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에서의 직장생활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조직을 이루고, 그 조직에 권위의 계층 구조가 있으며 나누어야 할 이익이 있는 한, 그 권위와 이익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눌 수 없으므로 정치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한국 회사에서의 정치야, 같이 일하면서 간접적으로 본 정도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미국 회사도, 회사마다 문화가 다르므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이 사람과 일하는 것이므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역학 관계가 있고, 이에 따라서 이익을 보는 일도, 피해를 보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에도 당연히 정치가 있다. 첫 직장은 한국 지사에 공장도 있었고 직원도 오백 명이 넘어서 거의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이었다. 당연히 지사장부터 시작해서 전국에 있는 각 사무실 간의 복잡한 역학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에도 물론 과장, 차장, 부장이 되면서 서로 편을 가르고 누구는 누구 라인이니 하면서 자기 쪽 사람들을 챙겨주는 일들이 흔했다. 거기에 질린 것일까, 새로 옮긴 회사는 워낙 인원도 적었고 모시던 지사장님들도 인간미가 넘치는 분들이라서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조직에서 한 식구들처럼 즐겁게 잘 지낸 편이었다.
하지만 정치가 심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직위에 따른 권한이 있고, 나누어야 할 이익이 있는 한 정치가 없을 수는 없다. 영업 담당자는 필드 엔지니어들과 같이 고객을 방문하고 영업 활동을 하게 되어있다. 이때 어떤 필드 엔지니어와 같이 고객을 방문할 지부터, 영업과 필드 엔지니어 사이의 업무 배분이라던가, 고객이 어떤 요청을 했을 때 이를 받아들여서 지원해 줄 것인지, 아니면 이는 추가적인 비용을 받아야 하는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일까지, 업무의 여러 부분에 관해서 판단과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럴 때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각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의견의 대립이 일어나고, 또한 모든 일이 근무 규정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고 항상 애매한 부분이 있으므로 상급자의 결정이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업무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을 회사 내에서의 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직장에서의 정치꾼들과 정치질에 매우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아서인지, 나는 저런 식으로 직장 생활을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는 지사장님 혼자서 계실 때 첫 필드 엔지니어로 들어갔고, 한국 지사가 커져서 몇 년 만에 직원도 열몇 명으로 늘어나고, 내 위로도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커진 규모의 한국 지사에서 내 위치는 잘해봐야 중간 정도였다. 그런데 영업 쪽 사람들이나 다른 동료에게 정치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었다. 사내 정치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받고 있고, 지사장님도 그런 스타일이 아닐뿐더러, 다 합쳐야 스무 명도 안 되는 조직에서 나눌 이권도 별로 없는데도, 그냥 내가 지사장님과 친하게 잘 지내고, 아시아 담당 부사장, 혹은 다른 지사 사람들이나 미국 본사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고 짐작한다. 그런데 그런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고, 그에 따라서 어떤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뿐이다.
미국 본사에서 한국에 있는 직원 60명 규모의 조그만 벤처 회사를 합병하면서 한국 지사의 인원이 80명 가까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 영업 조직에서 모바일 솔루션 아키텍트라는 직함을 갖고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 내에 개발 조직이 생겼고, 덕분에 한국 고객들과 일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으니 당연히 매우 기뻤다. 그러면 여기서 만약에 내가 매우 정치적인 인간이었다면, 이 새로 생긴 조직에서 내 권위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뭔가 적극적인 활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일은 그쪽 조직에 요청해서 그쪽 사무실에도 내 자리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일주일에 몇 번은 그쪽으로 출근한 것이 다였다. 이를 정치적인 행동으로 볼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쪽에 출근해서 내 편을 만들고 영향력을 늘리는 의도는 아니었다. 워낙 내 업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니 일주일이 두 번 정도라도 그쪽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일 처리도 좀 더 효율적으로 하자는 순수한 의미였다.
그쪽 조직의 사장님이 주관하시는 실장급 주간 회의가 있었다. 나도 참석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매주 회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조직은 개발 조직이고 나는 영업팀을 지원하는 포지션에 있었으니, 내가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잘하려면 개발팀의 상황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그 창업 사장님이 조직을 떠나고 새로운 개발 센터장님이 왔을 때도 여전히 그쪽 조직과 영업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개발센터의 디렉터 포지션이 공석이 되었고, 내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욕심내서 뭔가 의도적인 작업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치밀하게 계획된 고도의 정치 공작이었다고 평가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내가 정치를 했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판단은 본인이 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는 걸까 궁금하기는 하다.
