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글쓰기
나와 아내는 9호선 근처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삼전동에서 직장까지는 40분 남짓 걸린다. 이 정도 거리라면 출퇴근길이 괴롭지 않으니, 집을 옮길 때도 직장과의 거리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넘는 곳들은 애초에 배제했다. 서울은 넓고 살만한 곳도 많지만, 직주접근성에서 떨어지는 곳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었다.
처음엔 서초구나 동작구를 보았다. 그러나 예산을 고려하면 그쪽은 너무 비쌌다. 그래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강동구나 하남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역시 직주접근성에서 너무 떨어졌다. 분당도 잠깐 마음에 두었으나, 예산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수지와 광교까지도 한 번 살펴보았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직주접근성을 포기할 수 없어서 생각을 접었다. 그러던 중 모란역 위쪽의 구성남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직주접근성과 가격이 적당해 보였다.
아내와 의논 끝에 구성남으로 가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적당한 가격대의 단지들을 돌아다녔다. 구성남에는 6~7억 대의 준신축 단지들이 많았다. 가격과 직주접근성을 고려할 때 더 나은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천대 두산위브’ 단지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여러 번 다녀보면서 이 단지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가가 가까워 편의시설이 풍부했고, 10년 이내 준신축이라 깨끗했다. 강남과 판교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단지 내 어린이집까지 갖춰져 있었다. 가천대역까지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전용 59타입이 6~7억 대로 예산에도 맞았고, 주변에 신규 대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계속 찜찜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 단지로 가려면 꽤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했다. 자가용이 있으면 문제 없겠지만, 도보로 다니기엔 그 언덕이 걸렸다. 삼전동은 평지라서 이동이 편했고, 인근에 석촌호수와 탄천이 있어 산책하기도 좋았다. 이런 점들을 떠올릴수록, 굳이 삼전동을 떠날 이유가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결정을 내리기 전, 부동산 관련 일을 하는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의견을 물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서울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앞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릴 거라고 했다. 삼성역 근처에 GTX가 들어서고, 한전부지에 GBC가 들어서면 그 일대가 완전히 변할 거라고도 하셨다. 게다가 다리만 건너면 있는 학여울역 인근에는 제2의 코엑스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했다. 위례신사선 착공도 예고되어 있으니, 삼전동을 떠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하셨다. 그 말에 아내와 나의 마음도 자연스레 삼전동에 더 기울어졌다.
언론에서도 직주접근성이 주거지 선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출퇴근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는 사람들의 주거 만족도가 1시간 미만인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보도도 있었다.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의 집값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높게 형성된다는 점도, 직주접근성이 중요한 이유였다. 특히 젊은 세대는 직장과의 근접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고 했다.
삼전동은 빌라촌이라는 한계가 명확했지만, 직주접근성에서만은 어떤 동네에도 뒤지지 않는다. 석촌호수와 탄천이 있어 여가를 즐기기 좋고, 잠실이 가까워 생활 인프라도 충분하다. 결국, 우리는 삼전동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우려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보다 더 합리적인 판단은 없었다.
삼전동을 떠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