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킴 Feb 06. 2022

직급 체계

미국 회사에서의 직장생활

미국 회사의 직급 체계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대체로 비슷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 우선 일반 사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따른 직책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서 필드 엔지니어라면 FAE(Field Application Engineer)라고 부르게 될 것이고 프로젝트 매니저라면 PM(Project 혹은 Program Manager)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입을 구별하기 위해서 앞에 어쏘시에이트(Associate)를 붙여서, 예를 들어서 Associate Project Manager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흔한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업무가 그 사람의 직책이 되는 것인데 그걸 굳이 낮춰서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좀 더 경력이 쌓이고 성과를 인정받게 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데 이때는 앞에 시니어(Senior)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뭐가 됐던 입사했을 때 업무에 따라서 주어진 직책의 이름 앞에 시니어가 붙으면 그다음 단계의 직급을 의미한다. Senior Field Application Engineer, Senior Program Manager, 등등.


외부로 불리는 직급 말고 회사 내부에서 관리하는 직급 체계가 별도로 있는 회사가 많다. 어떤 회사는 매우 간단하게 매니저 트랙과 일반 트랙 두 가지로 나누어서 관리한다. 매니저 트랙은 원래 맡은 업무 외에 사람 관리 (people manager)를 하는 업무가 추가되는데, 자기가 원래 맡은 업무를 얼마나 잘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을 관리한다는 것은 좀 다른 형태의 업무가 된다. 이쪽으로 경로를 잡은 사람들은 예를 들어서 M 트랙으로 해서 M3, M4, M5 이런 식으로 올라간다. 신입으로 입사하자마자 매니저를 할 일은 없으니 이쪽은 완전 하위 직급은 없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사람이 중간부터 옮겨오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고 본인이 맡은 업무에만 백 퍼센트 집중하는 개인들(Individual Contributor)은 예를 들어서 E 트랙이라고 해서, E3, E4, E5 이런 식으로 올라가게 된다. 내부 직급 체계는 대게 외부에 알려진 타이틀보다는 훨씬 세분되어있어서, 경력이나 연봉 등에 따라서 내부 직급이 올라가도 외부 타이틀은 그대로인 경우도 많은 듯하다. 물론 내부 직급 체계와 외부 타이틀이 잘 매칭 되어있다면 내부 직급이 올라가면서 외부의 직급도 같이 올라가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서 회사 직급 체계상 시니어 매니저(Senior Manager)나 시니어 엔지니어(Senior Engineer)가 M5 ~ M6, 혹은 E5 ~ E6까지의 직급이었다면, 이 사람이 성과와 리더십을 인정받아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서 M7이나 E7이 되는데, 그러면 다음 단계의 타이틀인 디렉터(Director)가 된다. 디렉터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사라고 하는데, 한국의 직책과 미국의 직책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사부터 임원이라고 생각하듯이, 미국 회사에서도 디렉터라는 타이틀부터 임원들만 참석하는 회의에도 들어가기 시작하고, 조직에서 주어진 권한도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 매니저에서 디렉터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회사마다 다르게 주어진 승진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내 경우를 보자면, 시니어 매니저로의 승진은 개인적인 수준에서 경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반면, 디렉터로 승진할 때 보면 그것보다는 좀 더 높은 수준에서 회사의 성과에 대한 기여도, 그리고 임원으로서 어떤 업무를 맡기거나 혹은 조직을 끌어갈 수 있는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디렉터에서 시니어 디렉터(Senior Director)로의 승진은, 본인이 맡은 업무에서의 연속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맡은 분야의 업무에서 일상적인 결과 말고, 눈에 띄는 성과가 이루어졌는지, 조직을 맡았다면 그 조직의 성과와 성장 등을 평가해서 앞에 시니어 타이틀을 달아주게 된다.


그다음 단계는 VP(Vice President)가 되는데,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부사장이 되는데, 한국의 대기업 기준으로 대략 상무 정도의 직책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는 신입 사원에서 시작해서 상무로 승진하는 확률이 몇백 분의 일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외국 회사에서도 확률은 잘 모르겠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도 조그만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것과 대기업에서 임원 되는 것이 다르듯이 미국도 조그만 회사에서의 VP와 매우 잘 알려진 규모 있는 회사에서의 VP는 무게감이 다르다.


