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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Feb 08. 2019

SKY캐슬의 예서가
결국 서울의대에 갔더라면

만들어진 나도 과연 진짜 나일까?

지난 주말, 최근 가장 핫했던 드라마 SKY캐슬 정주행을 마쳤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 이상하리만큼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원래는 볼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입사 기념으로 내게 여유를 선물해주고 싶기도 했고, SNS, 예능, 인터넷 뉴스 등등 어딜 봐도 SKY캐슬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투성이라 입문을 결심했다. 첫 회를 본 후 '나쁘진 않지만 이렇게까지 떠들썩할 필요가 있나'라며 심드렁했던 나는 몇 시간도 안 돼 푹 빠져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 시간은 알람으로 맞춰놓기까지 했다.


아래 문단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 대신 대학 진학 컨설팅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ʕ→ᴥ←ʔ

예서의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은 예서를 서울의대생으로 만들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예서는 그녀를 전적으로 따른다.

어른에게 막 대하는 것도, 라이벌이 죽은 것도, 빼돌린 시험 문제로 성적을 올린 것도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지만, 최고의 대학교 합격을 위해 입시 코디를 받은 예서를 보며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가 많이 떠올랐다. 예서가 김주영 선생님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전교 회장, 전교 1등으로 결국 서울의대에 다니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예서는 끝내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했지만, 나는 어찌 보면 철저하게 계획된 길을 따라 서울의대 합격에 입학까지 한 예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대학 진학 컨설팅 

나는 10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SAT가 뭔지 몰랐을 정도로 미국 대학 입시에 무지했다. 주변에 유학 경험 있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적극적으로 먼저 와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초등학생 때부터 경제적 지원 이외의 모든 것은 내게 맡기셨던 부모님께서 먼저 관련 정보를 알아내 주실 리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다니고 싶은 학원은 내가 직접 알아보러 다녔다. 심지어 같은 반 친구들이 하기 싫어하는 가정학습지를 대신 풀어주며 어떤 제품이 제일 좋은지 분석한 후 부모님께 학습지 신청을 부탁드린 적도 있다.)


대학 입시 준비는 너무 막막하게만 느껴질 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대학 진학 컨설팅을 받는다고 들었다. 대입 준비는 스스로 하는 게 올바르다고 굳게 믿었던 나는 대학 컨설팅이 솔깃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같은 고등학교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네가 경쟁하는 상대는 같은 한국인들이야.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선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라도 컨설팅이 꼭 필요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금방 설득되어 여기저기 수소문해 괜찮다는 컨설팅 회사에 찾아갔다.


하고 싶은 것 vs. 잘하는 것

부모님과 함께 결정한 컨설팅 회사를 처음으로 방문했던 날, 컨설턴트는 내게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다. 여태 좋은 성적만을 목표로 공부를 해온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떤 분야가 있는지도 잘 몰랐고, 안다고 한들 그 분야가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몰랐다. 학교에서 정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들었던 몇 가지의 과목이 다인데, 갑자기 적어도 4년은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는 하나의 분야를 정한다는 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질문에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아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를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노래를 부르셨던 경영, 그리고 내가 그나마 관심 있는 분야인 심리학. 컨설턴트는 내가 작성한 교내 활동 및 수상 경력을 보더니 경영이나 심리학에 관련된 건 하나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내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되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갈 건지, 아니면 뭘 전공하든지 널리 알려진 대학에 갈 건지. 못하게 되면 죽을 것 같은 전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비리그에 합격하지 못하면 오히려 부모님 눈치 보느라 죽어날 것 같아 후자를 택했다. 미국 유학의 목적은 결국 아이비리그 입학이었으니 나에게 선택권이 있기는 했나 싶다.


이후 내가 여자라는 점과 수학 관련 대회에서 성적이 우수하다는 점을 고려해 컨설턴트는 날 공대에 보내기로 했다. 전공은 Computer Science로. 그가 짜준 시나리오는 이러했다:

나는 수학에 대한 흥미가 깊어짐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의 우아한 공식으로 정의하고 싶어졌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물리학을 탐구하게 됐다. 그러나 이론을 현실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개발자의 한계를 제외하면 모든 게 가능한 computer science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관련 자격증 공부까지 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를 사실로 만들기 위해 나는 SAT II Physics를 부랴부랴 공부해 시험을 봤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관련 자격증도 급하게 취득했다. 덕분에 나는 대입 원서에서 묘사하는 내가 될 수 있었다. 정석대로라면 순서가 반대였겠지만.


만들어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던 대학, 심지어 내가 당연히 붙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학조차도 날 받아주지 않았다. 선택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게 된 학교가 Carnegie Mellon University였고, 나는 무조건 입학 후 편입 준비를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웬걸, CMU의 CS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며 모두가 날 부러워했다. 덕분에 나는 줄줄이 받은 대학교 불합격 통지서로 떨어졌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금세 우쭐해졌다.


