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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Aug 12. 2021

사진, 과정을 즐기는 과정

 파워 집순이인 나에게 외출은 큰 '일'이다. 한 번 나갈 때 여러 가지 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꼼꼼한 계획은 필수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부터 가야 동선이 좋을지 등등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뇐다. 그렇게 나가면 외출의 목적을 이루기에 급급하고,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엄청 속상해진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수시로 찍는 친한 동생이랑 자주 만난 적이 있었다. 공연이든, 음식이든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진을 거의 안 찍던 나와는 많이 다른 친구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가 나온 사진은 많은데 그 동생에겐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사진을 더 자주 찍어주려 해도 특별한 그 어떤 순간만을 기다리는 나에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순간에 사진 찍을 생각을 했지?' 하며 그저 신기해했다. 그다음엔 그 친구가 카메라를 꺼내면 나도 일단 카메라 앱을 열고 봤다. 그렇게 몇 번 하고 나니 나에게도 기회가 많이 찾아왔다. 아니, 기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찾던 '특별한 그 어떤 순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 순간이 특별해졌다. 그래서 요즘 나의 눈은 항상 특별한 찰나가 될 그 무언가를 눈으로 좇는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화단의 꽃, 바다의 물결, 조형물 등등 모든 것이 감사해진다. 계획이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어정쩡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길을 잃으면 새로운 장면을 포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이 난다.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장면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힘들어하는 건 내 타고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면 인생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오래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비가 없어 유학을 언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는데 대학교 졸업은 여러 해 내 발목을 잡았다. 취직하고 나서도 비자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 지금까지 마음 놓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잘 버틴 덕에 상황이 조금 나아졌고, 이제는 숨을 고를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며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즐기게 된 것처럼 내 삶에서도 목표로 달려가는 길의 주변을 둘러보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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