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문화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가끔 통화를 할 때면 미국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다른 것이야 그럭저럭 지내는데 영어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 이 친구들 반응이 한결같다. 영어를 잘해서 미국 본사까지 들어간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자기들은 뭐가 되냐는 것이다. 엄살을 피우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영어를 잘 못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한국에 비해서 좀 더 일상적인 상황에서 영어를 늘 쓰다 보니 잘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영어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미국의 문화가 낯설어서 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더 잘 안 들리는 때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만 쭉 살다가 나이 쉰이 다 돼서 미국에 오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에 놀러 왔다거나 혹은 내가 돈을 쓰는 고객의 입장이라면 영어가 좀 불편해도 괜찮다. 유창하지 않은 영어를 쓰는 사람도 편하게 와서 놀고 돈을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와서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에 들어와서 미국 사무실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다른 미국 직원들과 똑같이 영어로 업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는 것은 의미 없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민자들의 나라답게 희한한 이름의 동료와 고객 혹은 파트너 회사 직원들을 항상 보게 된다. 영어의 악센트를 들어보면 분명히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다들 유창한 영어로 업무 협의를 하면서 일이 되도록 만들어 나간다. 그런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면 맡은 업무에 따라서는 매우 심각한 핸디캡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아서 일을 맡기고 그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엔지니어라고 하면 당연히 본인 분야의 기술에 대한 능력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여기서 결과물은 기술적인 업무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전자 기기를 설계하건 소프트웨어를 만들건 유형의 결과물이 가장 일차적인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워낙 작은 규모의 일이라서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해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을 내가 써야 할 때도 있고 내가 만들어놓은 결과물을 다른 사람이 써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반드시 두 사람 혹은 그룹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문서를 이용한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문서만으로 충분히 의미를 전달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결국은 대화로 풀어야 할 일이 생기는데 당연히 미국에서 그 과정은 영어로 이루어진다.
작년에 관여했던 프로젝트에서 중국인 엔지니어가 팀에 합류한 적이 있었다. 거의 스무 명 정도가 같이 일하는 프로젝트였고 이미 몇 명의 중국인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도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고 하기는 힘들었지만, 업무를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새로 들어온 친구는 말을 잘 안 하기도 했고, 어쩔 수 없어서 말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정도의 억양이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많이 아는 것 같았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디자인에 대한 고집도 있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자꾸 문제가 되었다. 팀 내의 다른 중국인 엔지니어들도 비슷한 분야의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이라서 그 친구들끼리라도 일단 중국어로 업무를 협의해 보도록 했지만, 그 친구들이 모든 사항을 일일이 통역해 줄 수도 없고, 유럽 출신의 선임 개발자와 자꾸 충돌을 일으키면서 업무 진행도 안 되고 해서 프로젝트에서 내보내야 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를 떠났다. 아무리 개발 엔지니어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메일로만 일을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과의 업무 협의를 영어로 하는 데 지장이 있고 그 때문에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은 기술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기술력이 없는 엔지니어를 계속 월급을 주면서 데리고 있을 회사는 없다.
유럽 출신의 선임 엔지니어가 다른 프로젝트로 옮기고 새로 하드웨어 팀을 맡아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했다. 외부에서 새로운 엔지니어를 영입해서 팀장을 맡겼는데 재미난 것은, 이 친구가 기존 팀원들 가운데 가장 경력이 많은 중국인 하드웨어 엔지니어와 같은 회사 출신에 경력도 비슷한 중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기존의 엔지니어도 개발 업무를 맡아서 하는 데는 충분한 수준의 영어가 되지만, 외부에서 영업한 엔지니어가 훨씬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물론 새로 온 친구가 일을 대하는 태도도 더 적극적이고 통솔력도 있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주어진 일을 하는 개발자에 비해서, 팀을 이끌고 외부의 다른 사람들과도 업무 협의가 필요한 자리라면 당연히 좀 더 유창한 영어가 필요하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개발팀을 관리하고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하는 포지션에 있는 나에게도 영어로 편안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업무 능력의 하나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프로젝트 관리이던 개발팀 관리이던 서로 의견이 맞지 않고 상황이 힘들어지면 업무 조율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데 미국에서는 같은 일을 영어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직원 간에 갈등이 있어서 이를 조정하다 보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단어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이 많이 달라지는데 미국에서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도 영어 단어 하나의 뉘앙스에 따라서 긴장이 풀리면서 웃고 넘어가는 일도 있고, 잘못된 단어를 사용해서 오해가 생기면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
