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편함과 어색함을 오래 기억하길
오늘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예전의 회사 사무실은 집에서 5분 거리였는데, 옮긴 곳은 집에서 대략 20마일 정도 (32 킬로미터)라서 막히지 않는 경우 30분 정도의 출퇴근 시간이 걸리네요. 예전의 5분 출퇴근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사무실의 다른 친구는 어바인(Irvine)에서 오는데 대략 5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오히려, 예전의 출퇴근 시간이 전혀 없던 사무실에 비해서, 아침저녁으로 30분씩 차 안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먼저 다니던 회사는, 한국에서 근무하던 같은 회사의 미국 사무실이었으니, 미국에 이사를 오면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집을 구했었지요. 우리 아이가 다니게 될 고등학교와 직장의 중간에 집을 얻어서, 차를 타고 다니면 둘다 5분 정도 거리고, 여차하면 걸어서도 20 ~ 30분이면 갈 수 있도록 했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는 이미 정해진 사무실에 저의 상황을 맞춰야 하니까요. 그래서 재미삼아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도 처분하고 조그만 차를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오토바이로 고속도로를 시속 75마일 (120킬로미터)로 달려가며 출퇴근 할 정도로 제가 라이딩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무지 피곤해서 업무에 집중도 잘 못할 것 같고해서요.
출근을 해서 지급받은 랩탑을 셋업 하는데 한동안 고생을 했네요. 이제 막 셋업 하는 사무실이라 IT 담당자가 없어서 전화 통화하면서 겨우 겨우 네트워크와 이메일 등 각종 프로그램을 셋업 했습니다.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팔자에 없이 아이폰을 하나 받았네요. 예전에 미국 동료들이 휴대폰 두 개씩 갖고 다니는 거 보고 매우 불편해 보인다고 했는데, 이제 저도 그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한국은 그런 경우를 보지 못한 듯한데, 미국에서는 회사 명의의 전화번호와 휴대폰을 아예 지급을 해 주는 것 같네요. 먼저 다니던 회사는, 제가 미국 오면서 아예 회사에서 번호를 새로 만들어주고 휴대폰도 받아서 그냥 그걸 제 번호로 쭉 썼으니 개인 번호와 회사 번호가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 회사를 관두면서는 IT 쪽에 이야기해서 그 번호를 제가 계속 쓰는 것으로 했고요. 그런데 오늘 출근해보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전혀 새로운 번호에, 게다가 평생 써본 적 없는 아이폰을 떡 하니 주네요. 혹시 제가 쓰던 번호에 요금만 회사에서 내주는 방식이 가능할까 했는데 말이죠. 이것도 좋게 보면, 사생활과 회사 생활의 완전한 분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노트북 컴퓨터도 따로 있고, 휴대폰도 따로 있고... 불편한 점도 분명 있겠습니다만.
그 후에는 HR 담당자와 한참 통화를 하면서 각종 회사 정책이나 규칙들을 들었고, 제 보스와 또 한동안 통화를 하면서 업무 관련된 절차나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먼저 회사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적응하는 데 시간 좀 걸리겠네요. 앞으로 2주 정도, 각 부서의 부서장 및 담당자들과 전화 혹은 대면 회의를 통해서 업무 적응 (on boarding) 훈련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항상 익숙한 시스템에서 일을 하다가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되니, 그동안 공기와 물처럼 편하게 느껴졌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의식해가면서, 숨은 이렇게 쉬고 물은 이렇게 마시고 하는 것부터 적응을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습니다만, 한 회사에서 너무 오래 다니면서 회사와 내가 한 몸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해지다 보니 많이 나태해졌습니다. 새로운 것을 할 시도도 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안주하다가 발전을 멈추고 결국 도태되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것이죠.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한 오늘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절대 편안함에 젖어 나태해지는 일이 없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