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가족생활
한국 내에서도 이사하고 직장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사를 오고 직장을 옮기는 것은 더 큰 일이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주재원 형식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오는 것이라면, 조건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회사에서 이주 (Relocation) 비용을 지원받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 나를 미국으로 보내는데 정확하게 얼마의 비용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짐작건대 당시 내가 받던 연봉의 거의 절반 정도의 금액이 들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우선 한국에 있을 때 미국 대사관을 통해서 가족 전체의 주재원 비자를 받게 된다. 매니저 신분으로 미국에 오는 것이라서 나는 L1 비자, 가족은 L2 비자를 받게 되었다. 가족들 서류야 뭐 그렇다 치고, 주재원으로 한국에서 매니저를 미국으로 불러들여서 일을 시킬 때는 이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 내가 한국에서 맡았던 업무와 미국에 들어가서 맡게 될 업무에 관한 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왜 이 사람을 미국에서 뽑지 않고 한국에서 데려와야 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들을 인사부에서 준비해 줘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자료는 내가 맡아서 운영하는 부서 직원들의 학력과 연봉에 대한 자료였다. 고학력과 고연봉 직원들을 관리하는 자리라는 것을 증명해야 L1 비자의 자격이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조직도라던가 우리 비즈니스에 대한 설명 자료도 수십 페이지나 준비해서 제출했는데 이걸 정말 다 검토하고 비자를 내주는지 궁금했지만, 처리를 맡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요하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미국에 오기 몇 달 전에 미국에서 살 집이나 아이 학교 등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번의 미국 방문을 위한 비용 지원도 있다. 가족 전체의 비행기 표와 숙박, 렌터카 등 모든 비용을 지원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이사 비용도 지원해 주는데, 집안 살림을 옮기는 것이다 보니, 당장 필요한 것은 항공 화물로, 좀 기다렸다 받아도 되는 것은 선박 편으로 나누어서 보냈었다. 한국에서의 살림을 다 들고 오지 않아서 아마 대략 반 컨테이너 정도는 선박으로 보냈고, 당장 필요한 옷가지와 가전제품 등은 항공 화물로 우리 미국 도착한 후 며칠 내로 받았는데 이 비용도 상당했을 것이다.
당연히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표와, 미국에 와서 집을 구하는 두 달간 살 임시 아파트와 차 렌트비도 지원받았다. 차량 렌트비는 그렇다고 쳐도 아파트 생활비가 하루에 180불, 한 달에 5천 불이 넘었었다. 워낙 회사와 계약해서 가구가 다 갖춰진 아파트를 임시로 임대하는 형식이라 비싸게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달랑 두 달을 그 아파트에서 지내는데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낸 것이다. 그 외에도 미국 정착할 때 우리가 잘 모르는 관공서 업무라던가 여러 가지 일 처리를 도와주는 정착 도우미,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문화 교육 세션, 심지어 시간당 백 불 정도 하는 집사람 영어 교육까지 지원받았으니, 이렇게 저렇게 다 합쳐서 큰돈이 되는 것이다. 회사의 지원이 아니고 본인의 비용으로 오는 경우라면 이런 부대 비용은 필요 없을 것이다. 좀 고생스러울지는 몰라도 인터넷 찾아보면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고, 영어 교육도 집에서 가까운 커뮤니티 칼리지의 ESL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주어진 두 달가량의 적응 기간에 집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미국은 전세가 없어서 집을 사거나 월세를 살게 된다.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 처음으로 정착하게 되었으니 여러 가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바로 집을 산다는 것은 주변에서도 추천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도 원하지 않았다. 월셋집을 여러 군데 알아보았는데, 우리가 원했던 조건은 아이의 학교를 걸어서 등하교했으면 했고, 사무실에서도 너무 멀지 않았으면 했었다. 샌디에이고는 미국에서도 공립학교의 평점이 매우 좋은 동네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이렇게 학군이 좋은 곳은 당연히 월세도 높다. 우리 사무실이 태평양 해안에서 대략 2마일(3킬로미터) 정도 내륙으로 들어와 있는 곳에 있었으니, 거기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집을 구하려면 역시 집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해변으로 놀러 가는 게 가까운 것이랑은 상관이 없다. 캘리포니아에서 해변이 가까울수록 집값이 비싼 것은 날씨가 선선해서 그렇다. 이곳은 마이크로 웨더(Weather)라고 해서, 해변을 기준으로 1마일씩 들어갈 때마다 온도가 조금씩 올라간다. 내륙으로 20분만 차를 타고 들어가도 온도가 5도에서 10도까지도 차이가 난다. 남가주가 사막 기후라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서 해변 지역이 23도로 쾌적한 날씨라면 차를 타고 10분에서 15분만 내륙으로 들어가도 28도 정도로 올라가고 거기서 다시 그만큼 더 들어가면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되는 것이다. 집값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서 방 3개에 욕실 2.5개가 있는 집을 월세 3,000불에 살게 되었다. 욕실이 2.5개인 이유는, 안방과 아이 방에는 욕조와 샤워가 있는 정식 화장실이라서 각각 한 개로 쳐 주는데, 아래층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는 샤워가 없어서 0.5개로 쳐서 그렇다. 처음에 와서 방 2개짜리 아파트에서 살아봤는데, 안방과 아이 방 말고 서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맡은 업무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직원들이 반드시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일이 있으면 일찍 퇴근해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남은 업무를 다시 집에서 보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안방 침대에서 일하거나 아이 방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안방과 아이 방 말고, 집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방이 따로 하나 있어야 하는데, 이건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도 이랬었고,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후에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 되었다.