그렇게 해서, 입사 후 15년간 몸담았던 영업 조직을 떠나서 개발 조직의 한국 개발센터를 맡게 되었다. 조직을 맡고 처음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조직 개편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외국 회사의 한국 지사의 경우, 대개는 이미 만들어진 조직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찾고, 정해진 조직 구조에 속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 벤처 기업을 외국 회사가 합병했다는 약간 특수한 상황이고, 내가 한국 지사에서 오래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조직보다 좀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그 조직은 독일에 있는 제너럴 매니저의 밑에 있었는데 그 양반하고 내 관계가 꽤 괜찮았다는 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새로 맡은 조직을 보다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받아들여졌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도 정치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양반과 내가, 비록 속한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서로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신뢰가 쌓여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뒤엎어서 내 입맛에 맞게 바꾸고 장악력을 높이겠다거나 하는 얄팍한 의도는 없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쌓인 몇 가지 신념 가운데 하나가, 개별 직원의 커리어(Career) 패스 즉 경력 개발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직원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나와서 신나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각각의 직원이 어떤 마음을 갖고 회사에 다니고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며 어떻게 성장하고 싶어 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기존 조직은 선임 직원들 밑에 각자 열 명 가까운 후임 직원들이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회사도 그렇지만 다들 자기가 맡은 원래의 일도 많은데, 자기 밑에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일일이 챙겨주는 일이 쉽지 않다. 한 매니저 밑에 최대 4명까지만 직원을 두고 보다 밀착해서 부하 직원을 관리한다는 대원칙을 갖고 새로 조직도를 만들다 보니, 기존의 간단한 조직에서 몇 단계의 보고 체계가 생기는 약간 복잡한 조직이 되었다.
보고 체계가 몇 단계가 되면서 좀 복잡해졌지만 매월 전 직원 타운홀(Townhall) 미팅을 통해서 회사의 상황이나 한국 조직의 위상 등 굵직한 사안들을 직접 전해주는 것으로 좀 더 복잡해진 조직 체계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연말에 있는 인사 평가나 승진 심사 등에서 서로 자기가 맡은 작은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회의를 여러 번 거쳐야 했지만, 매니저들이 관리하는 직원의 숫자가 세 명에서 네 명 정도가 되니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개별 직원의 상황을 상급자들이 더 잘 알게 되고, 당연히 그 입장을 매니저 처지에서 대변하다 보니 생기는 상황이라서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원래 한국 벤처 회사 시절부터 다니던 사람들도 있었고 미국 회사에 합병한 후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으니, 그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파벌 싸움도 있었지만, 특정 인물을 부당한 이유로 편애한 적은 없다. 조직의 성과에 이바지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큰 사람들에게 승진과 연봉 인상을 지원했고, 제한된 자원이 분배되니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서 섭섭한 마음이 들 수는 있겠지만, 정해진 원칙에서 최대한 공평하게 인사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5년 정도를 한국 개발팀을 맡아서 나름 성과도 내고, 본사와의 관계도 탄탄하게 다지고 있는데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다. 그 사이에 본사에서도 조직의 변화가 있어서 유럽에서 맡고 있던 비즈니스 총괄 포지션을 미국 쪽 임원이 맡게 되었다. 나는 그 제너럴 매니저 아래 새로 채용된 미국 시니어 디렉터에게 보고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새로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문제를 일으켜서 갑자기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 포지션을 새로 뽑는 대신에 그 사람이 맡고 있던 업무를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에 있던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이 나눠서 맡는 식으로 분배가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있던 솔루션 개발 조직을 내가 추가로 담당하면서 글로벌 개발팀을 관리하게 되었고, 덕분에 미국 본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원래 우리 비즈니스 유닛을 맡고 있던 제너럴 매니저는 독일 사람으로 나와는 필드 엔지니어 시절부터 서로 죽이 잘 맞아서 술도 밤늦도록 가끔 마시고, 제품의 기술적인 방향에 대해서 침을 튀겨가며 토론도 하던 사이였다. 반면에 새로 제너럴 매니저가 된 사람은 처음에는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포지션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이 비즈니스가 너무 유럽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미국 본사에서 견제용 카드로 채용한 임원이라고 생각해서, 나를 비롯한 기존의 인사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인물이었다.
