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글쓰기
지난 주말, 설악산 대청봉에 다녀왔다. 한라산과 지리산은 다녀왔으니 남한에서 높다는 3대 명산을 모두 정복한 셈이니, 어딘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뭔가 이룬 기념으로 지난 산행들의 기억을 정리해 보고 싶어 졌다.
코로나로 세상이 얼어붙었던 2021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 신혼여행이라 부를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겨우 열린 몇 나라들은 만만치 않은 비용에, 규제도 많았고. 결국 선택지는 하나, 제주도였다. 그곳이라면 비행기도 탈 수 있고 면세점도 들를 수 있었다. 물론 여느 해외 신행의 그 낯선 설렘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여행이었다.
제주도는 성인이 된 이후로 다섯 번쯤 갔으니, 평균 잡아 2년에 한 번 정도 간 듯 싶다. 그러니 제주 시내부터 서귀포까지, 유명하다는 곳들은 대충 다 둘러봤었다. 하지만 한라산 정상만큼은 언제나 눈에만 담았지, 정작 올라보질 못했다. 한번은 정상 아래 대피소까지는 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하필 폭설에 기상이 악화되어 백록담을 보는 것은 그저 꿈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엔 결심이 서 있었다. 아내도 백록담을 꼭 보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천금 같은 신혼여행 일정 중 하루를 아예 한라산에 바치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라산 입산 인원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통제가 되고, 그것도 선착순. 새벽에 일찌감치 서둘러야 겨우 등반이 허락된다는 얘기였다. 코스는 두 개. 하나는 평탄하다는 성판악, 다른 하나는 험난하다는 관음사. 우리는 무리 없이 성판악을 택했다.
성판악 코스는 험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지루했다. 산의 높이를 실감하기 힘들 정도로 길은 평이하고, 여정은 고요했다. 지쳐갈 무렵 백록담에 도착했지만 기상악화로 거센 바람과 비에 옷이 젖어 사진만 찍고 금새 대피소로 몸을 옮겨 간신히 점심을 꺼냈다. 도시락 대신 양념 통닭과 캔맥주를 준비해 갔던 터였다. 허기진 배에 하나씩 집어넣고자 했으나, 이상하게도 입맛이 없어 맥주만 간신히 비우고는 통닭 반 마리를 남겼다. 하산 후 숙소에서 남은 통닭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은 아니었다. 다만 여름이 한참인 5월에도 한라산의 바람은 끝없이 싸늘했다. 언제 다시 올라가더라도 가벼운 바람막이는 필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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