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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Feb 18. 2021

#38. 이너프 포 라이프

101번 글쓰기

추우니 더웠던 기억이 솔솔



너무 더웠던 치앙마이가. 당시에는 얼른 서울로 돌아오고 싶던 치앙마이가 다시 가고 싶어졌다. 물론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가고 싶을 만큼 (더위만 빼고) 다 좋았던 치앙마이가 요즘 너무나도 다시 가고 싶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더위가 그리울 만큼 맹추위가 가시질 않고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작년 9월 중순부터 계속 추웠던 것 같다. 봄이 스치고, 여름에 비로 더운 줄도 모르고 지나쳐서 그런지 유독 올해 겨울이 길고 무진장 춥다. 아침 저녁으로 쿠크와 산책을 해야 하는데, 너무 추운 날에는 소형견에게 산책이 건강에 이롭지 못하다고 하니 산책도 응가만 누고 바로 복귀한지 2주 정도 된 것 같다. 밖에 한 번 다녀오면 귀부터 목 뒷덜미가 급속 냉동 되었다가 실내에 들어오면 뜨겁게 녹아서 신체온도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는 느낌이 자주 든다.


그런 겨울에 살고 있으니 더웠던 치앙마이가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치앙마이가 덥기만한 곳도 아니고 볼 것, 먹을 것, 즐길 것이 풍족했고 무엇보다 가성비가 정말 좋았었다. 작은 성곽안에 있는 구도심과 그랩을 타고 조금만 나가면 되는 외곽의 유원지들이 참 좋았다. 짧은 거리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이 해결 되는 아담하지만 풍족한 도시라고 기억난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치앙마이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숙소, 이너프 포 라이프가 간절해진다. 아마 지점이 여러곳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갔던 곳은 시멘트 담벼락과 정리 되지 않은 야지들, 건축이 되다 만 3층 건물과 멋들어 지게 완공된 펜트하우스 같은 곳(말하고 나니 참 어지러운 곳이었다.)에 있었다. 주변은 공단 근처 시골동네 같은 느낌이었다. 숙소에는 그랩을 타고 도착했는데, 가는 내내 제대로 가는 거 맞나 싶었다. 혹시라도 그랩 기사가 인신매매단은 아닌가 걱정하면서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니 주변의 어지러운 상황과는 전혀 딴 판인 정감가는 2층 건물이 있었다. 마당은 내 키만한 담벼락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정문 좌측에는 카페 겸 부엌이, 우측에는 에어컨이 나오는 거실(?), 마루(?) 같은 소박한 전시공간이 있었다. 치앙마이가 커피가 유명하다고 익히들었었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체크인 해줄 직원을 기다리며 아이스 라떼를 먹었다.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주변과 조화롭지 못하게 감성충만한 공간이라는 생각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척 시원했다. 자리를 잡은 곳만이 에어컨이 나오기도 했지만 색다른 공간에서 더위와 완전 대비되는 차가운 라떼가 더 극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우리 숙소는 2층에 있었고, 정문과 마당을 지나 뒤뜰로 가면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었든데, 계단의 맞은 편에는 작은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에는 작은 플라멩고 튜브가 있었는데 분명 핑크색인데 더위를 가셔주는 파란색처럼 시원함이 느껴졌다.


2층 숙소는 최신 건물이 아니라서 더위에 취약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선선했다. 선풍기만 한대 있었는데 바람이 솔솔 부는게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에는 찬기가 돌 정도였다. 건물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문 앞에는 낮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는데, 조식을 가져다 주면 거기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이지만 차양막 아래 있는 낮은 테이블에서는 더위가 얼씬하지 않았다. 그래서 햇살 아래 감성적인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별거 없는 숙소였다. 하지만 감정이 증폭되는 숙소였다. 없는데 자꾸 감정을 생기게 하는 신기한 숙소였다. 그래서 요즘 같이 춥기만 하고 안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 더 생각이 나는 것 같다. 너무 많은데, 그 때와 같이 좋은 감정이 생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일은 미니멀하게, 좋은 감정은 맥시멈하게. 이너프 포 라이프에서 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서 오늘 글을 썼고,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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