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가족생활
한 사람에게 들은 것이 아니고 거의 20년에 걸쳐서 여러 사람한테 들은 말이 있다.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고 미국은 심심한 천국이라는 것이다. 미국 회사에 다니면서 만난 한국의 교포분들에게 자주 들은 이야기인데,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출장을 다닐 때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출장은 혼자 다닌 적이 거의 없고 직장 동료들이나 고객과 같이 다닌 경우가 대부분인데,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저녁이 되면 식사도 같이하고 술도 마시고 하면서 즐겁게 지내다가 오게 된다. 주말이면 아웃렛으로 쇼핑하러 다니면서 한국 돌아가서 집사람이나 아이 줄 선물 사거나 같이 몰려다니면서 골프를 치거나, 어디 유명한 관광 명소를 가거나 하여튼 짧은 미국 방문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뭐든 하게 된다.
한국 회사의 미국 주재원들도 비슷하다고 들었다. 주변에 보니까 대기업 주재원들은 미국 발령받으면 3년이나 4년 정도 머물다 가는 것 같다. 그 기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주말이나 휴가 때마다 미국 전역을 여행을 다니고 한국에서 해 보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즐기러 다닌다고 한다. 교환 교수나 안식년, 단기 어학연수 등으로 미국에 머무는 기간이 일 년 정도인 사람들은 물론 더 열심히 매주 매주를 뭔가 이벤트로 채워서, 짧은 체류 기간에 더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가족은 주재원으로 오기는 했지만, 상황이 좀 달랐다. 한국에 있는 회사의 미국 주재원으로 오는 경우라면 정해진 시간 안에 다시 돌아가야 할 한국 본사가 있지만 나는 한국 지사에서 미국 본사로 들어온 경우라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주재원 비자는 물론 기간 제한이 있어서 우리 가족의 경우엔 5년짜리 비자를 받고 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서 몇 년 더 연장이 가능한 비자이고, 더구나 우리는 미국 오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바람에 그걸 핑계로 회사 후원으로 영주권 신청이 들어갔으니 급한 것이 없었다.
집사람은 여행을 좋아하지만 나하고 아들 녀석 둘 다 완전 집돌이 스타일이라서 우리 세 식구만 어디 여행을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친지들이 방문하면 그걸 핑계로 안 가본 관광지를 가 보곤 했다. 그것도 어디 대단한 곳을 간 것은 아니고 미국 서부의 관광지를 차를 타고 다니는 정도였다. 남들은 미국 오자마자 다 가보는 요세미티나 그랜드 캐니언을 우리는 한국에서 가족들이나 와야 큰맘 먹고 여행을 가는 것이다. 그렇게 멀리 찾아볼 것도 없다. 5년 전에 샌디에이고로 미국에 이민을 왔는데 샌디에이고의 유명한 관광지도 한국에서 손님이 와야 한 번씩 가볼 뿐이고, 씨월드나 사파리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안 가봤다. 참으로 게으른 가족이다.
최근에 아들 녀석이 입대하느라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 허전해서 둘이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에서 오레곤, 워싱턴, 아이다호 그리고 네바다주를 여름휴가 때 다녀왔다. 별 기대 없이 갔고, 운전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긴 했지만 즐겁게 지냈다. 미국이 정말 크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처음에 미국 와서 5시간도 안 걸리는 라스베이거스를 비행기를 타고 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 여행에서는 하루에 10시간 이하로 운전하면 가뿐하고 14시간 이상 운전하면 좀 피곤한 정도였다. 그냥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다음번에 쉴 때까지 몇 시간을 운전하면서 집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부 사이의 대화는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이 쉰이 넘어서 느낀 여행이었다.
한국에서도 골프를 즐겨했다. 처음에는 영업하는 데 필요하니까 시작했는데 점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나중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후배들이나 동창 모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 오기 몇 년 전에 집사람도 시작했다. 뭔가를 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주말마다 혼자 골프를 하니까 미안했던 것이 가장 컸다. 우선 동네 연습장에서 개인지도를 한동안 꾸준히 받게 했다. 그러다가 평소에 시간이 나면 스크린 골프도 같이 다니기 시작했고, 가끔 동창생들 모임에 구멍이 나면 자리를 메우러 같이 가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나 혼자만 다녀도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 집사람하고 그렇게 자주 필드를 나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 부부가 둘 다 골프를 하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부가 골프를 한다고 해도, 같이 라운딩 하러 다니는 경우는 더더욱 잘 못 봤다. 비용도 비용이고, 골프가 사교 모임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남자들끼리 주로 모임을 하게 된다.
