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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Feb 06. 2022

어떻게 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

미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우선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팍팍해서 도피성으로 미국에 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좀 더 긍정적인 동기가 있다면 좋겠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어려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여튼 어떤 이유로든 좀 절실하게 마음을 먹을 필요가 있다. 그냥 막연하게 미국에서 살고싶다는 것 말고, 그 다음 단계의 행동을 촉발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정말로 착한 아내를 만났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둘이서 목소리를 높여서 싸운 적이 없다. 그것은 뭐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웬만하면 해야 하는 내 성격을 잘 받아주고 항상 양보해주는 아내의 공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우리 집에 유일하게 먹구름이 낄 때가 아이 교육 관련한 이야기이다. 학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공부 안 한다고 득달하는 아내를 보면서 다 때려치우라고 한소리를 하고 나면, 집사람은 그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좋을 리 없으니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 우리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지만, 요새 아이들은 학원을 도느라 집에 11시나 되어야 온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랑하는 아이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사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잘 못 선택한 첫 직장에서도 어쨌거나 2년 동안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갓 졸업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사원이 일 재미없다고 6개월 만에 때려치운다고 했을 때 잘 다독거려준 사수 덕분이었다. 직장을 옮긴 다음에 만난 지사장님들도 다들 합리적이고 좋은 분들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선배님들도 괜찮은 분들이었는데, 딱 한 가지, 가끔 정치 이야기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질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드신 분들은 좀 보수적인 경향이 있고 따라서 내 어설픈 진보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거였다. 회식에서의 정치 이야기는 피하면 그만이지만, 매일매일 보는 뉴스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내가 보기엔 말이 되지 않는) 불합리한 일들을 보면, 정말로 한국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꽤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인도의 젊은 필드 엔지니어의 이야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영업으로 자리를 옮긴 한참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현역에서 일할 때, 나보다 입사도 한참 늦게 하고 나이도 어린 친구가, 본사에 가더니 갑자기 휙휙 치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반드시 승진이 목표일 필요는 없다. 순수하게 기술에 대한 열정으로,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더욱 멋지게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면,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중요한 기술적인 결정들이 이루어지는 본사로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보다 중요한 직책을 맡아서 승진하는 것이 덤으로 따라올 수도 있고.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막연히 생각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미국에 와서 일하는 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것은 마음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똑 부러지는 이유 없이 그냥 미국 유학을 꿈꾸고, 본사 출장을 다니면서 본 미국 생활의 모습을 동경하고 하는 것들은 마음을 먹는 것이 아니다.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그 순간의 재미와 만족을 위해서이지,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고등교육까지 마친 사람이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것이 유학일 것이다. 나도 막연하게 생각만 했고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도 미국 취업은 쉽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이 비자 문제일 것이다. 미국에 와서 장기간 머무르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한데, 물론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관광 비자로 와서 일하거나 장기 체류하는 예도 있지만 불법이다. 유학생은 학생 비자를 받고 오는 것인데 이것은 와서 공부하라고 내준 체류 허가이므로 취업을 할 수 없다. 졸업 후에 OPT (Optional Practical Training)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기간을 제한하고 임시로 취업을 한 후에, 회사에서 정식 취업 비자 후원받아서 신분 전환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같이 일해봤고, 지금 프로젝트를 하는 고객사에도 OPT로 와서 일하는 직원이 있는데, 두 경우 모두 매우 실망스러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 대학교 갓 졸업한 직원이 기술이 좋아도 얼마나 좋고 업무를 잘해도 얼마나 잘하겠는가. 대부분 기간을 업무를 알려주다가 지나게 마련이고, 당장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부담만 떠안는 상황이 된다. 일을 알려주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니까. 다만, 그 OPT로 들어온 친구가,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 유학을 와서 꼭 미국에서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친구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유학생이라면 영어가 미국 친구들만큼 유창하지 않을 테니 그 부분은 핸디캡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워낙 우리 회사의 업무가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이니, 본인의 실력으로 그 핸디캡을 매울 수 있다면, 그래서 일 시작하고 한두 달 만에 빠릿빠릿하게 업무 파악하고, 몇 달 지나서는 벌써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기 시작하는, 그런 친구를 만난다면 당연히 회사에 건의해서 그 친구를 계속 회사에 잡아둘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할 것 같다. 다만 그 경우도 H1B 취업 비자의 추첨에 따른 운도 따라줘야 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하니, 여전히 좁은 문일 것이다.


