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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May 18. 2020

조직 생활의 태도

우리는 조폭 조직원이 아니므로

같이 일을 하는 고객사의 엔지니어 하나가 말썽입니다. 팀에 새로 조인한 지 몇 달 되지 않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회사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고, 각종 교육이나 셋업도 되지 않았고, 업무도 낯선데 일은 진도가 잘 안 나가고, 그 와중에 집에만 콕 박혀 있으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행동이 좀 이상하기까지 합니다. 메신저에 글을 쓰는 방식이나 회의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뭐 그건 그거대로 걱정하고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만, 이 친구가 한 이야기 중에 회사 생활을 하는 태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만든 부분이 있어서요. 이 친구가 요구한 것이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메일 아침마다 하는 스크럼 미팅의 시간에 대해서입니다. 제가 정한 것은 아니고, 자기들끼리 이미 매일 아침 8시 반에 모여서 15분씩 짧게 회의를 하고 있었거든요. 저야 아직 그 친구들 실물로 만난 적이 없어서 그전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고, 제가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은 이미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후였으니 MS Teams 기반의 온라인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어제 회의에서, 이 시간을 10시로 옮겨주지 않으면 자기는 앞으로 이 미팅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더군요. 그 전부터도, 자기는 원래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스타일이라 아침 미팅이 좀 힘드니 시간을 늦춰주면 어떻겠냐고 물어와서, 고객사 매니저와도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별 이야기가 없고, 중부 쪽 시간대에서 들어오는 친구들은 8시 반이면 이미 10시 반인데, 더 늦추면 미팅의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다고 해서 그냥 현재대로 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못 참겠는지 전체가 모여서 업무이야기하는 와중에 확 선언을 해 버린 겁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정적이 흘렀지요.


그 일이 있던 같은 날 오후에 다시 한번 고객사 쪽 연구소장과 확인을 했는데, 한 사람의 그런 행동 때문에 회의 시간을 옮길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건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만, 좀 고민을 해 볼 부분이 있긴 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많은 실리콘 밸리 개발자들도 밤늦게까지 개발 업무를 할 거라고 짐작합니다. 제 경험으로 봐도 정규 업무시간에는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회의 요청이나 메신저나 이메일에 응답하느라 개발에 온전히 집중하기 쉽지 않을 거고요.


또 한 가지 이 친구가 들이받은 부분은, 자기는 소프트웨어 코드를 만들기 위해서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이지,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서 필요한 업무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각종 문서 작업을 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은 아니므로 그런 부분도 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이것도 처음 들었을 때는, 뭐 이런 똘아이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면에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프로그래머를 뽑아놓고 온갖 잡일로 개발의 생산성을 저하시킨다면 분명 매니지먼트가 운영을 잘못하고 있는 거죠.


고객사 연구소장의 반응은 간단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엔지니어의 Job Description을 보내줬다고 하더군요. 저야 그 회사 직원이 아니니, 그 내용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짐작컨대 개발자로서 고용이 되었더라도, 기타 회사 업무에 필요하거나 상사가 지시하는 내용에는 따라야 한다라는 그런 내용이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매니저로서 당연한 반응이고, 나는 개발자이니 개발 외의 업무는 전혀 하지 않겠다는 태도도 참으로 유아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개발자를 뽑아놓았으면 최대한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저도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팀을 맡아서 몇 년간 일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한국에도 개성이 강하고 본인 주장이 강한 개발자들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매니저나 회사의 지시에 잘 따르는 편입니다. 물론 회사의 정책이나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좀 취하면 그들의 속 마음을 들을 기회가 많이 있었었습니다. 저도 취한 김에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회사에 대한 불만과 현재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죠. 물론 다음날 아침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기엔, 우리들의 힘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상이 반복되기는 했습니다만.


예전에 진대제 전 장관이 강연에서, 알파벳에 1부터 26까지의 숫자를 넣고 여러 가지 단어들의 점수를 합해보면 ATTITUDE라는 단어가 100점이 나온다면서, 인생을 사는 "태도"의 중요함에 대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100%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태도의 범위를 조금 좁혀서 회사 생활을 하는 태도,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본인이 밤늦게 일하는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일찍 하는 회의에 참석을 할 것인지, 개발자 본연의 프로그래밍과 별 상관없는 각종 잡일에 계속 시달릴 것인지, 이런 문제를 물어보기 시작하면 어떨까요?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성숙한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좋은 태도이지만, 반면에 조직 생활을 할 때 나서거나 튀지 않으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아직까지 잘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얼굴 보고할 때는 좀 덜한데, 전화로 회의할 때,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중간이라도 누가 끼어들면, 무조건 제가 하던 말을 멈추고 그 사람이 이야기를 하도록 합니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더 좋을지에 대해서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제 반응은 거의 자동적입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도 그냥 제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는 고집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회사에서의 회의 시간이나 잡일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조직의 일원이니 짜증은 나지만 규칙에 따르기만 하기보다는, 가끔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어떻까 생각을 해 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정도까지 가면 안 되겠습니다만, 조직을 들이받아서 좀 흔들어보는 정도의 시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런 불합리한 일이 계속되고, 그게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면 다른 직장을 찾아보거나, 포기하고 영혼 없는 회사 생활을 하게 되겠죠. 두 가지 경우 모두, 회사에도 좋지 않고 본인에게도 득이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아까 아침 회의의 경우로 돌아가서, 거기에 이미 대놓고 들어오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근데 이 친구는 회의 시간을 문제 삼지 않고, 회의 내용을 이유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는 매일 아침에 팀원이 모두 모여서 하는 회의에서 내 업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고, 실제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가 그 회사의 매니저였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들여다보겠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그대로 용인하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지만, 일을 잘하는 친구인 것 같습니다. 본인의 개발업무 외에 여러 가지 개발 환경 셋업이나 기타 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다른 회의를 요청하거나 업무를 요청하면 반응도 빠르고 업무 처리도 깔끔한 편입니다. 뭐 그 친구의 태도고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조직의 문화에 파묻히기를 거부하면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실행에 옮기고, 그러면서도 성과를 꾸준히 내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 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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