다른 비용들과 달리 월세는 한국에서 살던 것에 비해서 전혀 새로운 지출이 된다. 물론 한국에서도 전세를 살거나 은행에서 집값을 대출받았다면 이자 비용이 들지만, 한 달에 몇십만 원 수준이었을 것이 미국에 와서 세 식구 사는데 필요한 월세 비용만 3백만 원이 넘게 들어가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큰 비용은 차량이다. 주변의 충고대로 SUV를 3만 불 주고 중고로 샀다. 미국은 워낙 인건비가 비싸서, 웬만한 가전제품들은 배달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매장에서 가져온다. 그리고 집에 문제가 생겨서 고치거나 할 때도, 배관이나 전기 쪽의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대부분 스스로 재료를 사 와서 집을 수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미국 사람들이 유난히 픽업트럭이나 SUV를 좋아하는 것이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어서 그렇다. 3만 불을 주고 중고로 산 SUV를 4년 반 동안 잘 타고 1만 6천 불에 팔았으니, 총 1만 4천 불의 비용이 든 건데, 대략 1년에 3천 불 정도가 들어간 셈이다. 현찰을 한꺼번에 주고 사서 이 정도인데, 만약에 할부를 했으면 월 300불 정도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미국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리바리한 상황에서도 나름 머리를 잘 굴려서 싸게 4년 넘게 잘 타고 다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차를 팔고 미국 와서 처음으로 새 차를 사면서 제대로 한번 비용을 계산하게 되었다. 차를 사는 게 나을지, 리스를 하는 게 나을지, 각각의 경우 처음에 얼마를 일시불 (다운 페이먼트)로 내고 다달이 할부는 아는 게 나을지, 이자율은 각각 얼마나 되는지 등을 자세히 따져보았다. 월 300불이면 대략 기아 소렌토 정도의 새 차를 리스로 3년간 탈 수 있는 비용이다. 물론 초기 비용도 있고, 리스 기간에 주행 거리에 대한 제한도 있고 하지만, 그런 것을 따져봐도, 4년 반 동안 중고차 타고 다니느니 비슷한 비용으로 새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었다. 그냥 대략 느낌으로, 중고차를 일시불로 사서 타는 선택이 비용이 제일 적게 든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꼼꼼하게 비용과 조건을 따져보고 결정해야 했다. 물론 감가상각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예를 들어서 만 오천 불 정도의 저렴한 중고차를 사서 오랫동안 타고 다닌다면 계산이 달라진다.
차 한 대는 한국에서 사도 할부로 대략 어느 정도의 비용이 매월 들어간다고 보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생각지 못한 추가 비용이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집에 성인 한 사람당 차가 한 대씩 필요하다. 대중교통이 아주 잘 발달한 대도시에 살거나, 도보 혹은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살지 않는다면,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차 한 대, 부인이 장보기나 기타 여러 가지 용도로 차 한 대 이렇게 두 대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동네에는 버스든 뭐든 대중교통이 전혀 없다. 시내로 나가면 버스가 다니기는 하는데 가뭄에 콩 나듯이 다니는 것 같다. 우버를 타면 차 없이도 다닐 수 있긴 하겠지만 일상적으로 이동하는 20킬로미터 정도를 가는데도 시간에 따라서 30불 이상씩 들기도 하니, 비용이 감당되지 않는다. 여기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면허를 딸 수 있는데, 그전까지는 부모들이 태워서 학교에 다니지만, 혹시라도 면허를 따고 본인이 직접 등하교를 하도록 해 준다면 아이 차도 필요할 것이다.