VP가 되면 대부분 어떤 부서의 수장이 된다. 예를 들어서 VP of Engineering이라고 하면 개발팀을 총괄하는 임원이고, VP of Sales라고 하면 영업팀의 수장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엔지니어링 팀의 내부에 개발 도구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면 그 부서의 장은 엔지니어링 디렉터(Director of Engineering 혹은 Senior Director of Engineering)처럼 디렉터 급이 되고, 그 디렉터들이 맡은 부서들을 총괄하는 사람이 VP of Engineering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까지 가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한 회사에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다. 영업을 총괄하는 사람도 한 사람이다. 그러니 디렉터들끼리 경쟁해서 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VP가 성과를 인정받아서 승진하면 Senior VP가 된다. 다른 직급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본 대부분은 Senior VP로 승진했다고 해서 다른 VP 들의 위로 올라가서 모든 업무를 총괄하지는 않는다. 원래 본인이 하던 업무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Senior 타이틀을 달게 되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VP들을 아래에 거느릴 수도 있고, 여러 VP들 가운데 선임으로서 좀 더 추가적인 업무를 맡을 수도 있다. 어떤 회사는 Senior VP 위에 Executive VP라고 하는 단계가 더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 기준으로 전무나 부사장 정도의 직급이 된다. VP들이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Executive VP에게 보고하고, 몇 명의 Executive VP들이 회사의 사장에게 보고하는 식으로 되어있는 곳도 있는데, 조직이 큰 곳에서 경영진의 역할이 좀 더 세분되어있는 곳에서 채택하는 방식이다.


다음은 프레지던트(President)인데, 여기서부터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선 직급상으로는 VP 들의 다음 단계라는 것은 확실하다. 맡는 업무로는 VP들 보다는 좀 더 확대된 업무를 맡게 된다. 예를 들어서 어떤 비즈니스 부분을 맡아서 총괄하는 것이다. 회사의 자동차 비즈니스라던가, 네트워크 산업 분야라던가, 이런 큰 비즈니스 한 덩어리를 맡은 사람도 President가 되고, 이런 경우에 큰 회사라면 President가 여러 명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그 회사의 전체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사람을 President라고도 한다. 반면에 CEO는 그 회사에 딱 한 사람 있는 최고 결정권자를 부르는 자리이다. 규모가 꽤 큰 회사도 CEO가 President를 겸직하는 회사가 있고, 뭐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CEO는 별도로 있고 부문별 President들이 CEO에게 보고하는 회사들도 있다.


어떤 회사에는 GM(General Manager)이라고 하는 타이틀도 있는데, 이는 직급이 아니고 맡은 업무를 나타내는 말이다. 한국에서 부장을 General Manager라고 번역하는 경우를 봤는데 오해를 살만한 직급의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GM이라고 하면 회사 비즈니스의 한 부문의 P&L (Profit & Loss), 즉 이익과 손해를 책임지는 포지션을 의미한다. GM이라는 타이틀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자기가 맡은 부문의 예산을 책임지고 집행하면서, 그에 따라서 매년 이익이 났는지 손해가 났는지를 책임지는 자리이므로, 일종의 꼬마 사장이다.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배정받은 예산, 그리고 이에 따른 P&L을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면 GM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GM이 직책이므로 그 뒤에 직급이 붙는데, 예를 들어서 GM & Senior VP라고 하면 직급상으로는 Senior VP이고 동시에 한 부문의 이익과 손해를 책임지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직원들을 늘리고 줄이고, 투자를 단행하고 인수 합병을 결정하는 등, 막대한 권한이 있지만 그에 따른 실적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자리이기도 하다.


C-suite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앞에 C(hief)라는 말이 공통으로 들어가는 포지션을 말하는데, 타이틀이면서 동시에 회사에서 그 부분의 최종 책임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CEO가 회사의 모든 경영진 가운데 Chief이므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최고 경영자라는 의미인 것처럼, 예를 들어서 CFO(Chief Financial Officer)는 그 회사의 숫자에 관련된 것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최고 재무 책임자라는 의미이다. CTO(Chief Technology Officer)는 회사의 기술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최고 기술 책임자이고, CMO(Chief Marketing Officer)는 최고 마케팅 책임자이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친숙한데, 어떤 회사들은 브랜드 책임자(Chief Brand Officer), 학습 책임자(Chief Learning Offer) 등등 새로운 타이틀을 만드는 곳들도 있다. 어떤 회사는 Head라는 말을 써서, 비즈니스 개발 담당(Head of Business Development), 자동차 비즈니스 담당(Head of Automotive) 이런 식으로 부르는데, 회사마다 주어진 권한이 다르기도 하고 많이 쓰이는 타이틀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경영진의 위에 있는 조직이 이사회(Board of Director)이다. 주식회사는 회사의 경영을 관리 감독하는 이사회를 구성하게 되어있고, 이 이사회의 구성원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디렉터(Director)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부장과 상무 사이의 임원을 이사라고 불러서, 이사회의 구성원과 헷갈리니까 이사회 회원을 등기 이사로 따로 부르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이사회 구성원은 Board Member라고 해서 VP 밑의 직급인 디렉터(Director)와 구분한다. 이사회에서 회사의 사장을 비롯한 집행 임원(Officer)들을 임명하니, 회사의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이사회에 보고하게 되고, 이 이사회의 회장을 체어맨(Chairman)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회사에는 이사회 회장이 따로 있는 일도 있고, 최고 경영 책임자가 이사회 회장을 겸직하는 예도 있다. 궁극적으로 이사회는 주주들에 의해서 임명되고, 누구나 어떤 회사의 주식을 소유해서 주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게 해서 주주에서 이사회, 그리고 경영진, 일반 사원 그리고 다시 주주로 이루어지는 순환 고리가 완성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전 06화 미국 본사의 업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