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번 가는 길 - 커클랜드 스몰배치

취향의 지향

by Typho

타격감과 바디감

3년 전쯤이다. 위스키 열풍이 한창일 때, 나도 그 물결에 휩쓸려 위스키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원래 술을 즐기는 편이라, 위스키를 좋아하게 되는 데에는 별다른 장벽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위스키를 좋아하게 될지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참이슬이나 처음처럼도 구분 없이 마시던 내게, 위스키의 세계는 조금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


회를 먹을 땐 괜히 한라산 21도를 찾곤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게 취향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16도 희석식 소주보다는 20도를 넘는 증류식 소주가 내 입맛엔 더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꽤 중요한 발견이었다. 위스키 취향을 찾아가는 데 있어, 이게 하나의 단서가 된 셈이다. 나는 목넘김, 그러니까 ‘타격감’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와인은 레드 중에서도 말벡을 좋아했는데, 이를 굳이 말로 풀자면 ‘드라이하면서도 적당히 달큰한 바디감’을 선호한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위스키 취향의 기준으로 ‘타격감’과 ‘바디감’이라는 두 축을 세우게 됐다.



물소 추적기

처음 위스키를 접할 때는 대개 그렇듯 블렌디드 위스키로 시작했다. 마시기 부드럽고, 도수도 40도를 넘으니 일정 수준의 타격감도 있었다. 그런데 몇 번 마시다 보니 어딘가 밍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미국식 위스키인 버번에 대해 알게 됐다. 옥수수 베이스의 달큰한 풍미, 대부분 40도를 훌쩍 넘는 도수. 내가 원하던 기준에 부합하는 위스키였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져보니 ‘버번 입문 3대장’ 같은 리스트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메이커스 마크는 뚜껑이 스크류 방식이라 그냥 넘겼고, 와일드 터키는 101과 8년산의 차이를 잘 몰라 패스했다. 그렇게 남은 게 버팔로 트레이스였다. ‘미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맛도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확 쏠렸다. 본고장에서도 귀하다는 말은, 왠지 나만 아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기분을 준다. 결국 나는, 내 소비가 꽤 자의적인 동시에 ‘입소문’에 약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블렌디드보다 도수가 높은 45도의 버번은 내 취향에 더 맞았다. 알코올이 튀는 느낌이 살짝 있었지만, 옥수수가 주는 달큰함이 그 날카로움을 다독여주는 느낌이 좋았다. 이쯤 되니, 위스키는 ‘버번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물론 버번만 마시겠다는 다짐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위스키를 살 일이 있다면, 버번이 우선순위라는 정도의 결심이다.


그 이후로도 블렌디드, 싱글몰트, 아이리시 등 이것저것 마셔봤지만, 아직까지 버번만큼 곁에 두고 싶은 술은 없었다. 지금 내 술장엔 내터잭 CS라는 아이리시 위스키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녀석도 버번 캐스크를 썼으니, 완전히 다른 계열이라 보기도 어렵다. 어쨌든 내 위스키 여정은 지금, 버번에 정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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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코스트코에서 자주 눈에 띄는 가성비 버번이다. 한 번 눈에 밟혀 사 왔는데, 문제는 내 술장에 있는 위스키들이 대부분 50도를 넘는 고도수들이라 손이 잘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소주와 맥주를 줄이고, 집에서 위스키에 탄산수를 넣어 하이볼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이 녀석을 다시 꺼내게 됐다. 니트로 마셨을 땐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다. 맛도 향도, 마무리도 옅은 편이었다. 그러나 온더락으로 바꾸자 피니시에서 크리미한 풍미가 살아났고, 하이볼로 마실 땐 은근히 즐거운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위스키는 1792 증류소에서 나온다고 한다.


덕분에 1792를 굳이 마셔보지 않아도 약간은 경험해본 듯한 기분도 든다. 이런 소소한 재미도 위스키를 즐기는 데 한몫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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