차도 차지만 보험료도 만만치 않다. 지금은 좀 저렴한 인터넷 보험사로 갈아타서 그나마 6개월에 550불씩 내지만, 예전에는 중고차 살 때 소개받은 한국 사람 통해서 일반 자동차 보험을 몇 년간 가입했었다. 6개월에 대략 800불 정도였으니 1년에, 우리 부부 두 사람과 차 2대 보험으로 거의 2백만 원씩 낸 셈이다. 한국에서 무사고 할인으로 1년에 50만 원 정도 냈던 것에 비해서 4배의 비용이 든 것이다. 만약에 거기에 아들 녀석까지 면허를 따서 보험에 추가했으면 추가로 백만 원 정도는 더 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들 녀석은 고등학교에 가서도 겁이 많아서, 혹은 귀찮아서 면허 따기를 주저했고, 학교도 멀지 않아서 걸어서 갈만한 거리였기에 그 비용은 절약할 수 있었다.
인터넷 비용도, 사는 지역과 상관없이 여러 가지 통신사를 선택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동네에 따라서 인터넷의 선택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쓰고 있는 200 Mbps 라인을 월 75불 정도 내고 있으니 한 달에 8만 원이 넘는 것이다. 처음 1년은 50불이었나 하는 프로모션으로 싸게 썼는데 그 기간 지나면 용서 없이 올라가고, 다른 곳으로 갈아탈 옵션도 별로 없어서 그냥 쓰게 된다. 휴대전화도 버라이즌의 가족 플랜으로 거의 100불 가까지 내고 몇 년 쓰다가, 구글 서비스로 바꿔서 좀 절약하긴 하는데 그것도 얼추 매월 70불 이상 들어간다. 여기도 아주 저렴한 10불 초반대의 알뜰폰 같은 사업자가 있긴 한데, 데이터도 제한이 있고, 믿기 어렵지만, 전화도 잘 안 터지는 지역이 많아서 불편할 때가 많다. 휴대전화의 신호가 약해서 전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사실 메이저 통신사도 그런 경우가 많아서 또 다른 문화적인 충격을 받게 된다.
매년 내는 소득세는 연방세 (Federal Tax)와 주세 (State Tax)로 나뉜다. 연방 세는 미국 어디에 살든 똑같이 미국 정부에 내야 하는 세금이다. 계속 바뀌기는 하지만, 결혼한 부부의 기준으로 8만 불에서 17만 불까지의 소득 구간에 대해서 22%, 17만 불에서 33만 불 정도까지의 구간에서 24% 정도이다. 혹시 결혼하지 않아서 혼자서 소득세를 신고한다면 8만 5천 불에서 16만 불 정도까지 구간에서 24%, 16만 불에서 21만 불 정도까지 구간에서 32%의 세금을 내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과 비교해서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주세를 또 내야 한다. 캘리포니아를 보면 기혼자는 11만 불에서 60만 불까지의 소득 구간에서 9.3%의 세금을 내야 한다. 싱글인 경우는 대략 6만 불에서 30만 불까지의 구간에서 9.3%의 세금이 부과된다. 캘리포니아가 날씨 때문에 살기가 좋지만 반면에 주세가 매우 높아서 일명 날씨 세라 고도 부른다. 반면에 텍사스 같은 곳은 주에서 따로 소득세를 받지 않고 집값도 훨씬 싸므로, 소득 대비 생활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회사에서 주재원으로 미국에 오게 된다면 아마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을 테지만 혹시 다른 방법으로 미국에 와서 일하게 된다면 어떤 주에서 사느냐를 결정하는데 이 주별로 다른 세금과 생활비가 큰 결정 요인이 된다.
흔히들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면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30% 정도를 더 올려 받아야 비슷하게 생활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그 이상의 연봉 인상이 있었지만 느껴지는 생활 수준은 한국에서보다 못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생활의 수준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 집사람의 평가가 가장 믿을 수 있다고 보면 한국에서 살던 때에 비해서 수준이 확실히 떨어졌다. 따라서 혹시 미국에서 일하게 되고, 연봉 재협상을 하게 된다면, 최대한 자세하게 여러 가지 비용을 따져보고 어느 정도의 생활이 보장되는 수준의 월급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반면에, 한국 직원을 미국으로 발령 내는데 회사에서 드는 비용, 그리고 단순히 어떤 집에서 어떤 가구를 들여놓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느냐로 평가하는 표면적인 생활 수준 외의 미국 생활이 주는 장점과 의미가 있을 것이므로, 무턱대고 돈으로만 따질 일도 아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