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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첫 5년이 노후를 결정한다!

by 투영인


잘못된 시점의 부진한 수익률이 은퇴 자금을 위협하는 이유

은퇴를 위한 저축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일찍 시작해서 매달 소득의 10~15%를 연금저축이나 IRP에 꾸준히 넣고, 저비용 ETF나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사람은 대체로 노후 생활비를 감당할 만한 자산을 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적립이 아닌 인출을 시작하면 포트폴리오 가치는 시장 수익률과 생활비 인출이라는 두 가지 변수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시장이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은퇴 직후 하락장을 만나면 이중고가 된다.


'수익률 순서 위험(SEQUENCE RISK)'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예시로 살펴보자. 5억 원으로 은퇴해서 매년 2,500만 원(연 5%)을 인출한다고 가정하자. 첫해 +15%, 둘째 해 +10%, 셋째 해 -20%의 수익률을 얻으면 3년 후 잔액은 약 4억 3,800만 원이다.


[표 1: 수익률 순서의 작동 원리 - 시나리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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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수익률이 역순으로 발생하면 어떨까? 첫해 -20%, 둘째 해 +10%, 셋째 해 +15%라면 3년 후 잔액은 약 4억 2,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평균 수익률은 동일하지만 결과는 1,800만 원이나 차이 난다.


[표 2: 수익률 순서의 작동 원리 - 시나리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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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마이너스 수익률이 자산이 가장 많은 초반에 발생하면 손실 금액 자체가 크고, 이후 플러스 수익률이 나와도 원금이 줄어든 상태에서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수익률 순서 위험(Sequence of Returns Risk)'이다.


한국 주식시장도 이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코스피 지수 기준으로 1997~98년 외환위기, 2000~01년 IT 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2022년 긴축발작 등 2년 연속 큰 폭의 손실이 발생한 시기가 있었다. 만약 이 시기에 은퇴했다면 노후 자금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것이다.


[그래프 1: 코스피 주요 하락기 (199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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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첫 5년의 수익률이 성패를 가른다


모닝스타의 '2025 은퇴소득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 100% 포트폴리오로 은퇴에 진입한 경우 30년간 자금이 바닥나지 않을 확률 90%를 유지하려면 연간 인출률을 3.4%로 제한해야 한다. 10억 원으로 은퇴하면 연 3,400만 원, 월 280만 원 정도만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시뮬레이션 결과다. 은퇴 기간 중 자금이 바닥난 '실패' 사례의 약 70%가 은퇴 후 5년 내에 투자 손실을 경험한 경우였다.


[그래프 2: 실패 사례 중 은퇴 초기 손실 경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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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은퇴 첫 5년간 수익률을 기준으로 분석하면, 수익률 하위 20%에 해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실패율이 40%를 넘었다. 반면 수익률이 중간 이상이면 실패율은 5%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래프 3: 은퇴 초기 5년 수익률 분위별 실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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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은퇴 첫 5년을 플러스 수익률로 통과하면 이후 자금 고갈 확률은 4%에 불과했다. 단 1년만 플러스 수익을 내도 실패 위험이 절반으로 줄었다.


한국 은퇴자를 위한 위험 완화 전략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첫째, '버킷 전략'을 활용하라.

은퇴 자산을 3개의 버킷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1번 버킷(현금성): 1~2년치 생활비를 MMF나 예금에 보관

2번 버킷(중기): 3~7년치 생활비를 채권형 펀드나 채권 ETF에 배분

3번 버킷(장기): 나머지를 주식형 자산에 투자


시장이 하락해도 1번 버킷에서 생활비를 충당하면 되므로, 주식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둘째, 인출률을 유연하게 조정하라.

매년 고정 금액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가치의 일정 비율(예: 4%)을 인출하거나, 시장이 크게 하락하면 지출을 줄이는 '가드레일 전략'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출률이 5%를 넘으면 지출을 10% 줄이고, 3% 아래로 떨어지면 10% 늘리는 식이다.


셋째,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전략적으로 조정하라.

국민연금은 수령을 5년 연기하면 연 7.2%씩, 최대 36% 증액된다. 은퇴 초기에는 개인 자산으로 버티고 국민연금은 최대한 늦춰 받으면, 후반부에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수익률 순서 위험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 된다.


네째, 연금보험을 고려하라.

생애 말기에 자금 고갈이 우려된다면 즉시연금이나 종신연금 가입을 검토할 만하다. 원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어 '오래 살 위험(장수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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