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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먹으면 사랑할 수 있을 텐데

문학적인 식탁: 문학 속 식탁이 오늘의 식탁과 만날 때

by 황유미
문학작품 속 식탁이 21C 소설가의 식탁과 만난다면? 삼시 세끼 집밥을 추구하는 집밥주의자 소설가가 문학 속 식탁을 통해 오늘의 인생을 맛있게 요리해보려고 합니다.


망한 연애엔 음식이 약


스물 하나, 밖에서 5분만 돌아다녀도 눈물 콧물이 줄줄 나오다가 동파 직전인 수도관처럼 꽝꽝 얼어 붙어버릴 것 같은 날씨에, 초콜릿 케이크가 들어있는 상자를 끌어안고 감각이 마비된 엄지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한 사람을 기다렸다. 때는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였고 손에는 직접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쥐고 있었다. 약속 시간은 이미 삼십 분이 넘었고, 몸은 피곤해도 정신은 또렷해졌다. 음, 나 차였구나. 짐덩이 같은 케이크를 끌어안고 진영에게 전화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호했던 첫 연애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진영아. 오늘 그 오빠 만나?” “아니…” “또 잠수?” “…너 지금 뭐해? 내가 집으로 갈까?”


진영의 ‘그 오빠’는 벌써 여러 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파토내다가 꼭 우리 둘이 같이 노는 날이면 느닷없이 연락해서 갑자기 만나자는 말을 하던 사람이었다. 진영과 나는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이었다.


‘너나 나나, 어휴, 왜 이러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지독하게 안 풀리는 연애사로 끙끙 앓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진영의 집에서 형편 없는 손재주 때문에 너무 두껍게 발린 초콜릿을 포크로 얼음처럼 깨먹으며 웃는 동안 앞으로도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 달콤해. 밋밋한 첫 연애의 씁쓸한 뒷 맛은 그렇게 초콜릿 케이크로 달랬다.


그로부터 15년 후, 코끝이 시린 겨울에 뜨끈뜨끈한 닭 요리를 담은 반찬통을 조심히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내가 있다. 요리가 식기 전에 친구 집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전날 “다시는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던 친구의 선언을 듣자마자 열이 오른 휴대폰을 붙잡고 급히 닭고기를 주문했다.



성냥갑에 불을 지피는 ‘빨간 맛’


많고 많은 요리 중에서도 닭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를 설명하려면, 먼저 레시피 하나를 봐야 한다.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재료:

가능한 한 빨간 장미로 12송이, 밤 12개, 버터 2큰술, 감자 전분 2큰술, 장미 에센스 2방울, 아니스 2큰술, 꿀 2큰술, 마늘 2톨, 메추리 6마리, 용과 1개


만드는 방법:

장미 꽃잎을 떼어 낸다. 메추리 여섯 마리를 손질한 후 소금과 후추를 뿌려 버터를 녹인 뒤 노르스름하게 익힌다. 뜯어낸 장미 꽃잎은 아니스와 함께 빻는다. 밤은 냄비에 넣고 노릇노릇하게 구운 다음 껍질을 까고 물에 넣고 끓여서 죽처럼 만든다. 잘게 썬 마늘을 버터 두른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마늘이 다 익으면 꿀과 곱게 간 융과, 장미 꽃잎, 소금을 넣어 끓인 밤에 넣는다. 그리고 옥수수 가루를 넣어 소스를 걸쭉하게 만든 다음 마지막으로 체에 곱게 걸러 장미유 두 방울을 넣는다. 간을 맞춘 뒤 불은 끄고, 메추리 고기에 맛이 배도록 이 소스에 십 분간 담가 두었다가 꺼낸다.


주의: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피가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 만약 피가 스며들면 아주 위험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달콤쌉싸름]영화속요리.png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찾은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레시피는 멕시코에서 식민지 시대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집안에서 이 전통요리법을 전수 받은 유일한 계승자인 ‘티타’는 조리법에 충실하게 집안 식구들을 먹일 요리를 준비한다. 과정은 흠 잡을 데가 없었고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이건 신들이나 먹을 수 있는 황홀한 음식이야!” 장미꽃을 한아름 안기며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그 연인은 얼마 전 티타의 첫째 언니와 결혼식을 올린 후 데릴사위가 되어 한 집에 산다는 것, 막내딸인 티타는 관습 때문에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돌봐야 하는 운명이라 감정이 식기는 커녕 나날이 끓어오르는 외간 남녀가 꼼짝없이 가족으로 엮여 한 지붕 아래에 산다는 칠레산 고추도 울고갈 ‘빨간 맛’ 설정이겠지. 작가님, 거 참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성춘향, 이몽룡도 신분 차이로 사랑에 장벽이 생겼지만 어디까지나 멀리 떠난 님에 대한 그리움을 지켜내느냐 마느냐 하는 신뢰의 문제에 가깝다. 그런데 이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얄궂은 관계로 엮인 연인의 사랑 이야기. 한편으로는 금기와 욕망에 대한 광기어린 연금술사의 실험 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디 이래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두고보자, 하는 짓궂은 태도로 이성을 마비시킬 ‘묘약’을 제조한다. 근사한 ‘요리’의 탈을 쓴 묘약은 일 년 열 두 달 내내 식탁 위에 풍성하게 차려진다.