직위가 좀 높아져서 임원들의 회의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다. 회사의 문화에 따라서 하하 호호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일하는 때도 많겠지만, 매우 심각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어떤 안건에 대해서 찬반이 갈리면서 토론하는 때도 많다. 자기 아래에 있는 부하 직원들의 업무나 갈등을 조정하는 것에 비해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끼리, 더 높은 고위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더욱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기가 맡은 부서의 입장을 잘 대변하면서도 타 부서의 부서장과 척지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정치적인 감각이 필수이다. 모든 일을 옳고 그른 분명한 기준으로 나눌 수 없어서 그렇다. 때로는 자신 있게 본인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강단도 보여줘야 하고 때로는 타협을 통한 양보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그 사람의 리더십(Leadership) 스타일이 되는 것이고 추후 그 사람에게 더 중요한 직책을 맡길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성격만 놓고 본다면 나는 영어를 잘하기 힘든 사람이다. 절대 매사에 꼼꼼한 편이 아니고 오히려 덜렁대는 편인데, 유난히 영어에 대해서는 완벽주의 경향이 있다. 이메일을 쓸 때도 쓰고 나서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어색한 표현이 없는지, 문법이나 철자는 틀린 것이 없는지, 쉼표와 따옴표 그리고 괄호가 문맥에 맞게 적절하게 쓰였는지를 따지는 편이다. 요새는 이메일 프로그램이 좋아져서 많은 부분을 자동으로 검사해주지만 그래도 꼭 다시 읽어보고 보내게 된다. 이메일이야 남들 두통 보낼 때 나는 정성 들여 한 통 보내고, 그만큼 더 오래 일하면 된다지만, 말로 하는 대화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어떤 말을 영어로 할 때, 그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말한 문장의 시제나 명사의 단수, 복수형을 정확하게 썼는지, 목적어와 관계대명사의 사용이 문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등등이다.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대화를 하는데 머릿속에서 혼자서 대입 수능 영어시험을 보는 셈이다. 이러니 말이 제때제때 나오기가 힘들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회의에서 토론이 벌어지면, 그리고 이에 대해서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싶을 때, 우선 머릿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문장을 구성해보고 그게 문법적으로 어색한 표현은 아닌지 혼자서 검열하고 있다. 내가 말할 준비가 됐을 때면 이미 그 부분은 넘어가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는 영어를 잘하기가 쉽지 않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영어를 할 때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본인이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문법도 맞지 않는 영어를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영어로 발표하는 상황에서도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본을 써서 그 대본을 외워서 발표하고자 한다. 아무리 문법 검사 프로그램이 발전을 했다고 해도 정해진 규칙에 어긋나는 오류만 잡아내지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쓰지 않는, 문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매우 어색한 표현까지 잡아주지는 못한다. 몇 분짜리 간단한 발표가 아닌 이상, 한 시간짜리 발표를 원고대로 외워서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맘먹고 원고를 써서 퇴고하고 출판사에서 다시 한번 검토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한국어로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상황에서 문법적으로 완벽한 말만 하는 사람은 없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목표이다. 그래서 이상한 영어가 나오게 마련인데, 그게 나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눈에 띌 테니 더 긴장하는 것이다.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일할 때는 그런 사소한 오류는 잘 모르고 넘어갈 거로 생각해서 그런지, 좀 긴장을 덜 하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해서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져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볼 수도 있다. 평생 영어를 쓰면서 살아온 사람이 아닌 이상 완벽한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좀 더 편하게 영어를 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높은 수준의 자존감이 필요하다. 엔지니어든 매니저든 원래 자기 분야에서 하는 일에 대한 실력은 기본이다. 미국 본사로 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거나 혹은 이미 미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다면 영어도 꽤 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남은 것은 심리적인 장벽을 극복하는 문제가 된다. 표현이 약간 어색할 수도 있고, 완벽하게 상황에 맞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몇 가지 비슷한 단어를 꿰맞춰서 의사 전달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면 그만이다. 이게 두려워서 회의 시간에 입을 다물고 남들 눈치만 본다면 믿고 일을 맡긴 회사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본인도 더 발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있게 된다.
내 경우에는 두 가지 장벽이 있다. 세상에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남에게 얕보여서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남에게 인정받아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오른 자신을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은 여전한데, 미국에 오면서 자존감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영어가 원흉이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피자를 배달해주는 총각이 간단하게 한마디 한 것을 못 알아들어서 쩔쩔매는 경험을 하다 보니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부로 향한 눈높이와 더불어, 외부로 향한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에 있던 나를 본사로 끌어준 보스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어린 흑인이다. 카리스마도 대단하고 유머 감각도 남다르지만, 말을 정말 잘한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 아니고, 본인의 비전을 말로 풀어내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제각각 중구난방인 의견들을 조합해서 결론을 내고 갈등을 봉합하고 일을 진행하는 추진력이 일품이다.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비즈니스 리더의 모습은 그 양반에게 맞춰져 있다. 꿈과 희망을 품는 것은 좋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해 내야지. 미국에 와서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떨어진 자존감을 추켜올리고, 외국인으로서의 핸디캡을 인정하되 이를 월등한 업무 능력으로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묵묵히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