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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Feb 22. 2021

#39. 씨티러닝

101번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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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위시리스트 도시별 뜀박질


기회만 주어지면, 시간만 주어지면 냉큼 달리려 든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공한 남성들의 루틴. 아침에 러닝하기. 세계를 여행하면서 도착한 나라별 도시의 아침을 달려보는 것이 제일 큰 위시리스트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어렵다. 여행을 가면 온 몸이 이완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가 굉장히 어렵다. 여행을 가면 매일 밤 술과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기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아침에 무적권 눈을 뜬다. 그리고 짧은 반바지와 빨려고 구석에 박아 두었던 반팔을 입고 쿠셔닝이 훌륭한 운동화의 끈을 꽉 멘다. 그리고 나이키 런을 켜서 달린다.

#보스턴
찰스강이 있는 보스턴은 러닝하기에 안성맞춤의 도시였다. 바다가 인접해 있어서 바람도 선선하고 찰스강에 카약을 타는 사람들을 보는 맛도 쏠쏠했다. 카약이 스무스하게, 생각 보다 빠르게 전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뭔가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가 있었다. 굉장히 부드러워 보였기 때문일까.

찰스강의 수 많은 다리 중에 2개의 다리를 꼽아서 한 바퀴를 돌았다. 숙소가 버클리음대 쪽에 있어서 강을 건너기 전에는 울창한 가로수의 그들 밑으로 뜀을 뛰었고, 강을 건너서는 MIT 근처의 웅장한 건물들을 옆에 두고 뜀을 뛸 수 있었다. 유수의 대학들이 밀집한 도시여서 그런지 러너들도 뜀박질이 경쾌했다. 상의를 벗고 뛰는 몸 좋은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뭔가 젊음을 분출하는 듯 보여 나도 건강해지는 플라시보가 생기기도 했다.

보스턴에서는 할게 너무 없어서 아침 저녁으로 뛰었는데, 아침에는 햇살이 좋았고 밤에는 야경이 좋았다. 강 건너에서 본 보스턴은 뉴저지에서 본 맨하튼 만큼이나 멋드러졌다. 다시금 가고 싶은 도시이다.



#뉴욕

뉴욕여행을 한 사람은 많겠지만 이른 아침 센트럴파크를 뛰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맨하튼 8번가에 숙소를 잡고 아침에 센트럴파크로 러닝을 다녔다. 숙소가 포트 오소리티 라는 뉴욕에서 제일 큰 버스터미널 근처라서 하루종일 복잡했고, 숙소에서 센트럴파크 가는 길에 타임스퀘어가 있어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 곳을 동양인이 러닝 복장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이 흔하진 않았다. 아마 그 아침에 러닝을 하는 동양인은 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도심을 뛰다가 광활한 센트럴파크에 들어서면 수백의 러닝 크루들이 있었다. 개를 동반한 러너, 그 사이를 비집고 뛰어 출근하는 통근자들, 여유롭게 거니는 노년의 부부들, 구석에는 부랑자들, 중간 중간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과 잔디밭에서 요가를 하는 동아리 사람들 등 무척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만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센트럴 파크가 워낙 크기도 하고 너무 북쪽으로 가면 할렘과 가까워져서 센트럴 파크 안에 있는 호수를 중심으로 반 정도만 러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크긴 했지만 뉴욕이라는 거대 도심에 있었기 때문에 러닝 후 상쾌함은 없었다. 그냥 뉴요커가 된 것 같은 허영심만 생겼던 것 같다.


#파리

숙소가 몽마르뜨 근처였기 때문에 센느강까지는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뜀박질을 위해 가볍게 입은 옷은 통근버스에 직장인들과 괴리가 있어 쪽팔렸던 기억이 난다. 이른 아침 센느강은 바람이 찼다. 혼자 뛰고 있었지만 방향이 맞는 사람들이 있어서 크루처럼 뛰었던 것 같다. 사실 혼자 뛰면 루즈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옆에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러닝이 알차지는 맛이 있다. 아침에 센느강변을 뛰면서 에펠탑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한국사람인지 파리지엥인지 헛갈릴 정도이다. 피곤함을 뒤로하고 이른 아침 센느강변을 뛰는 호사를 누려보길 바란다. 아침에 뛰다가 힘들면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에서 물을 마실수도 있다. 시간이 되면 성당에서 기도를 할수도 있다. 관광객이 없는 시간에 고독하고 조용하게.



#포르투
도우루 강은 저녁에 가야 제맛이기 때문에 나는 FC포르투 스타디움까지 뛰어갔다. 가는 길에 아침일찍 문을 여는 빵집 사장님, 식료품집의 아줌마들을 볼 수 있다.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가정집들도 볼 수 있다. 홍대에서 놀다가 연희동으로 옮겨가는 듯한 기분이다. 포르투는 대도심은 아니기 때문에 뛰고 나면 상쾌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생활감 있는 아침의 분주함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치앙마이

구도심은 성곽안에 있는데, 성곽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도심을 한 바퀴 뛰면 1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 것 같은데, 해미읍성 같은 규모로 체감된다. 단, 치앙마이는 아침부터 덥고, 태국 북부의 고지대에 있지만 미세먼지가 심각해서 러닝하기에 적합한 도시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땀을 비오듯 흘리는 러닝이 취향이라면 꼭 더위 속에서 땀을 비오듯 흘릴 수 있는 치앙마이에서의 러닝을 추천한다.


#솔즈버리


노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인데, 이모댁이 있어서 한달 정도 머물었던 도시다. 차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가구별 간격이 굉장히 넓고 숲이 울창한 전형적인 미국의 한적한 숲마을이다. 그런 곳에서 한달을 체류하면서 매일 아침 러닝을 했다. 러닝 하면서 사슴도 보고 여우도 보고 토끼도 보고 기러기도 봤던 기억이 난다. 한 바퀴 뛰고 나면 상쾌함은 극상이었고 녹음의 풍경도 극상이었다. 한국사람이 여행으로 솔즈버리를 갈 일은 극히 드물 것 같다. 아마 나만 이야기할 수 있고, 나만 공감할 수 있는 러닝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이외에도 수 많은 도시를 뛰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앞두고 오늘부터 다시 아침 러닝을 시작하려고 하니 이전의 러닝 히스토리가 생각이 났다. 하루 8시간을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몸도 근질 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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