독일 임원이 원래부터 입지를 탄탄하게 지니고 있던 박힌 돌이라면 미국 임원은 미국 본사의 정치적인 지원을 받는 굴러온 돌이었다. 독일 임원이,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제너럴 매니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주 자세한 기술적인 구현까지 관여하기를 좋아했다면 새로 온 미국 임원은 매우 화려한 언변과 업계 인맥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었다. 독일 임원은 본인이 키운 유럽팀의 기술력에 큰 자부심을 가진 백인이었고, 미국 임원은 본인이 믿고 있는 시장의 흐름에 따른 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서 비즈니스의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야심에 찬 흑인이었다. 전임과 후임 제너럴 매니저가 이렇게 성향이 다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말술이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술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빠지는 편은 아니고, 회사와 비즈니스에 관한 대화라면 밤새도록이라도 할 이야기는 많았다. 처음에 한국 개발팀을 맡고 독일 임원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건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고, 그 인사 조처도 독일 임원의 동의하에 미국 본사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반면에 내가 글로벌 개발팀을 맡게 되고 미국 사무실로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 미국 임원의 결정이었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정치를 해서 그 포지션을 따낸 것은 아니다. 얼떨결에 제안을 받은 것에 더 가깝다. 다만 한국에서 글로벌 팀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미국으로 들어오겠다고 한 것은 내 의지였고, 비용이 꽤 들고 절차가 복잡함에도 이를 흔쾌히 수락한 것은 미국 임원이었다.
독일의 제너럴 매니저가 회사를 떠나고, 굴러온 돌이던 미국 임원이 승진해서 비즈니스를 총괄하게 되는 과정이 이 양반 입사한 지 2년 이내에 벌어졌다. 그 사이에 한국에 있던 내가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해 봤자 얼마나 했겠는가. 다만 개발팀을 맡고 있지만 비즈니스 전략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대화해 왔고, 원래도 영업 출신이라서 고객과의 협상이나 영업 지원에 적극적이었던 것이 그 양반의 눈에 들지 않았을까 짐작을 할 뿐이다.
원래 맡고 있던 한국 팀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오는 과정에서도 이런저런 사연들이 많았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차라리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을 불러들여서 일을 맡기는 것이 내부에서 지지고 볶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을 승진시켜서 일을 맡기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폴란드의 개발팀은 그쪽에 원래 있던 매니저 말고, 나랑 같이 일하던 일본인 매니저에게 맡겼었다.
이 결정에 대해서 내 윗사람이 몇 번이고 정말 그렇게 하고 싶냐고 물어본 것이 기억난다. 내 고집대로 진행이 되어서 그렇게 한동안 팀을 운영했는데 결국은 다시 원래 폴란드의 개발팀을 맡던 현지 매니저에게 권한을 돌려주게 되었다. 지역적으로도 너무 떨어져 있고 내가 일을 맡긴 일본인 양반의 조직 장악도 전혀 되지 않아서 일이 잘 진행이 되지 않는데 그 인사조치를 계속 고집할 수는 없었다. 루마니아의 조직은, 원래도 수백 명이 넘는 개발팀이 있는데 그중에 일부를 맡은 것이고, 그 루마니아 사이트를 총괄하던 임원과의 사이도 있고 해서 처음부터 그쪽 매니저에게 일을 맡겼는데, 이 친구는 영 일하는 태도도 미덥지 않고 보고도 잘 안되고 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나를 보스로 믿고 따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원래 약간 그런 아웃사이더 성향이 좀 있기도 했고, 또 한국 개발팀 출신인 내가 한국 팀만 편애한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도 같다. 실제로 중요한 일을 한국에 많이 맡기기도 했는데, 내가 그쪽 출신이어서가 아니고 실제로 한국 팀이 일을 더 잘해서 그런 것이다. 물론 그건 내 입장이고, 당하는 루마니아팀 매니저 처지에서는 나를 매우 정치적인 인물로 보고 경계를 했을 수도 있다.
내가 맡은 조직 말고도 같이 일하는 조직과의 관계도 쉬운 것이 없었다. 특히 나랑 같은 미국 사무실의 바로 옆방에서 같이 일하게 된 인도인 동료와의 관계가 문제였다. 나는 한국에서 이쪽 사무실로 옮겨왔고, 이 친구는 거의 같은 시기에 실리콘 밸리에 있는 본사 캠퍼스에서 일하다가 샌디에이고 사무실로 발령받아서 온 친구이다. 우리 비즈니스 유닛의 제너럴 매니저 밑에서 나는 솔루션 개발을 맡고 이 친구는 비즈니스 전략을 맡고 있으니 안방마님과 바깥양반 같은 사이였다. 하지만 이 친구는 본사에서 몇 년 전부터 주요 임원 후보로 공을 들여서 키우던 난초 같은 직원이었고, 나는 한국 지사의 필드 엔지니어로 입사해서 20년 만에 미국으로 들어온 잡초 같은 직원이었다. 옷도 항상 명품 정장으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차도 멋진 재규어 컨버터블을 몰고 다니던, MIT 경영 대학원 출신의 금수저 시민권자와 비교하면, 나는 청바지에 회사 로고가 박힌 셔츠를 즐겨 입고, 중고로 산 렉서스 SUV를 몰고 다니던 한국 출신의 흙수저 주재원이었으니, 참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파트너였다고 하겠다.