요리는 촉매제가 되어 예상치 못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메추리 요리에 쓴 장미 꽃잎에 티타의 피가 스며 들면서 둘째 언니, ‘헤르투디스’의 몸에 불을 지핀다. 문학적 수사가 아닌 말 그대로,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강한 성욕을 느껴 몸이 달아오른 헤르투디스는 벌거벗은 채 집을 뛰쳐나간다. 불이 붙은 몸으로, 본능이 시키는대로 달려나가는 모습은 황당하지만 짜릿하다. 시원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소설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몸 안에 성냥갑을 가지고 태어났다. 인생은 가슴 속 마른 성냥갑에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달콤쌉싸름]책표지.jpg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권미선 옮김, 민음사


나도 라면 잘 끓이는데… 끓여줄 수도 없고…


내 가슴 속 성냥갑은 어딘가 이상하게 생겨먹어서, 좀처럼 불이 붙질 않는다. 연애 사건에 얽혀 옴싹 달싹 못하는 기분을 느낄 때도 좋지만, 역시 ‘사건 이후’에 찾아온 시간을 음미하는 편이 좋다. 이를 테면 오래 알던 친구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임시적인 관계가 끝난 뒤의 여파를 곱씹는 시간. 어느 한 쪽의 마음만 변해도 ‘강제 종료’ 될 수밖에 없는 이 임시적인 관계에 매달리느라 마구 휩쓸린 생활을 되돌리는 시간. 그러다 어느 새 변해버린 생활마저 ‘나’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이렇게 말하고나니 연애보다 이별이 더 취향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세상에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요. 그저 ‘관찰자’가 되어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경감할 뿐이다.


관찰은 내 오랜 고질병이다. 심지어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에 빠져들지는 못하고 관계의 언저리를 멤돌 정도로. 어린 시절엔 친구들과의 우정을 확인하고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연애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별 볼일 없는 밸런타인 데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싫어서가 아니라, 남자와, 남자와 얽힌 사건을 징검다리 삼아 다가가지 않으면 친해질 수 없는 여자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연애를 할 필요가 있었다.


미팅을 하면 반대편에 앉아있는 상대방을 보는 게 아니라 옆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은지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바빴다. 그렇다고 해서 애인을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이 늘 친구들에게 쏠려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감정의 층위를 피라미드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장 밑바닥엔 결국 친구들과의 우정이 있었다.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하듯 산뜻하게 우정을 졸업하고 다른 층위의 감정을 탐구하기에 바쁜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배웅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문제가 뭘까. 솔직하지 못한 탓이겠지. 사랑을 나누려면 맨 몸을 다 보여줘야 하니까. 부끄러움을 모르고서 다가가야 불씨가 생기니까. 불씨를 던져야 마른 성냥에도 활활 불이 붙는다. 이처럼 솔직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거짓 없이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식탁에 앉아 맛있는 걸 먹을 때다.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 사람과 단 둘이 마주한 식탁이라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두 겹, 세 겹, 두껍게 체면과 예의를 차려봐도 배 고픈 저녁에 맛있는 요리를 나눠먹으면 얼굴 근육부터 몸 구석구석이 꿈틀꿈틀 반응하기 마련이다. 탄성을 뱉으면서 대화가 시작되고, 긴장이 풀어진다. 식사 내내 보이지 않는 더듬이를 세워 서로를 탐색하다가 마침내 사건은 시작된다. “라면 먹고 갈래?”란 말이 괜히 끈적이는 뉘앙스로 쓰이는 게 아니다. 적어도 “우리 이제 사랑하자.” 같은 관계를 선언하는 말 보다는 라면 하나 끓여먹자는 말이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얼굴을 덜 붉히겠지.



밥 한번 먹으면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같이 밥 한 끼 먹지 않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판단이 끝나면) 헤어지는 최근의 소개팅 문화(?)에서는 도무지 불씨를 키우기가 어렵다. 예의를 갖춘 정제된 대화와 사회성을 발휘한 질문, 모든 게 지나치게 깔끔해서 끈적한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없달까. 물론 잘 모르는 사람과 밥까지 먹는 게 쉽진 않다. 3초 안에 끝나버린 판단과 선입견을 억누른 채 행여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미끼 같은 질문을 주고 받으며 심지어 음식물까지 씹어 삼키는 멀티 태스킹은 피곤하니까. 하지만 가뜩이나 솔직해져야 하는 순간마다 부대끼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그렇게까지 깔끔한 자리에서 불씨를 포착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대뜸 처음 만난 사이에 “우리집에 갈래요? 밥 해줄게요.”라고 할 수도 없으니, 오늘도 불 꺼진 심장을 쥐고 기다린다.


다시 레시피로 돌아와서, 멕시코가 아닌 대한민국, 서울에서 몸 속 성냥갑이 다 타버린 듯 기진맥진한 몸에 마술을 부릴 차례다. 무려 20여 년간 이어온 사랑의 결실을 맺느라 초가삼간을 홀라당 태워먹은(역시 문학적 수사가 아닌 말 그대로다) 사랑꾼, 욕망의 화신 티타가 남긴 레시피를 참고해 ‘토마토 닭 볶음탕’을 준비했다. 메추리는 닭 다리살로, 빨간 장미는 토마토 소스로 바꿔 색을 내고, 아니스 같은 향신료는 보다 구하기 쉬운 월계수 이파리와 통후추로 대체하고 치킨 스톡으로 맛을 낸 닭 볶음탕은 겉으론 매콤해보여도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재가 된 친구 심장에 다시 피가 돌고, 언젠가 다시 불이 붙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반찬통은 깨끗해졌다.



가슴에 불꽃을 일으키는 토마토 닭 볶음탕


닭 다리살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고기 냄새를 제거한다

양파 한 개, 파프리카 두 개를 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썬다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닭 다리살을 익힌다

닭고기가 다 익으면 토마토홀, 양파, 파프리카, 치킨스톡 한 조각, 월계수 잎 2장, 통후추를 넣는다

냄비가 보글보글 끓으면 소금 작은 한 스푼, 설탕 한 스푼을 넣은 뒤 간을 보고 부족한 간을 맞춘다

[달콤쌉싸름]닭볶음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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