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4
"네 자존감을 네가 가진 것에서 찾으면 안 된다."
엄마가 해주신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멋있는 말도 했냐며 기억을 못 하시지만….) 처음 들었을 땐 이해가 가는 듯하다가도 막상 실천해보려 하면 어려운,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살갗이 쓰릴 정도로 피부에 와 닿고, 그래서 더더욱 마음속 깊이 새긴 문장이 되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자존감이 높았다. 어떤 대회에 나가도 상 하나쯤은 꼭 받아왔고, 매일 외제차를 타고 등하교했으며,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나는 ‘공부 잘하는 애,’ ‘잘 사는 애,’ ‘친화력 좋은 애’였고, 나의 자존감은 이러한 명성(?)을 자양분 삼아 무섭게 자라났다.
내 자존감이 인생 최고치를 찍을 즈음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이들로 우글거리는 명문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입학과 동시에 우리 집 경제 상황은 유학을 포기해야 할 만큼 급격히 나빠졌다. 우리 가족이 소유하던 자산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나의 자존감도 나를 떠나갔다. 어디 사냐고 물으면 세계 곳곳에 집이 많아 어디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 일등석 아니면 비행기를 못 타 자리가 없으면 방학 시작 한 달도 전에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리는 친구, 호텔에서 운영하는 아파트의 펜트하우스를 주말 파티 용도로 소유하고 있던 친구를 보며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결국은 부럽다 못해 부담스러워진 친구들에게서 스스로를 고립시켜버렸다. 그렇게 나는 나의 자존감을 지탱하던 두 가지의 명성을 동시에 잃었다.
그러던 중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에서 나를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각종 수학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나를 눈여겨봤고, 제안을 수락하기만 하면 장학금까지 주겠다고 했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나는 이를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명분은 현재 다니는 학교를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 계속 '공부 잘하는 애'가 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 마지막 자존감의 원천을 지키기 위해 나는 좋은 기회를 보기 좋게 걷어차버렸다.
그러나 나의 결정은 자존감 추락의 시기를 늦추기만 했을 뿐, 막아주진 못했다. 세계 여러 고등학교에서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모인 대학교는 최고 명문 사립학교의 확장판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곳에서 나는 적응을 못했고, 마지막으로 힘들게 자존감을 지탱하던 '공부 잘하는 애'의 명성마저 무너져버리며 자존감은 끊임없이 떨어졌다. 그 이후로는 먹고 자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아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넘겼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10년 동안 유학에 투자한 모든 것을 포기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로 괴롭던 순간,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힘을 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결국 Microsoft 입사에 성공했다.
지금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존감도 많이 회복했다.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기업 사원이 아닌,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괴롭던 때 한 번 더 노력했던 내 모습을 아껴주려고 노력 중이다. 덕분에 지금 당장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생겼다.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걸 이뤄낼 거라고 믿으니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한 번 더 노력한다.
언제 어떻게 얻거나 잃을지 모르는 내가 소유한 것들,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의해 내 자존감을 휘둘리게 두지 말자. 나에 대한 믿음으로 자존감을 견고하게 다지다 보면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휘청거리던 자존감, 바로잡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