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가 날 땐 나에게 질문을 던지자
우리 팀에는 매니저 한 명, 팀원 다섯 명이 있다. 팀원 다섯 명 중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모두 나이도 같고, 직책도 같다. 같은 팀에서 같은 직책의 직원 여러 명이 동시에 승진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두 사람(A와 B로 칭하도록 하겠다)이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 A나 B가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으면 불안하고, 칭찬을 받으면 나도 얼른 인정받을 만한 일을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난다.
반면에 A와 B는 나만큼 전전긍긍하는 것 같지 않다. A는 나와 B보다는 한 단계* 앞서 나가 있는 친구다. 한 번만 더 승진하면 직책이 바뀐다는 이야기다. (*우리 회사에서는 PM 2에서 승진을 두 번 해야 시니어 PM이 될 수 있다. B는 2년 전에 PM 2로 입사했고, 나는 1년 반 전에 PM 1에서 PM 2가 되었다. A는 작년에 PM 2에서 한 번 승진했다.) 그래서 A는 딱히 나나 B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직책이 바뀔 승진을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목표는 다른 누구보다 빨리 승진하는 것이 아닌 ‘시니어’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이다. B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데다 대기업도 처음이고 IT 회사도 처음이라 회사 적응에 더 집중하고 있다. 또, 본인의 실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승진이 늦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결국 나만 애태우는 중이다.
오늘 아침 팀 미팅에서 A의 승진 소식을 들었다. A가 그 승진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금세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배도 아프고 화도 났다. 오늘 재택 근무하기로 한 것이 새삼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마음껏 질투할 수 있으니.
A의 승진이 배가 아픈 건 나는 이루지 못하고 있는 꿈을 A는 척척 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A는 우리 팀에 온 이후로 거의 1년에 한 번씩 승진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느 회사에 가든 1년에 한 번씩, 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승진을 해서 젊은 CEO가 되고 싶었다. 내가 기대하던 해에 승진을 못 할 때면 내심 ‘우리 팀은 승진이 느려’라고 탓할 데가 있었는데, A는 내가 얼마나 치사하게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지 상기시킨다. 그래서 밉다.
A의 승진이 화가 나는 건 A가 승진에 도움 될 만한 일만 쏙쏙 골라하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약 1년 전, A와 나는 같은 프로젝트에 배정됐다. 다들 기피하는 프로젝트인 데다 PM과 같이 일해 본 적이 없는 개발자와 데이터 과학자들을 이끌어야 했다. A는 답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나와 함께 해야 했던 프로젝트는 나 몰라라 하고, 당시 다른 중요한 일에 참견하며 시간을 보냈다. 프로젝트는 진전이 참 안 났고, 나는 외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이번 승진을 결정지었던 중간 평가에서 A는 참견하고 다녔던 일들 덕분에 좋은 피드백을 받았고, 나는 기대치를 겨우 충족하고 있다는 다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멘토에게 A와 B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승진하려면 팀원들과 계속 경쟁해야 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했다. 그랬더니 멘토가 “왜 승진하고 싶은데?”라고 물었다. (그는 모든 일에 “왜?”라고 묻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꾸준히 원했던 건데 승진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떠오른 답이 ‘돈’이었다. 겨우 답하려고 하는데 멘토가 “돈 때문이라면 승진이 좋은 방법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A가 작년에 승진으로 받게 되는 연봉 인상률은 4% 정도라고 들었고, 생각보다 월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해 놀랐던 걸 기억한다.
나는 정말 승진을 원하는 걸까, 이유도 못 떠올리는데? 나는 승진을 간절히 원한다.
그럼 왜 승진을 원하나? 나는 타이틀에 따라오는 힘을 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 같은 사원보다는 윗사람의 입 또는 손가락에서 나온 말에 무게가 더 실리는 법이다. 나는 그 무게를 지니고 싶다.
그럼 얼마 만에 어떤 직책을 갖고 싶은가? 시기는 생각해 본 적 없고, 직책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정확한 시기를 정해두지 않았으니 A가 승진하면 그제야 내가 승진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 두루뭉술한 직책을 목표로 두고 있으니 A가 ‘시니어 PM’이라는 직책을 얻을 때 ‘시니어’가 되지 못한 나는 속상하다. A처럼 나만의 목표가 뚜렷하거나 B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들과는 다르게 나의 기준은 A와 B에 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린다. 내가 그들보다 잘 되어야만 즐거운 것이다.
한 달째 열심히 하고 있는 핸드폰 게임이 있다. 레벨을 하나씩 깨야 하는데, 전 세계에서 내 레벨은 몇 등인지, 한국에서는 몇 등인지 알려준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땐 레벨 10,000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내 페이스에 맞추면 되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하루에 하나의 레벨을 깨든, 백 개의 레벨을 깨든, 10,000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0,000개의 레벨을 하나씩 깨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매일 흥미는 떨어졌고, 의욕을 잃었다. 얼른 다른 재미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한 등이라도 올라가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레벨과 등수는 둘 다 숫자라는 점에서 명확한 목표로 삼기 좋다. 하지만 레벨은 절대적인 기준이라면 등수는 상대적인 기준이다. 주말 내내 게임에 매달려 218등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오늘은 220등이 되어 있었다. 저번 주에 비하면 200 레벨 가까이 올랐는데도 나는 목표를 이뤄내지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 번은 테라피스트한테 “남들과 자꾸 비교해서 힘들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테라피스트는 유튜브에서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남들과 비교하는 건 인류의 생존 본능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석기시대 때 남들보다 더 많은 식량, 더 많은 물, 더 강한 무기, 더 좋은 주거지를 가지려고 했던 사람들이 오래 살아남고, 자손도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들의 후손인 만큼 우리가 남들과 비교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고방식이라는 거다.
생각해 보면 비교에는 나쁜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남들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관찰을 많이 해야 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며 ‘좋은데? 나도 해봐야지’ 또는 ‘저건 별로야.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며 배운다. 그렇게 성장할 때가 많다.
문제는 비교로 인해 내 자존감이 휘청대는 것이다. 그럴 땐 “왜?”라고 물어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정말 하고 싶은지, 내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나만의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 버팀목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