미국에 와서 직장을 다니면서 산다는 것이 결국 어떻게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얻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고 보면, 접근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볼 때 주재원 비자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대기업에서도 주재원으로 나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업무 연관성이나 영어 소통 능력, 직급 등등 여러 가지를 볼 것이다. 한국 기업의 문화를 생각해보면 정치력과 인맥도 필요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주재원 근무를 직원 본인과 가족에게까지 주어지는 큰 혜택이라고 보면 그런 콩고물을 아무에게나 막 나눠주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내 짐작일 뿐이다. 대기업 말고 좀 더 작은 수준의 무역 상사나 벤처 기업 같은 곳을 통해서 미국에 들어오는 것이 경쟁과 확률이라는 면에서는 더 낫지 않을까 하는데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 회사에서도 같은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한국의 지사에서 일하다가 미국의 본사로 주재원 비자를 얻어서 내부 이동하는 형식이 된다. 한국에 나와 있는 수많은 외국인 회사들이 회사마다 문화도 다르고 절차도 다를 테니 너무 구체적인 이야기보다는 큰 원칙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는 되겠지만, 여전히 미국 사람들에 비해서는 불편한 수준이라고 보면, 업무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하냐에 따라서 난이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런 면에서 엔지니어, 특히 그중에서도 개발 엔지니어가 유리할 것이다. 개발자들도 분명 회의에도 들어가고 가끔은 발표도 해야 하지만, 그 사람의 핵심 가치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이를 적용해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로 의사소통이 약간 불편하더라도 그 사람을 미국에 불러들여서 다른 개발팀과 같은 사무실에서 옆에 앉아서 일을 시키는 것이 회사로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미국 본사로 가서 일한다는 가능성에 있어서 개발 엔지니어와 반대되는 쪽에 있는 사람이 영업직이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직원을 미국에 불러서 같은 일을 시킨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기적적으로 그 영업사원이 영어를 정말 원어민처럼 잘한다고 해도 여전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영업한다는 것은 그 나라 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학교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쌓인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이쪽의 비즈니스 관행 등에 대한 높은 이해가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의 비즈니스를 미국에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 경우이다. 한국 지사에서 현장 영업을 책임지지만, 본사 쪽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조율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미국 사람보다는 한국의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는 한국 사람을 본사로 불러들여서 일을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회사 대부분은 현지 영업은 한국의 영업사원과 한국 지사의 지사장,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에 있는) 아시아 담당 부사장에게 맡기고 필요할 때 회의하는 정도이지, 전담 직원을 본사로 불러들이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영업팀과 개발팀의 사이에 있는 일이 흔히 말하는 필드 엔지니어 (Field Application Engineer) 업무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기술 영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많은 미국 회사들에 있어서 한국은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시장이 된다. 그렇다고 매번 본사의 엔지니어가 와서 제품을 설명해주고 기술 지원을 해 줄 수 없으니, 한국의 지사에 필드 엔지니어를 채용하게 된다. 이 사람들은 제품과 서비스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미 개발된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고객의 프로젝트에 잘 적용할 수 있을지를 도와주는 업무를 맡는다. 


비즈니스를 직접 책임지는 영업사원이 아니니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라도 미국에서 업무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드 엔지니어도 결국은 영업사원과 함께 고객을 만나서 기술적인 토론을 하고 우리 제품과 서비스가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는 면에서는 절반의 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미국 본사로 들어와서 같은 업무를 한다는 것은 거의 영업사원의 경우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현장의 필드 엔지니어들을 지원해 주는 본사의 한국 담당 (혹은 아시아 담당) 필드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면 가능성이 있다. 제품과 서비스가 개발되는 본사에서 일하면서 최신 상황을 빨리 알아채서 지사에 있는 필드 엔지니어들에게 도움을 주고, 반대로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모아서 제품 개발에 반영되도록 하는 가교 구실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 업무에 필요한 수준의 영어가 되고, 지사에서 필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다른 동료들과 본사 개발팀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쌓았고 마침 회사에서도 그런 역할의 필요를 인정한다면 도전할 수 있는 업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 필드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했다. 출장을 다니며 막연히 본사 근무에 대한 희망은 있었지만, 그럴 만큼의 실력도 되지 않았고 이를 추진할 만큼 굳은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입사 후 8년 차에 영업으로 업무를 전환하게 되었다. 어차피 필드 엔지니어도 영업팀의 일원으로 고객과 협상하고, 비즈니스의 성과에 따라서 큰 폭으로 월급이 차이가 나는데, 이왕이면 전면에 나서서 주도적으로 일해보고 싶었다. 덕분에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미련 없이 접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고 있는데 미국 본사가 한국에 있는 벤처 기업을 합병하게 되면서 한국의 조직이 커지고 개발팀도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서울에 새로 생긴 개발 조직과 밀접하게 일하다가 갑자기 그 개발 조직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영업 조직에서 제품 개발 및 서비스 지원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서 몇 년 열심히 일하다가, 내 윗사람이 갑자기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생긴 공석을 채우고 결국은 글로벌 솔루션 개발 담당으로 미국으로 주재원 비자를 받아서 들어오게 되었다.


이런 경우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겠지만 아주 특이한 사례라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영업직의 경우 미국에 와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지만, 내 경우엔 영업으로 일하면서도 기술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기에,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제품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인정받아서 엔지니어링 팀을 관리하는 포지션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회사의 지사 중에는 직원 규모가 아주 작아서 영업사원과 필드 엔지니어들만 있는 조직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돼서 엔지니어링 팀이 있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개발팀 관리자의 위치가 되고 나면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한국에 있는 개발팀이건 유럽에 있는 개발팀이건 결국은 이를 총괄하는 어떤 포지션이 미국 본사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포지션이 열렸을 때, 물론 미국 현지에서 다른 사람을 뽑아서 채울 확률이 높겠지만, 해외 개발팀의 능력 있고 의지가 있는 매니저들 가운데 한 사람을 승진시켜서 본사로 데려올 수도 있을 것이다. 매니저 포지션이니 순수 개발자들 보다는 영어라던가 대인 관계를 더 중요하게 보겠지만, 비즈니스를 직접 담당하는 자리가 아니므로 반드시 미국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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