미국에 처음 와서는 주말에 장을 보러 가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더욱 무료했다. 집 근처의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을 둘이서 다녔다. 골프는 네 명까지 같이 한 조에서 플레이하니까, 매번 골프장에 갈 때마다 한 사람 혹은 다른 커플이 조인해서 4시간 정도를 같이 필드에서 운동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인들 커플 골프 모임을 알게 되었다. 10쌍 정도의 부부가 일요일마다 모여서 라운딩도 하고 저녁도 먹는 친목 모임이었다. 거기서 알게 된 부부 몇 쌍과 더 친해져서, 토요일 모임도 생겼다. 역시 부부 동반으로 라운딩 하고, 돌아가면서 집에 가서 저녁을 먹거나 식당에서 모임을 하거나 했다. 그렇게 하면서 이런저런 골프 모임에 들어가고 나오고 했지만, 주말은 항상 골프장에서 보낸다.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플레이할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갈 때도 한차로 가고, 끝나면 같이 저녁 먹고, 올 때도 한차로 온다.
부부 동반 골프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노래를 한 곡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마침 우리 지역 합창단의 보컬 코치님이 계셨는데, 내 노래를 들어보니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합창단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부부 동반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니, 집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집사람도 물귀신처럼 끌어들였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모여서 연습하는데 당연히 같이 다녔다. 집사람은 소프라노, 나는 베이스였다. 집사람은 피아노도 치고 원래 학교에 다닐 때 합창단에서 활동해서 악보도 잘 본다. 나는 태진과 금영이라는 대한민국 음악계의 양대 첨단 기업의 도움으로 혼자 좋은 맛에 부르는 노래라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악보를 잘 못 보는 나를 위해서 내가 맡은 부분을 피아노로 쳐서 녹음해 주는 등 집사람이 많이 도와주었다. 한 해에 두 번 정도 공연하는데, 긴장해서 많이 틀리기도 하지만 참 보람이 있었다. 집사람은 예쁜 드레스, 나는 멋진 턱시도를 입고, 공연 후 꽃다발을 양손에 들고 뒤풀이 자리에서 사람들하고 인사를 나누면 그렇게 뿌듯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합창단 활동이 중단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미국에 와서 우리 둘이서 이렇게 맨날 붙어 다니니, 아들 녀석한테 좀 미안할 때가 있다. 둘이서 밖에서 식사하다가 맛있는 메뉴가 있으면 집에 갈 때 싸 가거나, 혹은 여러 번 주말에 우리끼리만 계속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면, 모임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때도 있었다. 어디 다니기를 싫어하는 집돌이 아들 녀석이지만 먹는 것은 참 좋아한다. 특히 전생에 이태리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파스타나 피자를 좋아한다. 포장으로 자주 시켜 먹기도 하지만 역시 식당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집 근처에 작은 이탈리아 식당을 자주 갔었다. 비싼 집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에 워낙 집에서 가까워서 가끔 갔었는데, 한번 가면 한 시간 이상 세 식구가 파스타에, 피자 그리고 나는 와인 한잔하면서 수다를 떨다가 오곤 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한동안 외식을 못 하다가, 백신을 맞고 아들 녀석이 한국 들어가기 전에도,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의 맛있는 식당을 다니면서, 가벼운 브런치를 먹기도 했고, 맘먹고 비싼 스테이크를 먹기도 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웬만한 식당을 가면 아무리 짧아도 30분 이상, 보통은 한 시간 정도는 걸려야 밥을 다 먹고 비용 계산까지 하고 나온다. 그동안 때로는 가벼운 주제로, 때로는 심각한 주제로 세 식구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다.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가족이 생활의 중심이 된 것이다. 특히, 우리는 뭐를 하더라도 부부가 같이 다녔다. 미국에서 오토바이를 좀 타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건 예외였다. 집사람이 워낙 겁도 많고 해서 절대 안 탄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몇 년 후에 얼마 못 타고 팔게 되었다. 그 외에는, 골프도 같이했고 합창도 같이했고,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같이 다니면서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꽤 들어서 남자가 은퇴하게 되면 그때부터 부부가 취미 생활도 같이 하고 그런다고 하는데, 미국은 결혼한 후에는, 뭐를 하던 가족이 함께하고 모임도 당연히 부부가 같이하는 모임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에 와서 나 혼자만 뭐를 해 본 게, 오토바이 말고는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 같이 보내는 부부 생활도 낭만이 있겠지만, 미국에 와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사람과 같이한 이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