 자리에는 2년 전부터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2년 뒤에는 높은 빌딩 수십 개가 좋은 땅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찾아갈 예정이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공간을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즉, 사람들이 모여 나라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그 도시 안 공간을 적절한 용도로 분배한 것이 곧 건축물인 셈이다. 그래서 건축물은 사상과 이념을 담아낸 동시에 소유하지 않은 공간을 소유화 하기 위한 일종의 상징같이 느껴진다.
건축은 항상 국민적이며 또한, 개인적이다. 그러나 개인-민족-인류라는 세 개의 동심원 중에서 최후의 그리고 최대의 원이 다른 두개를 동시에 포괄한다.
-발터 그로피우스
집은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삶 가까이에 있지만 가장 갖기 힘든 공간이다. 집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꿈이 되었다. 집, 땅, 공간은 왜 비싼가?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태어나 누구나 밟을 수 있는 땅이 왜 비싼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