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살 때부터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매일 일기를 썼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어쩌다 깜빡하고 침대에 누워 눈이 감기려고 할 때도 일기를 안 썼다는 것이 생각나면 화들짝 놀라 일기장을 꺼내 한 문장이라도 남기곤 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밤늦게까지 병원에 있어야 했던 날에도 오늘 일기를 못 쓰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할 정도로 일기에 열심이었다. 개그콘서트 엔딩 음악이 일주일의 끝을 선언하는 것처럼 일기 쓰기는 당연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중학생이 되니 쓸거리는 넘쳐나는데 일기 쓸 시간은 부족했다. 원래 10장 분량이었던 일기는 시간이 없으니 “에이, 나중에 덧붙여 쓰면 되겠지"하며 한 장의 메모 수준이 되었다. 너무 피곤했던 날은 내일 쓰면 되겠거니 하고 일기 쓰기를 미뤄 버렸다. 하루라도 안 쓰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는데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굳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그날처럼 생생한 감정을 잊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렇게 일기장과 나는 멀어졌다.
직장인이 되어 시간과 여유가 생긴 덕분에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쓴 글은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적절한 표현을 모르는 외국인이 된 것만 같았다. 일어난 일을 묘사할 순 있어도 그때의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는 담지 못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그때 일을 지금 내가 겪는다면 어떤 마음일지를 짐작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매일 일기를 충실히 썼더라면'하는 후회가 들었다. 생각이나 느낀 점은 떠오른 당시에 남겨야만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되짚어 보니 원래 모습은 찾기 힘들어져 버렸다. 내가 느꼈던 것은 그때의 내가 가장 정확하고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다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우선 쓰고 싶게 만드는 일기장을 찾아야 했다. 다이어리는 예쁘게 꾸미고 싶은 욕심에 지치기부터 하고,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는 창이 작아 긴 글을 읽고 수정하기가 불편했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쓰고, 읽고, 고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글쓰기 버튼을 눌러 새 창에 일기를 쓸 때마다 새 공책을 쓰는 것처럼 설렜다. 작가의 서랍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남길 수 있어 좋았다. 마무리되었다고 생각되는 일기는 발행으로 작가의 서랍에서 꺼내 아직 손봐야 할 것과 구분했다. 완성하지 않은 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은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 그 순간을 생생하게 남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브런치를 일기장 삼아 내 하루를 기록하고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첫 라이킷 알림이 떴다. 짜릿했다. 나 말고도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 나의 글을 누군가가 좋아해 준다. 그 순간 나에게는 그저 완성과 미완성의 글을 구분 짓는 도구였던 발행이 많은 사람에게 글을 내놓아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기를 바라며 발행하기 직전까지 평소 일기를 쓰던 것처럼 생각과 감정을 토해내듯 막 쓴 글에서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깎아냈다. 읽고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칠수록 내 글은 나와 멀어졌다. 발행된 내 글을 읽을 때면 보정이 심하게 되어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는 사진 속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브런치에서 코로나 관련 공모전 알림을 받았다. 며칠 전 올린 ‘코로나19 사태로 알게 된 다섯 가지'라는 글이 조회수가 만을 넘고 라이킷 수도 두 자리를 기록하던 때였다. 당시 나의 최종 목표였던 브런치 홈에서도 내 글을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 같아 내 글에 대한 자신감도, 글을 더 쓰고 싶다는 욕구도 커졌다. 마침 내가 다니는 회사가 코로나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쓰려고 했기 때문에 공모전을 위한 글은 수월하게 써졌다. 어려서부터 글짓기 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상을 받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자신 있었다. 하지만 공모전 당선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글쓰기에 대한 첫 실패였다. 이전 글에 미치지 못하는 조회수와 라이킷 수에 실망하고 공모전에 날 뽑아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미워했다. 이후 실패를 딛고 일어서 보고자 <나도 작가다> 1차 공모전에 도전했다. 공모전의 주제는 ‘나의 도전, 나의 시작기'였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끝마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브런치 팀의 설명에 따르면 나는 이미 작가 활동을 시작했으니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화가 났다. 시작을 희망적으로 그려야 할 것만 같은 강박 때문에 글 쓰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는 글도 못쓰나 싶은 답답함에 화는 더 커졌고 별것도 아닌 걸로 성질머리나 부리는 찌질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일기장으로 도망쳤다.
10년이 넘어 찾은 일기는 아직도 내 곁에 그대로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씨불였다. 오래간만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긴 외출 후 집에 돌아와 갑갑했던 양말과 죄던 속옷을 벗어 버린 것처럼 개운했다. 발행의 책임감을 알게 되면서 작가의 서랍에도 편하게 남기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썼다.
일기장은 자취방 같다. 꾸밈없는 모습으로 있어도 괜찮은 곳.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세상 제일 편한 곳. 그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다가 오래간만에 외출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브런치를 다시 찾았다. 라이킷 수와 공유 수가 많은 글들이 보기 싫어서, 그와 비교되는 나의 글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브런치에 돌아갔다.
나는 집순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제일 재미있어도 외출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집에 먹을거리가 똑 떨어졌거나, 친구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약속이 있거나, 정신 건강이 걱정될 때처럼. 나가기로 하면 마스크팩도 붙이고, 일찍부터 샤워하고 제모하고 화장하고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나간다. 큰 맘먹고 나갔으니 최선을 다해 본전을 뽑아야 한다. 그러다 지치고 피곤해진 몸으로 집에 오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완충 시간이 한참 지나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금 든다.
일기장과 브런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취방에서는 팬티 한 장에 원피스 잠옷 차림으로 널브러져 있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지만 밖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뭐, 정 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눈총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일기장은 내가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해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을 보여도 판단하지 않는다. 평가하지 않는다. 일기장은 가장 나를 나답게 해준다. 브런치는 외출의 설렘만큼 조심스러움이 요구된다.
그렇게 나는 일기장과 브런치를 오간다. 집에서 편히 쉬다가 종종 예쁘게 꾸미고 나가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