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식권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
프랑스의 문인 브리야사바랭이 남긴 말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755년 4월 1일에 태어나 1826년 2월 2일에 세상을 떠났다. 최초의 신문은 15세기 경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족했지만,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도 신문은 귀족이나 정파의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어용지에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취재기자의 악명이 떨쳐지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1페니에 신문 1부를 팔았던 1833년에 이르러셔였다. 즉 이 거만한 프랑스인은 살면서 기자가 뭘 먹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이런 말을 멋들어지게 남긴 셈이다.
기자가 최근의 식단을 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아마 '다채롭다' 정도이지 않을까. 어떤 날은 기자의 박봉으로는 끊임없이 '음 한 입에 0천원 꼴이군. 벌써 0만원 먹었잖아?'하는 음식을 먹는가 하면, 어떤 날은 라면국물을 위산이라 생각하고 딱딱한 김밥을 입안에서 녹여먹어야한다. 통일성도, 일관성도, 하다못해 최소한의 경향성도 없는 이러한 식사는 기자를 필연적인 복부 비만의 길로 쉽게 인도하곤 한다.
기자의 식사는 곧 취재여야 한다. 쉽게 말하면 구걸에 가깝다. 기자의 미덕이란 피가 끓어오르는 섭씨 100도짜리 글을 쓰는게 아니라(그래서도 안되지만) 최대한 많은 취재원들과 최대한 많은 친목을 쌓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긁어모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 식사가 취재보다 구걸에 가까운 이유는 기자란 최대한의 친목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지출을 감행하는 MZ와 같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기자는 취재원에게 자주 밥을 얻어먹는다. 얻어먹는 주제에 끊임없이 취재원의 아픈 곳을 물어보는 참 성가신 놈들인 것이다.
신입 기자에게 이런 환경은 가혹하기 그지 없다. 아직 세상에서 가장 공손한 면접자의 태도와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막내의 정신에 익숙해진 기자는 황송하게도 점심부터 황공한 음식을 하사하는 취재원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동석한 선배가 준비해오라고 한 '취재원을 곤란하게 만들 날카로운 질문 3선'은 비싼 음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설 자리가 없다. 선배의 무릎이 식탁 밑에서 내 도가니를 툭, 하고 치면 그제서야 신입 기자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눈치 없는 놈으로 탈바꿈해 "근데 거기 대표님은 이번 사태에 무슨 생각이신거에요?"라는 폭탄을 떨궈놓는 것이다.
사회 구조의 발전은 대개 야만성을 억누르고 간접적인 방향으로 갈등을 향하게 한다. 과거 전쟁이 말을 타고 철퇴로 적의 머리를 깨부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미사일 맞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라는 경고를 로켓 발사로 대신하는 식이다. 취재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취재는 대표든 회장이든 마호가니 문을 뻥 차고 들어가 세상이 이럴 수 있는 것이냐 묻는 것이었다(아닐 수도 있는데 최소한 미디어에서는 그랬다). 현대의 신입 기자의 취재란 법인카드를 들고 온 출입처의 호의를 눈치 없이 깨부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출입처는 헛돈을 썼고, 신입기자의 당돌한 질문은 묵살됐고, 식사는 입이 아닌 코로 들어가게 됐다.
그러나 출입처는 또다시 기자를 만난다. 사회는 언론에 대응하고 언론은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브리야사바랭이 기자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눈치를 많이 먹으니, 눈치가 곧 너, 라고 하지 않을까. 이따금 약속 없이 혼자 한입이 아닌 끼니에 몇천원짜리 음식을 먹는 신입기자는 차라리 이게 정말 편하다고 감사하며 밥을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