처음 만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예의 바르게 본인을 소개하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악수하였다. 원래 나는 점심을 잘 먹지 않는데, 이 친구랑 친해지기 위해서 같이 점심시간에 사무실에 있을 때면 사무실 근처로 둘이, 혹은 다른 직원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업무 이야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제품 전략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MBA 출신으로 원래 전공이 전략 컨설팅이므로 큰 그림은 잘 그리지만 실제로 제품 하나하나의 기술적인 특징이나 우리 비즈니스 자체에 대해서는 이제 막 배워가는 중이었다. 본사에서 이 친구를 우리 자동차 비즈니스 유닛에 꽂아준 것도 다양한 업무를 익히고 본사의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한 준비 무대 혹은 시험대 정도의 성격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필드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 자리까지 왔으니, 비록 맡은 업무는 개발팀 관리였지만 시장 전략이나 영업 지원에 대해서는 그 친구보다 훨씬 많이 알았다고 스스로 믿었고, 그래서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싸움이나 그런 것은 아니었고 순수하게 우리 비즈니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친구 처지에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쁠 만했다. 비즈니스 전략을 짜는 것이 자기의 역할인데 솔루션 개발팀 수장이 자꾸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니, 본인 밥그릇에 숟가락질한다고 여겼을 것도 이해가 간다.
이런 것도 인간적인 관계가 좋고 서로 충분한 신뢰가 쌓였다면 잘 풀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에서 맡은 역할과 직책에 따라서 주어진 업무가 있겠지만, 모든 일이 흑과 백으로 분명히 정해져 있지 않고, 명시적인 업무 외에 본인의 관심사나 전문성에 따라서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더욱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이 인도 친구와 나 사이에는 우선 그런 신뢰가 쌓일 겨를이 없었고, 특히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이 친구가 하기 시작하면서 더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반골 기질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누군가 직책이나 권위의 힘을 이용해서 나를 찍어 누르려고 하면 더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친구가 점점 업무상의 역할 분담을 언급하면서 나보고 더는 나서서 비즈니스 결정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고, 윗선에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친구 밑에서 일하는 인도인 직원 하나가 내 밑의 한국 개발팀과 사사건건 싸우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제품 전략을 맡고 있으니 개발팀은 찍소리 하지 말고 자기가 시키는 일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 쪽 개발팀 입장에서는 본사의 프로덕트 매니저가 말도 안 되는 개발을 시키고 있으니 반발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원래 어떤 의도를 갖고 정치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정정당당해 보이지 않고 치사한 권모술수를 쓰는 것 같아서 나 스스로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한동안 이 일을 겪으면서, 크게는 내가 몸담은 비즈니스 유닛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작게는 한국의 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입장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할까 전략을 짜고, 저쪽 친구들 모르게 우리끼리 쑥덕쑥덕 개발도 하고, 저쪽 친구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미팅에서 갑자기 의미 있는 성과를 터트려서 제너럴 매니저의 관심과 호의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고 하는 등, 의도적인 정치질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리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성숙한 방식으로 갈등을 처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작업의 결과로 한국 개발팀과 문제를 일으켰던 인도인 제품 매니저가 제일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옆 사무실에 있던 난초 친구도 씁쓸한 인사말을 남기면서 방을 빼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 있던 제품 개발팀을 맡고 있던 친구도 더 좋은 자리를 찾아서 회사를 떠났고, 결국은 나도 얼마 후에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더 친하게 일을 할 수밖에 없고, 그 파벌이 더 큰 권력과 이익을 얻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을 사내 정치라고 한다면 이는 회사 생활의 일부분이다. 내가 아무리 사내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정치판에 휩쓸리는 것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도 되는 신입 사원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 권한이 주어지고 독립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매니저의 입장이 되고, 특히나 의견이 갈리는 복잡한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이, 중립을 지키고 교통정리를 해 주지 않는다면 리더의 자격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정치적인 판단이 끼게 마련이다. 다만, 그 정치의 의도와 결과가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미국에 발령받아서 오자마자 본의 아니게 휘말려 든 그 일이 완벽히 정리되는데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2년 동안, 우리 비즈니스 유닛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업무를 맡고 있던 리더들이 서로 자기 조직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협업이 잘되지 않았다. 그 투쟁의 결과로 저쪽 담당자와 그 윗사람이 회사를 떠났으니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이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소모적인 정쟁의 결과로 제품 개발이 지연되었고 본사 입장에서도 문제가 많은 부서로 찍히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원했던 비즈니스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고, 결국은 관련된 모든 사람이 그 일이 정리되고 일 년 이내에 회사를 떠나게 되었으니 이긴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파괴적인 정치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