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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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경찰을 불러야겠구만.”
경비원은 딱딱한 표정으로 씹어 뱉었다.
“이봐요! 주민등록증하고 운전면허증, 다 내 거란 말입니다. 뭐가 또 문제예요?”
“이봐, 당신. 이제 보니 술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살짝 어떻게 된 모양이군. 이걸 똑똑히 보라구.”
그는 두 장의 신분증을 겹쳐 들어서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당신 주소가 똑똑히 나와 있잖아, 공릉동! 여기가 공릉동이라고 우길 거야?”
“이건 전에 살던 동네인데요...”
갑자기 삐익-, 하는 소리가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지나갔다. 유리판을 날카로운 금속으로 도려내는 소리 같았다. 이명에도 주관적인 게 있고 객관적인 게 있습니다. 환자분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특별히 장기 복용하는 약물도 없고, 알레르기 증상도 없으시고, 이완, 그러니까 유스타키오관에 이상도 없습니다. 가끔 귀지가 꽉 막혀서 그런 분들도 있거든요. 일단 처방대로 약을 드시고, 심리적인 안정을 취해보세요.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이비인후과 의사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나를 안심시켰다. 젠장, 부장만 아니었으면 오후 예약 진료를 받았을 텐데. 그러면 깔끔하게 나았을 텐데.
“웃기지 마, 당신은 아직도 서울 반대편 공릉동에 살아. 주민증, 면허증 모두 이면 기재가 없어.”
경비원은 신분증의 뒷면을 들이밀었다.
“그건, 아마도...”
아마도 이사하고 나서 미처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그건 아마도 당신이 미친놈이라는 뜻일 거야. 어떻게 할래? 경찰을 부를까, 그냥 조용히 꺼질래?”
나는 경비원의 막말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갑작스럽게 되돌아온 이명은 소름 끼칠 정도의 높은 소프라노로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고음의 절단기가 당장이라도 머리를 쪼갤 듯이 윙윙거렸다.
“수작 떨지 말고 얼른 꺼져!”
경비원은 내 가슴을 밀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잠깐! 잠깐만!”
나는 경비실 문을 등지고 버텼다.
“내 핸드폰에 보면 우리 집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자, 잘 보라구.”
경비원이 주춤하는 사이,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러 액정화면에 떠오른 전화번호를 보여 주였다. 통화 연결음이 아득한 비명 소리처럼 느껴졌다. 경비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전화기를 노려보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경멸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자동응답기가 받았는데 이게 뭐 어쨌다는 거야?”
“전화번호를 보란 말이야. 이 동네 맞잖아. 당신 서류철 어딘가에 103동 2003호 전화번호가 나와 있을 테니까 대조해봐, 당장!”
나는 캐비닛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쳤다. 고막이 찍찍 소리를 냈다. 머릿속에서 전기톱이 쇳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입주자 전화번호는 우리가 관리 안 해. 그건 관리실 소관이지. 우리 회사는 차량과 경비만 책임져. 정 확인하고 싶으면 아침에 다시 오도록 해.”
“당신은... 당신은 모가지야. 해고될 거라구.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완력으로는 도저히 경비원을 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멱살을 잡힌 채 경비실 밖으로 끌려 나오며 악을 썼다. 나를 아파트 입구 밖으로 끌어낸 뒤에야 경비원의 손이 풀렸다. 나는 맥없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너, 내가 여기서 경비나 보고 있으니까 사람이 우습게 보이냐?”
그가 씨근덕거리며 씹어 뱉었다.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는 건 당신이야.”
“이봐, 젊은 친구. 억울하면 여기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대. 그러면 되는 거야.”
“저, 현관문만 열어줘요. 그러면 다 해결된다구.”
“증거를 대. 그럼 열어주지.”
경비원은 딱 잘라 말한 뒤 두 손을 탁탁 털고 경비실로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