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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Jan 06. 2021

임용근 의원의 영어

전 오리곤 주 5선 의원 

작년의 미국 선거에서는 한국 이민 역사상 최대인 4명의 한국계 연방 하원 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미국 하원 의원 숫자가 435석이라고 하니 대략 1퍼센트 정도가 되는 셈이네요. 연방 의회와는 별도로 미국은 각 주마다 상원과 하원이 별도로 있으니 그곳에도 많은 한국계 정치인들이 활약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오늘 아침에 '이것이 미국 영어다' 6권을 읽는데 거기에 임용근 (미국명 John Lim)씨가 오리곤 주 상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이 책이 1994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임용근 의원이 당선된 것이 1992년이니까 예전에 써 놓은 이야기겠습니다만, 거기서 한 문장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양반이 이민 1세대라서 영어가 좀 서툴지만, 재미난 농담으로 관중들을 웃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민 1세대로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분이 오리곤 주 상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습니다. 다른 것 보다도, 이 분의 영어가 궁금해서 유튜브에 John Lim Oregon으로 검색을 했더니, 10년 전에 올라온 비디오(https://www.youtube.com/watch?v=4S9T3ucUMIY)가 가장 상단에 뜨더군요. 2010년 4월에 어떤 포럼에서 5분가량, 본인이 왜 오리곤 주지사로 입후보를 했는지에 대해서 연설을 하는 내용입니다. 10년 전의 이 동영상에 달린 댓글이 딱 하나인데 이런 내용입니다:


'john lim is unelectable. good intentions but can't understand him.' (존 림은 당선될 수 없다.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요즘 말로 참으로 뼈를 때리는 짧은 코멘트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부분이고요. 미국에서 어떤 일을 해도 영어가 능숙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겠지만, 특히나 정치라는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 가장 중요한 조건일 텐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거든요. 그 5분가량의 동영상을 두 번을 집중해서 들어봤습니다.


발음은 당연히 악센트가 있는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말씀하시는 유창함, 즉 부드럽게 단어를 배열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은 크게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재미있다고 느꼈던 부분은, 동영상 아주 첫 부분에 청중들에게, '오리곤 주에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 지 아느냐?'라고 묻고 스스로 답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답은 바로 'smooth talking politician' 즉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정치인들이 우리 오리건 주에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는 이유라고 일침을 가하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제가 그 오프닝 코멘트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마도 본인의 영어가 가장 큰 핸디캡이라고 의식을 하고 있을 텐데, 그 짧은 스피치를 말 잘하는 정치인의 문제로 시작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수비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보면 꽤 공격적인 전략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바로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오리건 주 공화당의 다른 좋은 후보들도 있지만, 다들 경험이 부족하고 잘해야 내 아들 나이뻘이다'라고 하면서, 역시 또 다른 약점일 수 있는 나이 이야기를 꺼내거든요. 이 분이 35년생이니까, 2010년이면 벌써 70대 중반이셨겠죠. 그러고 나서 바로 본인이 44년 전에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민을 온 이야기에 덧붙여서 'You might have a worst speaking governor but the best performing governor in the 21st century.' (여러분들은 21세기 들어서 가장 말을 잘 못하지만 가장 능력이 있는 주지사를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보면 중간중간에 좀 개그 포인트가 있어서 청중들이 웃을 만 한데, 다들 식사하느라 정신이 없고, 오히려 뒤쪽에 앉은 같은 공화당 주지사 후보들만 키득키득 웃는 장면이 나오네요.   ^^


비록 짧은 5분간의 연설이지만, 왜 본인이 적합한 주지사 후보이고,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왜 지난 24년간 민주상 후보에게 오리곤에서 공화당 후보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떤 전략이 있는지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쭙잖게 다른 분들의 영어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 냉정한 댓글과는 다르게 저는 오히려 이 동영상을 보고 나서, 왜 이분이 오리곤 주 상원 3선, 하원 2선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좀 갔습니다. 물론 영어 발음이나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하겠지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으면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1992년에 처음 당선될 때, 지역구에 인구가 10만 명 정도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을 들었는데요, 지금도 오리곤의 한인 인구가 잘해야 4만 명 정도라고 하고(https://brunch.co.kr/@tystory/51), 그 당시 임의원이 발의한 한국인의 날 선포하는 동영상에서 주지사가 당시 오리곤 한인 인구를 2만 5천 명 정도라고 했으니, 그 힘만으로 당선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 활동도 열심히 하셨을 거고, 비즈니스도 오래 하셨고, 공화당에서도 많이 도와줬겠습니다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본인의 의지와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주 상. 하원을 합쳐 5선을 한 것도 대단하지만, 1998년에 오리곤 주 상원의원 후보로 공화당을 대표해서 선거를 치렀다는 것도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해 오리곤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론 와이든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만, 워낙 오리곤이 민주당 우세 지역이고, 특히 론 와이든 상원 의원은 96년 재선거에서 처음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오늘날까지 쭉 그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원래부터 힘든 선거였죠. 하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오히려 공화당 내부에서 다른 후보들을 큰 표차로 이기고 주 상원의원 후보로 뽑혔다는 것이, 그 당시 임의원의 정치력과 당내에서의 입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본인 말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말 잘하는 당내 다른 정치인보다 실력과 진정성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잖아요.


우연히 아침에 가벼운 마음으로 영어 공부하다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요즘 들어 제가 부쩍 제 영어에 대해서 불만스러운 마음이 생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미국 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을, 업무 능력과 열정 그리고 영어 실력이라고 보면, 이 세 가지 자질이 더하기가 아니고 곱하기로 계산이 될 텐데, 저는 그중에 능력과 열정은 누구 못지않지만, 영어가 핸디캡이 돼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많은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작년부터 특히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임용근 전 의원의 영상을 보고, 이 양반의 살아온 스토리를 읽으면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좀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한 16분짜리 동영상입니다. 모두들 힘내서 원하는 것 다 이루어지는 2021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7p0MjiQTf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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