하지만 이 우월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일주일 만에 처참히 짓밟혔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내게 전공과목은 매우 버거웠기 때문이다. 5살 때부터 게임 개발을 했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경쟁 상대도 안 되는 존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줄곧 공부 좀 하는 애로 알려져 있던 내가 (실제로 전교 1등을 한 적은 없지만, 하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대부분이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있었다) 중간도 아니고 바닥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 내 자존심을 후벼 팠다. 도움을 받자니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조차도 몰라 쉽지 않았다. 전공과목에 집중한답시고 교양 과목에서 손을 놨더니 그나마 괜찮았던 과목들마저 다 같이 최악이 되어버려 나는 advisor에게 불려 가게 되었다.


나는 솔직하게 advisor에게 프로그래밍은 처음 배우는 거라 쉽지 않다고 말했다. CMU에 지원할 때 썼던 원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큰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 내심 위로나 도움의 손길을 기대했는데, advisor는 내게 전공을 바꾸라며 거의 과에서 날 추방하려 했다. "정 아쉬우면 CS를 부전공으로 하든지"가 그가 위로랍시고 던진 말이었다. 내쫓길 상황에 처한 나는 대학교가 원했던 건 내가 아니라 서류상의 나였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동기 중 한 명이 "누나가 CMU SCS에 합격한 건 학교가 남녀 비율을 맞추려고 여자를 더 뽑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는데, 내가 여자라는 점을 고려해서 선택한 전공이었는 데다 내 실력이 최악이라고 결과가 말해주고 있으니 맞는 말인 것 같아 그나마 붙들고 있던 정신줄마저 놓쳐버렸다.


이후에 이런저런 개인 사정까지 겹쳐 첫 학기도 끝내지 못하고 난 휴학을 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이 끝이 아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내가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를 깨닫게 되었다. 좋은 대학교의 입학이 나의 남은 인생을 알아서 책임져줄 거라고 착각했던 것. 모두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다 끝나는 줄 알고, 이를 위해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 발을 디뎌보니 입학은 시작에 불과했고, 눈앞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라는 거대한 과제가 놓여있었다. 심지어 이 새로운 과제는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나의 남은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학원 찬스도 없어 막막하더라도 혼자 해내야만 하고, 그 어떤 책임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나의 이러한 깨달음은 날 단숨에 지쳐 주저앉아버리게 했다.


진정한 깨달음

대학교에서 여러모로 상처를 많이 받은 탓에 '아예 때려치워버릴까!'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도 대학교 중퇴로 유명했기에 왠지 나도 대학을 그만두면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솟구쳐 나쁘지 않은 생각인듯했다. 하지만 중퇴를 해도 그 이후의 계획이 없어 우선은 휴학하는 동안 돈부터 벌기로 했다. 남들 대학 다니는 동안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다 보면 그들이 졸업해서 일을 시작할 때쯤 내가 어쩌면 더 나은 상황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은 대학교에 합격해 입학까지 했으면 무엇하나, 현실은 고졸 신분인 걸.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단한 아르바이트밖에 없었다. 집이 용인에 있기도 하고 이왕 하는 아르바이트 조금이라도 특별한 걸 하고 싶어 에버랜드 캐스트에 지원했다. 나름 서류 심사와 두 번의 면접을 거쳐야 하는 제대로 된 일자리였다. 다행히도 합격해 생애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고등학교 후배의 멘토링 부탁까지 받아 하루에 2~3시간씩 자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크게 느낀 건 대학교 졸업의 중요성이었다. 에버랜드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낸 시간은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할 정도로 나는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내가 맡은 업무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는 의견은 단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묵살되곤 했다. 아니, 오히려 나는 윗사람들에게 피곤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다른 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이를 가능케 하려면 지위가 있어야 하고, 지위를 얻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은 대학 교육 이수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대학교 졸업장은 나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최소한의 무기인 셈이다. 또, 진상 손님을 겪으며 종일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은 나를 존경해주는 학생에게 1시간 동안 가르침을 주는 데에 대한 보상보다 적었다. 여기서의 보상은 돈도 물론 포함하지만, 보람을 뜻한다. 나의 도움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학생을 보면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받곤 했는데, 에버랜드에서는 그와 같은 기분을 만끽하기 어려웠다.


진짜 되고 싶은 나를 만들어라

나는 위에서 언급한 경험을 통해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었다. 따라서 대학교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대신, 부족한 나의 실력을 알게 되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복학하기 전까지 프로그래밍의 개념부터 다잡기로 했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를 열심히 파겠다고 마음먹었다. 영어를 한 번 제대로 배우니 스페인어 배우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게 생각나 프로그래밍 언어도 하나를 제대로 배우면 다음 언어는 할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정도, 목표도 스스로 세우니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더욱더 단단해짐을 느꼈다.


나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이 되려고 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롤모델이랑 다를 게 딱히 없지 않나? 하지만 내가 원하지도 않는 다른 이의 바람을 기준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진심으로 원했던 모습도 아닌데 그에 맞추려면 에너지 소비만 애써 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막상 자신을 끼워 맞추고 나면 성취감보단 허전함이 더 클 수 있고, 실패했을 땐 겪지 않았어도 되는 자신의 한계에 마주쳐 좌절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원래 다니던 대학교에 컨설턴트가 정해준 전공으로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 이가 정해준 기준 일부에 진심으로 수긍했으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온전한 나의 목표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이는 나를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달리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정해진 기준에 맞추느라 고생하고 있는 분들께 그 기준이 진심 어린 자신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걸 추천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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