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telegraph)에서 인공지능(AI)까지
미국 금융산업 형성기에, 각 도시는 자체적으로 금융 업무를 수행했다. 다음은 모든 것을 바꿔놓은 핵심 혁신들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출발점이 된 ‘버튼우드 협정(Buttonwood Agreement)’ — 단 한 장의 손으로 쓴 문서 — 은 그야말로 ‘로우테크(low-tech)’의 상징이었다.
1792년 5월 17일, 월스트리트 68번지 앞 버튼우드 나무 아래에 모인 24명의 주식중개인들이 서명한 이 문서 이후, 금융시장은 주문 전송과 데이터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전신(telegraph)에서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의 혁명적 기술 도입은 크게 두 가지 동인에 의해 추진되어 왔다.
주문 및 시세 정보를 더 빠르게 전송하려는 욕구
끊임없이 성장하는 실물경제를 뒷받침할 투자자 저변 확대의 필요성
이러한 기술 발전은 ‘24명의 중개인이 나무 아래서 거래하던 폐쇄적 시장’을 ‘국민적 참여가 가능한 투자 생태계’로 변화시켰다. 오늘날 미국 성인의 약 3분의 2가 주식 투자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거래는 컴퓨터·스마트폰은 물론, 과거 버튼우드 나무 아래에서도 가능했던 것처럼 언제 어디서든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 사진설명: 1913년 당시 주식 시세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송되었다. 전신(telegraph) 기사들이 원형의 푸시버튼 키보드에 거래 데이터를 입력하면, 이 신호가 전기적으로 연결된 각 구독자 사무실의 티커(ticker) 프린터 바퀴를 작동시켜, 실시간으로 종목명·가격·거래량 등이 인쇄되었다.)
미국 건국 초기, 대부분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던 시절에는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가 말이 달릴 수 있는 최고속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각 도시가 자체적으로 금융 거래를 처리하며 지역 단위의 자본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844년, 사무엘 모스(Samuel Morse)가 세계 최초의 실용 전신선을 통해 “What hath God wrought! (신이 이루신 일을 보라!)”라는 네 단어를 전송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사건은 뉴욕을 전국 금융의 중심지로 도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역사학자 로버트 소벨(Robert Sobel)은 그의 저서
*『The Big Board: A History of the New York Stock Market』*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기업들은 마침내 이런 새로운 장치가 가진 가능성에 눈을 떴다.”
월스트리트의 자본 지원을 바탕으로, 모스는 매그네틱 텔레그래프 컴퍼니(Magnetic Telegraph Co.)를 설립하고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전신선을 구축했다. 이 회선의 최초 고객 중 일부는 주식 중개인과 트레이더였다. 이제 월스트리트의 시세는 당일 안에 필라델피아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보스턴·버펄로·미시시피 강 서쪽까지 전신망이 거미줄처럼 퍼지면서 미국 전역의 금융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었다.
소벨은 이렇게 썼다.
“1850년대 말까지 월스트리트는 모든 주요 도시와 연결되었고, 그들 모두의 시세를 결정짓는 중심시장이 되었다.”
즉, 월스트리트는 국가 단위의 금융시장(national financial market)으로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가 미국의 대표 금융허브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세만 빠르게 전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금과 증권을 실물로 교환할 더 신속한 수단이 필요했다. 말을 타고 문서를 전달하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었다.
미국의 초기 도시들이 아직 황야로 분리되어 있던 시절, 역마차(stagecoach)나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와 같은 운송 수단은 험준한 산맥과 미개척지를 횡단하는 데 수일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대륙횡단철도(Transcontinental Railroad)의 등장으로 이동 시간은 하루 이내, 일부 구간은 당일 운송이 가능할 정도로 급격히 단축되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전국 단위 물류·거래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혁신이었다. 미국의 철도 총연장은 1860년 약 3만 마일에서 1890년에는 16만 3,500마일로 급증했다. 대부분의 철도 노선에는 전신선(telegraph line)이 함께 설치되어, 물류와 통신이 동시에 연결되는 복합 네트워크 구조를 이뤘다.
철도산업은 미국 최초의 ‘대기업(Big Business)’이었다. 1880년대 펜실베이니아 철도(Pennsylvania Railroad)는 직원 수 5만 명 이상을 고용했는데, 이는 당시 최대 규모 방직공장 종사자 수(약 1,000명)의 50배 수준이었다. 이처럼 방대한 운영 규모는 막대한 자본 조달 수요를 낳았고, 그 자금을 공급한 곳이 바로 월스트리트(Wall Street)였다. 역사학자 로버트 소벨(Robert Sobel)은 저서 『The Big Board』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의 월스트리트는 은행 및 보험 관련 증권이 중심이었으나, 1856년이 되자 철도주와 철도채권의 시가총액이 다른 모든 자산을 합친 규모를 넘어섰다.”
이 시기는 흔히 ‘로버 배런(Robber Barons, 약탈적 자본가)’ 시대라고 불린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와 제이 굴드(Jay Gould) 같은 인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동시에, 그들의 탐욕과 비윤리적 행위로 인해 ‘새로운 자본주의 현상으로서의 월스트리트’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경제사학자 마이클 힐칙(Michael Hiltzik)은 저서 Iron Empires: Robber Barons, Railroads, and the Making of America』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의 천문학적 부와 노골적 탐욕은 신흥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적 신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개인투자자(individual investor)**가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철도산업의 막대한 자금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일반 개인들도 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1853년 기준 뉴욕 센트럴(New York Central)과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철도 — 당시 전국을 잇는 수백 개 노선 중 단 두 곳에 불과했음에도 — 각각 2,400명 이상의 개인 주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로버 배런 시대’의 자본집중과 동시에 투자의 대중화(democratization of investing)가 함께 진행된 시기였다.
개척시대 시인 호아킨 밀러(Joaquin Miller)는 한 주 동안 월스트리트를 취재하라는 과제를 받았다. 그는 그곳에 6개월간 머물며, 한때 거액을 벌었다가 다시 잃기도 했고, 그 경험을 통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투기꾼(speculator)으로서의 월스트리트 인상’을 남겼다.
그는 1880년 10월 30일자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 기사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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